TRPG 로그
200505 히스클리프 (w. 소르벳)
ㄹㅣ노
2020. 5. 6. 02:43
세션카드 제작해주신 창푸님 감사합니다!
KPC : 아든 스카일러 (리노) / PC : 릴리안 알테어 (소르벳)
< 히스클리프 내 두 사람의 관계 간략 요약 >
1. 사촌 관계지만 스카일러 가는 알테어 가의 분가 같은 위치로, 아든은 12살 무렵 릴리안의 말동무 겸 고용인으로 알테어 가 저택에 들어옴.
서로 마음을 터놓고 지내기까지 몇 년은 싸웠음. 현재는 고용인보다는 친구의 느낌이 더 강함. 대외적으로는 여전히 고용인.
2. 서로 좋아하고 있음... 맞짝관임...
다만... 좋아하는 느낌은 서로 좀 다른듯....
이하 시나리오의 직접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리노 (GM) <히스클리프>
내일은 당신의 결혼식 날입니다.
상대의 얼굴도 모르고 이름과 상대 집안의 명성만 익히 들어 알 뿐인 마음 없는 정략 결혼 말입니다.
이 지진한 시대의 결혼은 대체로 그런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가문의 명성이 다 뭐라고. 그걸 유지하기 위해 감정을 팔아서….

그러나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저택의 모든 이들은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바쁩니다.
저녁에는 결혼을 축하하는 파티까지 예정되어 있습니다. 당사자인 당신을 제외한 모두가 이 결혼을 반기고 있네요.

아니. 모두는 아닙니다.
문간에서부터 당신을 응시하는 시선이 느껴집니다. 정략 결혼이라는 소식을 접할 때부터 한 번도 기뻐하지 않았던 아든입니다.




침대기둥에서 시선을 옮겨 문가의 아든을 바라봅니다. 오늘밤이든 내일이든 기대가 생겨날 것 같지는 않은 여상한 눈입니다.

한때는 릴리안이 저택을 떠나면 자기도 이 저택을 떠나느니 어쩌니 하면서 성질을 부렸던 아든이지만, 약 2주 전부터 그는 부쩍 얌전해졌습니다.
전보다 조금 더 가라앉은 낯빛을 하고 있긴 하지만요.


릴리안의 머리카락을 반은 가슴 앞으로 늘어뜨리게 해주고, 반은 어깨 뒤로 넘기도록 만져줍니다. "벌써 내일이네. 결혼식."
"내일이면 이 방도 비겠어." 담담한 어투지만 조금 말끝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결혼해서, 린튼 가로 가게 되어도 내가... 소중하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듯 조용한 목소리입니다.

다시 시선을 아든에게로 돌렸다가, 흐트러지는 고용인의 입꼬리를 물끄러미 응시합니다.
"그럼. 저쪽 집안에서도 알테어가 밖에서도, 너 같은 사람은 나타날 리 없어."
그린듯한 미소와 함께 달래듯 어깨를 쓸어줍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넌 선 넘는 거 안 좋아하잖아. 내가... 선을 넘어도. 그렇게 생각해줄 거야?"

"왜 그런 걸 물어? 그 말은, 선을 넘어보고 싶다는 말일까? 이제 안볼테니까?"
말투는 전혀 다그치거나 화난 기색이 아닙니다. 그저 단순하게 궁금해하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꼬리를 문 질문은 조금 짓궂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내 평소처럼 웃으며 줄곧 어깨에 얹어두었떤 손을 뗍니다.
"그런 점에서 너는 전혀 모르고 있고," 흐음, 하고 방금 전 자유로워진 손끝으로 걸리적거리는 머리칼을 귀 뒤로 걸며
"오늘은 아든 스칼일러답지 않네."

얕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먼저 몸을 돌립니다.
"손님들이 오셨대. 오늘의 주인공이 손님들을 맞는 자리에 빠져서야 되겠어?"
명백히 이 자리를 피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말입니다.

"네 말이 맞아. 사담이 너무 길어졌는걸."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던 아까와 달리, 자연스레 반걸음 앞으로 나서 문고리를 잡습니다.


릴리안은 단지, 여느 고용인에게 그러하듯 상냥한 어조로 답하고 곧바로 문을 열고 걸어나갑니다.
옆을 지날 때 살짝 미소지은 것 이외에 더 이상의 눈길은 주지 않고.
바깥은 일찌감치 도착한 손님들과 그들을 맞는 알테어 가의 사람들이 뒤섞여 소란스럽습니다. 곧 해가 질 것 같네요.
알테어 가 저택의 홀과 저택 앞에 펼쳐진 너른 정원에는 벌써부터 사람들이 모여 웃으며 당신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아든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알테어 가의 시종들 틈에 섞여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별생각 없이 막역하게 지내는 사이지만, 일단 아든은 알테어 가의 고용인이니까요.
몇몇 귀족들이 요란스럽게 떠들며 당신을 향해 다가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인사를 건네며 큰 소리로 말합니다.
1:귀족1“ “오랜만일세, 릴리안! 자네가 어렸을 때부터 영특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린튼 가의 사위가 되다니, 이건 정말 경사로군!”
2:귀족2“ “그 집안은 예로부터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쥐었다고 아주 유명하지 않았나. 알테어 가도 앞으로 일이 잘 풀리겠어!”

있는 대로 아는 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양반들, 도통 만나본 기억이 없습니다.
릴리안에게 접근해 린튼 가에 줄이라도 한 번 대보려는 속셈이겠죠.
주위를 둘러보면 초대된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무어라 대화하고 있습니다.
듣기 판정으로 손님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슬쩍 엿들어볼 수 있겠네요.

기준치: | 65/32/13 |
굴림: | 5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릴리안은 이런 예의만 잔뜩 차린 자리를 살피는 데에는 요령이 생긴지 오래입니다.
그는 귀부인 두 사람이 소근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고보니 린튼 가에서 근래에 실종자들이 늘어났다며?”
“결혼식 날짜가 발표된 이후에 계속 그렇다더라고. 무슨 마가 껴서, 이 경사스러울 때에…”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지. 그도 그럴게 결혼이잖아.”
그리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었네요.

정말로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들 이제 막 엮인 가문에 가족애가 솟아나지도 않을뿐더러, 사라진다면 남아서 만날 사람들만 기억해도 충분하겠죠.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릴리안을 알아본 몇 사람이 웃으며 다가옵니다. 이번에는 또 뭐라고 인사하려는 셈일까요.
사람들은 결혼식의 주인공인 당신을 격식 차린 인사 세례에서 해방시켜줄 생각이 없나 봅니다.
가지고 있는 대인 기능을 사용할 경우, 사람들을 적당히 돌려보낼 수 있습니다.
매혹, 위협, 말재주, 설득 등.. 다양한 대인기능이 있으니 원하는 걸 사용해보세요! :)

기준치: | 70/35/14 |
굴림: | 4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릴리안은 결코 무례하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말에 하나하나 답해주지만, 파고들 빌미나 그 이상의 불필요한 대화에는 길게 어울려줄 마음이 없습니다.
내일의 주인공은 준비할 것이 너무 많다는 좋은 핑계거리도 가지고있고요.
릴리안이 매끄러운 미소와 함께 '슬슬 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피력하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그를 보내줍니다.
그럼요, 주인공은 바쁘니까 너무 붙잡으면 곤란하겠죠.
자신을 붙잡는 사람들 틈에서 벗어난 릴리안은 그와 마찬가지로 일을 돕다 혼자 남은 아든과 마주칩니다.


눈꼬리가 놀리듯 휘어집니다.
"네가 얼마나 성실하고 능력있는지는 내가 가장 잘 알아."
손님들을 상대하던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이쪽의 대화가 더 즐거운 듯 합니다.

릴리안의 칭찬에 기분이 나아졌는지 입가에 미소가 걸립니다.
"하지만 여기서 도련님이랑 노닥거리고 있으면 눈에 띄니까... 정원 산책이라도 할래?"
비교적 사람이 적은 정원 쪽을 가리킵니다.

릴리안이 아든과 함께 정원으로 향하는 도중, 먼 친척과 조우합니다.
그는 릴리안의 얼굴을 보고 결혼을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넵니다. 뭐, 오늘 몇십 번쯤 들은 인사네요.
"린튼 가 사람들에게 인사는 했나? 가족이 될 사이인데 인사 정도는 해야지."
그가 저택 안의 홀을 가리킵니다.

릴리안이 본 방향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지능 판정 해주세요.

기준치: | 60/30/12 |
굴림: | 4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문득 릴리안은 린튼 가에 관한 소문을 떠올립니다.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가문. 왕족과도 줄이 이어져있다 했던가요. 린튼 가에서 먼저 알테어 가에 결혼을 청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서, 이보다 더 간단하고 확실한 수단은 없겠죠. 혼담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당사자의 의사는 전혀 묻지 않았죠.
…아무튼, 그렇게 명예로운 가문으로 유명한 린튼 가이지만 희한하게도 그들에 대한 정보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가문 구성원조차 전부 공개하지 않으니 말 다했죠. 다만 가문 구성원들 중 미친 이들이 많다 했던가? 불미스러운 소문은 그 정도입니다.

그의 시선을 따라 홀로 시선을 옮긴 아든은 린튼 가를 보자마자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냅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들에 대해 좋은 감정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듯하네요.
(아든....?)
(이렇게 격렬한 애가 아닌데<<< 그냥 노려봤음)
친척은 릴리안에게 '린튼 가에서 너를 찾고 있으니 한 번 가보라' 고 말을 남기고 술을 찾아 스쳐갑니다.


말투는 평온하지만 가까운 사이라면 알 수 있을 정도로 다소 피곤한 기색입니다.

그냥 같이 나가면 안 돼? 라고 물어보려 했으나 릴리안의 피곤한 기색을 보고 말을 삼킵니다. 다만 린튼 가 사람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은지 혼자 다녀오라고 말하고 사람들 틈에 섞입니다.

썩 내키지 않지만, 앞으로 가족이 될 사이인데.. 잘 보여야 하지 않겠어요. 찾고 있다는데 주인공이 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불편한 기색의 아든이 떠나고, 릴리안 혼자 린튼 가 사람들이 모인 곳에 다가가면 그들은 반갑게 릴리안을 맞이합니다.
"이게 누구야, 우리 사위 될 사람 아닌가!"
“정말 반가워요. 이미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 총명하고 아름다운 분이군요.”

소문의 린튼가문에 합류할 수 있게되어 영광입니다.
"소문의 린튼가문에 합류할 수 있게되어 영광입니다."
피곤한 기색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릴리안이 깍듯하게 격식을 차려 인사를 하자 린튼 가 사람들은 흡족한듯 미소를 보입니다.
미소 띤 얼굴로 그들을 살피면, 대부분 눈동자가 흐리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어째서인지 눈 밑이 거뭇하고 대부분 낯빛이 창백합니다.
햇빛을 오래 보지 않은 사람처럼. 혹은 잠을 오래 자지 못한 사람들처럼.
(관찰판정 해봐도 되나요?)
관찰 판정 해보세요!

기준치: | 70/35/14 |
굴림: | 5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릴리안이 그들을 좀 더 자세히 살피자 린튼 가 사람들 중 몇몇이 다소 기묘할 정도로 그를 빤히 응시하고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그가 린튼 가의 일원이 되기에 적합한지 확인하려는 걸까요? 정략결혼인데, 그런 걸 따질 필요가 있을까요.

"여러분 모두 멀리서 오시느라 피곤하셨을 텐데, 오늘밤의 행사는 제가 주관해야하는 것이 맞으니 여독을 느끼신다면 언제든 편히 응접실을 이용해주시길."'
"몇몇분들께서는 혹 피로를 참고 계시는 것 같아서 안쓰럽네요. 저희 집에서는 사양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만-."
"우리 사위될 사람은 말도 잘 하는군!"
릴리안의 립서비스가 흡족했는지 가볍게 박수를 친 남자가 사람들 틈 사이에 서 있던 여인을 부릅니다.
"테일러! 이리 오렴. 곧 부부 될 사람끼리 춤이라도 한 곡 춰야 하지 않겠어."
그렇게 나타난, 처음 마주하는 결혼 상대는 릴리안보다 머리 하나쯤 작은 여인입니다.
곱게 차려 입은 드레스가 무릎께에서 나풀거리고, 리본으로 고정한 머리카락도 부드러워 보입니다.
정중하게 인사하는 모습에서 귀족 영애라는 티가 납니다.


"린튼 양, 오늘 밤 뵙게되어 기쁘군요-." 상대가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걸음으로 알맞게 거리를 좁힌 다음, 무릎을 굽히고 영애의 한손을 잡아 가볍게 쥐어 올립니다.
"이후 잘 부탁드립니다-."
마무리로 가벼운 인맞춤 뒤 자세를 바로합니다.

입을 살짝 가리고 웃는 모습이, 이쪽도 사교계에서 매너를 어느 정도 배운 티가 납니다.
"인사만 하고 가실 생각이신가요?"

"그럴 리가요. 알테어 저택은 이미 둘러보셨나요? 문앞마니 아니라 별관쪽에도 아름다운 장미정원이 있답니다."

조금 도도한 말투와 함께 어깨를 꼿꼿이 세웁니다.

"실례, 제 반려가 되실 분께서는 아름다운 만큼 엄격하시군요."
영애를 향해 허락을 구하듯 한손을 내밀며, 주위에 있는 린튼가 사람들에게 눈웃음과 함께 고개를 살짝 까딱입니다.

짐짓 엄한 말투로 대답하면서 릴리안이 내민 손에 제 한 손을 얹습니다.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겠다는 것마냥.

릴리안은 가문 사람들 사이를 지나 뒷문쪽으로 영애를 안내합니다. 사람들 사이에 발이 걸리거나 드레스 자락이 밟히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면서.
모든 이들이 오늘의 주인공인 두 사람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주목 속에서 릴리안은 별관에 있는 장미 정원으로 향합니다.
사람들의 웃음과 박수 소리... 다들 이 순간을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네요.
릴리안은 문득, 정원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한 아든의 말이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혼 상대인 린튼 가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도 중요하죠.

물론, 생각과는 별개로 안내를 소홀히 할만큼 서툴지도 않고요.
릴리안은 서두르지 않고 반려가 될 사람을 관찰하며 밤의 장미들 사이를 거닙니다.

달빛을 맞은 장미를 관찰하며 조금 들뜬 목소리로 감상을 말합니다.
"린튼 가의 정원에는 풀숲은 많지만 꽃은 적답니다."

"오늘밤으로 구경을 끝내는 게 아쉽다면 내일 식을 올리고 모종을 몇품 들고 갈까요? 이후에 묘목을 보내달라고 좋을테고... 한철이면 린튼 가의 정원에도 똑같은 장미를 무수히 피울 수 있답니다."

릴리안의 이야기를 흥미로운 얼굴로 듣고 있다가, 조금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입니다.
"...당신의 시종이 굉장히 당신을 아끼나 봐요."

"그를 보셨군요."
마주 고개를 돌리고 내려다보는 얼굴에는 다정한 미소만이 가득합니다.

여전히 시선을 릴리안과 맞춘 채이지만 미소가 조금 석연찮게 변했을지도 모릅니다.
"혹시, 다른 마음이라도 품고 있는 건 아니겠죠?"

"제 사용인은 면밀한 구석이 있어서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라온 사촌 사이이기도 하고요. 린튼가 분들이 그렇듯이, 제 반려가 될 분이 궁금했던 모양이지만 실례를 했네요."
걸음을 멈추고 부드럽게 고개를 숙입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죠. 일방적으로 지켜보는 건 더 이상 싫으실테니, 제 수석고용인을 소개해드릴까 하는데-."
허락에 대한 답을 듣기 전까지는, 화원을 둘러볼 마음조차 없어보입니다.

릴리안의 사과에 작게 손을 내젓습니다.
"그저.. 자꾸 저희 쪽을 기웃거리니 조금 거슬렸을 뿐이에요."
"서로 기분 좋게 얼굴을 마주볼 사이는 아니랍니다."

"그러시다면. 이후에 잘 이야기해두도록 하죠. 이번에는 저택 안을 보여드릴까 하는데."
릴리안은 이후 행선지로 자연스럽게 사람의 눈이 조금 더 많은 곳을 택합니다. 네가 설령 밤새 그런다고 해도 지금은 너와 어울려줄 수 없어.

"아니요, 괜찮아요. 어차피 오늘 이후로 이 저택에 올 일은 없을 테니까요. 어머니께서 적당히 함께 시간을 보내라고 하셔서 잠깐 함께 했던 것뿐이에요."
다소 당돌하고 오만한 웃음을 내비친 테일러는 꾸벅 인사하고, 그를 지나쳐 가족들에게로 돌아갑니다. 당장 내일 부부가 될 사이인데 이 이상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이 없는 듯하네요.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고는 하지만, 첫만남이 다소 기묘하게 끝나버렸군요.

"린튼 양은 네가 신경쓰이는 모양인걸."
어디라고 할 것도 없이 붉게 핀 장미전원에 말을 겁니다.

조금 떨어진 장미 나무 사이에서 몸을 내밉니다. 무덤덤한 얼굴에는 이렇다 할 감정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아든쪽으로 몸을 돌리고, 역시나 다른사람과 있었던 적이 없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태도입니다.

"원래 기다리는 건 아랫사람의 역할이니까."
주위를 한 번 살피고는 조금 더 가까이 걸어옵니다.
"그 사람이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거란 건 예상 밖이었지만."

"그래? 나는 네가 기다리고 있겠다고 해서 확인한거야."
머리를 기울여 오른손 검지로 톡톡 두드리며
"좀처럼 보기 힘든 타입의 영애인 것 같지. ...뭐랄까,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할지 약간 예상하고 있다는 투로 살짝 눈썹을 찡그립니다.

"어머니?"
그리곤 사이를 두고 제풀에 잘게 웃습니다.
"오늘 처음 본 상대를 착각한 것 뿐일지도 모르지만."

릴리안의 말에 가볍게 웃습니다.
그가 품은 애정의 크기가 작지 않다는 사실은 당신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정략결혼 상대도 알 만큼 티가 났을까요?
깜깜한 밤하늘은 구름 한 점 없습니다. 무수히 빛나는 별들과 휘영청 뜬 보름달이 선명히 보입니다.
마침 정원에서 조금 떨어진 저택의 홀에서 들려오는 음악도 바뀌는 것 같네요.
달빛을 등지고 문득 아든이 당신을 향해 손을 내밉니다.

방금 전까지 무덤덤하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걸립니다.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원한다면. 네가 리드하는거니?"

릴리안이 내민 손을 맞잡고 조금 몸을 가까이 밀착합니다. 그와 눈을 맞추기 어색한지 조금 시선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레이디."
장난기 없는 목소리로 허리께에 손을 감고, 가볍게 속삭이며 눈꺼풀을 내리깝니다. 후렴구의 첫박자가 올때까지 기다렸다가 발을 떼는 움직임이 지극히 자연스럽고...달콤합니다.

릴리안의 스텝을 눈으로 좇으며 그에 맞춰 스텝을 밟기 시작합니다. 무의식적으로 콧노래로 등 뒤에서 들려오는 노래의 선율을 흥얼거립니다.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면 네가 불쾌해할 줄 알았어.

"왜? 기분 좋은데."
리듬을 끌어오며 일정한 자리에서 양발을 교차합니다.

제법 능숙한 척 발을 움직이지만 익숙하지 않은지 전체적인 스텝이 조금 삐걱거리는 듯합니다.

쿡쿡 웃으며 대답하고 발이 밟히지 않도록 반박자 어긋난 타이밍에 아든의 중심을 왼쪽으로 부드럽게 밀어 옮깁니다.
"오늘 밤 내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건 너 뿐이잖아. 난 그게 좋아."
속으로 다시 번갈아 짚는 발의 박자가 맞을 때까지 기다렸다 허리를 감은 손에 실었던 힘을 뺍니다.

릴리안이 박자를 맞춰주자 그에 맞춰 발을 오른쪽으로 짚습니다. 맞는지 모르겠지만, 적당히 하면 릴리안이 알아서 맞추겠지. 그런 마음입니다. 잘 하는 사람이 맞춰줘야 하는 법입니다.
"너를 지켜보는 건 늘 내 역할이었잖아. 네가 위험하지 않도록, 위태롭지 않도록, 고되지 않도록."
"나는 계속 그럴 생각이야.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그게 네 의사에 반하는 일이라도."

멀리서 흐르는 음악이 클라이막스를 맞이하자 손을 뻗어 빙글, 아든이 한 바퀴 회전할 수 있도록 기다렸다가 다음 마디에 끌어당깁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대로 거리없이 밀착하곤 아든의 어깨에 부드럽게 턱을 기댑니다.
천천히 느려지는 곡조에 따라 재차 변하는 스텝.
"아든, 오늘 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혀 나한테 관심이 없어. 그들이 궁금해하는 알테어, 아니면 린튼이지."

"내 반려도 기분 내키면 쉽게 손을 밀쳐버릴 사람인 것 같아서 안심했어."

어깨에 닿는 미지근한 체온에 발을 멈춥니다. 잠시 고민하던 팔이 릴리안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립니다. 손을 조금 더 뻗으면 끌어안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저 천천히 쓸어내릴 뿐입니다.
"왜 그런 사람이란 점에서 안심하고 그래. 진짜 마조히스트 같잖아."

릴리안은 아든이 쓸어주는 손길이 더없이 편안한 듯 다시 부드러운 표정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아무 기대도 안 하고 시작할 수 있잖아."
아든이 멈추가 질리안도 멈춰서있습니다.
"네가 나중에 그러지 않더라도, 그럴거라고 말해준 데에는 감사해."
이윽고 천천히 어깨에 기댔던 머리를, 허리에 감았던 손을 바로하고 마주섭니다.
저택 쪽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가 점점 작아집니다. 파티도 어느새 끝물에 다다르고 있는 걸까요.
아든과 제법 가까이 선 릴리안은 그의 목 근처에 상처가 있는 것이 보입니다.
원래 입술에 흉터가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데에도 상처가 있었던가요?
굴려보세요!
기준치: | 70/35/14 |
굴림: | 4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아아니 뒷사람이 굴렸네요 이거 괜찮은가...!;ㅁ;)
릴리안은 아든이 옷으로 가린 목 부분에 희미한 상처가 몇 개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손을 맞잡을 때 언뜻 보였던 팔뚝에도 상처가 있었던 것 같은...
어느 쪽으로 굴리셔도 괜찮아요!


릴리안이 손을 뻗자 조금 의아한 눈치입니다.

옷깃 위로 가볍게 쓸어봅니다.

황급히 변명하듯 말을 늘어놓으면 상처를 가리듯 옷깃을 세웁니다.
무엇에 대해 심리학 판정을 하시나요?
(일단 릴리안은 곧이곧대로 믿진 않는 느낌이라서요)
굴려보세요!

기준치: | 70/35/14 |
굴림: | 13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오늘, 조금 아든답지 않네. 릴리안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당황해서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 하는 게 아닌가? 하며 넘길 수 있었겠지만... 릴리안은 눈치챌 수 있습니다.
저 상처가 어디 부딪혀서 생긴 상처가 아니라는 것도, 그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 다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는 사이입니다.

미소를 띠고, 딱히 추궁하는 어투는 아닙니다.
"나보다 뭐든 낫게 한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네, 정말이지."
아든이 알리고싶지 않다면 집요하게 캐물을 생각은 없으니까요.
"어디서 다쳐오는 것까지는 내가 뭐라고 할 수 없지만, 다치면 제대로 치료받도록 해."
아까 옷깃을 쓸어보았던 손으로 아든의 입가에 남은 흉터를 가볍게 쓸어줍니다.


조금 멋쩍은 얼굴로 그의 손을 쳐다보고 있다가 눈꼬리를 늘어뜨립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진짜 별 거 아냐."
오늘까지 이렇게 다정하게 대해줄 필요가 있었나, 조금 막막한 기분이 듭니다.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상냥한 건 그의 타고난 성정이었지만.. 괜히 막막한 기분이 가슴을 짓누릅니다.

릴리안은 가만히 아든에게서 눈을 떼지 않습니다. 표정에 변화는 없습니다. 대답만 들어보면 평소의 아든답기 때문에, 릴리안도 평소처럼 그를 대하는 중입니다.
"어차피 네가 늘 나에게 신경을 쏟으니까. 가끔 내가 너에게 그만큼 신경을 써야 보상이 되지 않겠니?"

눈꼬리가 조금 늘어졌을 뿐, 평소와 같이 덤덤하던 얼굴에 서서히 균열이 갑니다. 이제는 퍽 서글퍼 보이는 얼굴로 아든이 팔을 뻗어 릴리안을 가볍게 끌어안습니다.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래봤자 아무것도 변할 것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냥, 말없이 이 밤을 넘기기 벅찬 기분입니다. 어차피 마지막인데. 몇 번이고 잘근잘근 씹던 입술을 열어 말을 내뱉습니다.
"결혼하지 마, 릴리안. 이 저택에, 내 곁에 있어주면 안 될까."
릴리안이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그가 읊조듯 중얼거립니다.
“알아.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도 없고, 네가 이런 말 한 마디로 마음이 움직일 만한 위인이 아니란 것도…알지만…, 그래도. 널 보내고 싶지 않아.”


"같이 갈까?"
팔을 뻗어 아든의 머리를 토닥입니다.
"나는 가야해."
"그건 이제와서 변하지도 바뀌지도 않을거야."
네가 알듯이-. 속삭이는 목소리는 나직하고 상냥합니다.

그리고 아든의 품에서 빠져나옵니다.
"마지막은 물론 단지 해본 말이야."
릴리안은 여느때처럼 웃고있습니다.

"같이... 갈 수 없어. 그건... 그럴 수는 없는 거지. 차라리 나 혼자 떠나면 떠나지, 너랑 같이 갈 수는 없어."
손을 가린 얼굴을 떼자 조금 일그러지고 붉어진 얼굴이 드러납니다. 그 얼굴을 보여주기 싫은 듯 이번에도 먼저 몸을 돌리는 건 아든 쪽입니다.
"…미안. 내가 좀 감정적이었네. 안 될 걸 알면서도 떼를 쓰는 건 이 나이 먹고 할 짓은 아니지.”
"슬슬 뒷정리하는 걸 도우러 가야겠어. 오늘은 손님들이 많이 오셔서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될 판이거든."
조금 머뭇거리던 아든이 완전히 등을 돌립니다.

아든은 다 잊어달라는 말을 끝으로 먼저 등을 돌려 황급히 사라집니다. 도망치는 것과 흡사합니다.

자격이 없는 건 어느쪽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잘 가, 아든."
뒤를 쫓지 않고, 릴리안은 정원 안이 완전히 고요해질때까지 가만히 기다립니다.
밤이 깊어갑니다. 저택도 아까에 비하면 덜 소란스러운 느낌입니다. 정원에는 이제 바람에 초목 흔들리는 소리만 들립니다.
이제 날이 밝으면 결혼식입니다. 그런데 아든은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한 걸까요.
릴리안의 감정은, 의사는 이 결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아침이 왔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온 집안의 사람들이 분주합니다.
당신을 향유로 씻기고 몸단장을 해주는 시종들 사이로 이상하게도 아든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가족들은 연달아 당신의 방을 방문해 축하 인사를 건넵니다. 이게 축하 받을 일인가 싶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경사니까요.
단장을 마치고, 식장으로 향하는 길목은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여전히 아든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전날 밤 그런 말을 했대도, 이 결혼이 달갑지 않다 해도 인사는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아든이요? 그러게요. 새벽에는 보였던 것 같은데.. 어디 갔는지 모르겠네요. 정신이 없어서.."
시종들도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의 행방을 모르겠다 대답합니다.
릴리안이 주변을 둘러보자, 사람들이 어서 식장으로 향하자고 재촉합니다. 머물 시간은 없을 것 같네요..

아쉬움을 곱씹으며 도착한 식장, 린튼 가의 대저택의 분위기는 입구에서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묘하게 풍기는 기이한 서늘함. 어디선가 나는 미미한 시큼한 냄새에 기시감이 듭니다.
이상할 정도로 차가운 분위기 속, 누군가의 시선을 느낀 것도 같습니다. 결혼식을 할 곳인데 이렇게 장례식장 같을 일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조용히 발을 들여 내부를 살펴보면 홀 쪽이 소란스러움을 깨닫습니다.
릴리안은 그를 지나치는 린튼 가의 사용인들이 "경찰이 왔어!" 라고 속삭이는 걸 듣습니다.

'소란'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어폐가 묻는 분위기지만 릴리안은 연달아 지나치는 사용인들 중 마지막 사람을 붙잡고 묻습니다.
릴리안을 본 시종이 꾸벅 고개를 숙입니다. "호, 홀에... 시체가...." 목소리가 덜덜 떨립니다.

"... 방해가 안된다면 저희도 들어가죠."
"네, 네에..." 시종이 홀로 안내합니다.
시종의 안내를 받아 다다른 홀에는 린튼 가의 부인이 무릎을 꿇고 울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를 부축하는 남자 또한 넋이 나간 기색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제 마주한 당신의 결혼 상대, 테일러 린튼의 시체입니다.
이성 판정해주세요.

기준치: | 45/22/9 |
굴림: | 89 |
판정결과: | 실패 |
(가망없는 산치...)
시체가 있단 말을 듣긴 했어도 설마 결혼식 당일에 상대가 죽어 있을 거라고 예상했겠어요.
릴리안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조금 충격 받습니다. 이성 1 감소합니다.
홀 안에는 경찰들이 분주하게 현장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바삐 움직이던 경찰들은 릴리안을 발견하자,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립니다.

경찰들은 릴리안에게 동정의 시선을 보내며 경찰모를 살짝 들어 올립니다.

"어떻게...언제 일어난 일이죠?"
가족이 될 사람이기는 했어도, 아직 가족은 아니었기에 안에있는 사람들마냥 눈물을 주르륵 흘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조금 창백해진 정도일까요.
“사인은 총살입니다. 두 시간 전, 부엌에서 일하던 시종들이 총 소리를 듣고 뛰어왔을 때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더군요.”
“경사로운 날 이런 일을 겪게 되심에 진심으로 유감을 표합니다.”
릴리안은 살인 현장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비록 경찰과 린튼 가의 사람들이 있지만 갑자기 배우자를 잃은 릴리안이 조금 창백한 얼굴로 현장을 살핀다 하여 뭐라 하진 않겠죠.
정확한 살인 현장은 홀 옆에 딸린 1층 응접실입니다.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린튼의 시체, 카펫, 열려있는 창문과 장식장 정도입니다.

릴리안은 천천히 울고있는 부인쪽으로 다가갑니다.
아마도 들리지 않을 위로의 말을 나직하게 몇마디 건네고 어제 달빛 아래에서 봤던 영애의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봅니다.
린튼의 시체에는 총살당한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태입니다. 눈도 채 감지 못했고 얼굴 절반이 피투성이입니다. 확실히 죽이기 위해 정확히 머리를 쏜 모양입니다.
린튼의 시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가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그가 쥐고 있는 것을 빼보려 한다면... 시체에 손을 대는 거니까요. 남들 몰래... 해야할 것 같네요.
(이거...실패하면 너무...그럴것같네요...덜덜덜)
실패해도 길이 있다... 세션이란 그런 것입니다.

기준치: | 60/30/12 |
굴림: | 82 |
판정결과: | 실패 |
릴리안은 테일러 린튼이 쥐고 있는 것을 빼내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경찰에 발견되고 말았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현장을 막 손대는 건 곤란하죠. 경찰의 눈초리가 그를 조금 수상히 여기고 있습니다.
대인 기능 중 아무거나 한 가지 굴려주세요.

기준치: | 70/35/14 |
굴림: | 1 |
판정결과: | 대성공 |
릴리안... 사실 카사노바의 재능이 있는 것 아닐까요?

릴리안이 말없이 그를 올려다보자, 경찰은 조금 멋쩍은 얼굴로 큼큼, 목을 가다듬습니다. 그래, 너무 슬퍼서 눈이라도 감겨주려고 한 게 틀림없다. 경찰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시체를 훼손하지 않도록 조심해 주십시오." 그는 다시 사정 청취로 돌아갑니다.
릴리안은 테일러 린튼이 쥐고 있던 것을 확인합니다. 구겨진 종이네요.
핸드아웃 보이시나요?

이건 도대체 뭘까요? 난데없이 웬 거미?
이 이상 시체에서는 단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믿을 수가 없네요."
혼약자의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카펫은 핏자국으로 너덜너덜합니다. 카펫 위에는 여러 사람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습니다.
딱 봐도 비싼 재질의 카펫 같은데. 관리도 어려울 것이 피로 적셔지다니 세탁하려면 꽤 난감하겠네요.
더 자세히 관찰할 경우, 관찰 판정이 필요합니다.

기준치: | 70/35/14 |
굴림: | 83 |
판정결과: | 실패 |
(자료...자료조사 한번만 더해봐도 될까요....침착)
자료 조사는 카펫에는 어려울 것 같고... 강행해보시겠어요?
성공하실 경우는 똑같은 단서를 드리고 실패하실 경우에는 아예 단서가 없습니다.

기준치: | 70/35/14 |
굴림: | 24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릴리안은 카펫 위에 떨어진 탄피를 발견합니다. 매그넘 계열. 리볼버에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딱 봐도 이게 불쌍한 피해자를 죽인 무기겠죠.

꿇고있던 무릎을 펴 일어나면 응접실에 있는 장식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응접실 한 편에 서 있는 장식장은 한쪽 문이 미미하게 열려 있습니다. 열린 틈 바로 앞에 놓인 것은 린튼 가의 가족 사진들이 모인 액자, 입니다만…
뭘까요? 유독 큰 액자 안의 사진이 빠져 있습니다. 누군가 억지로 빼간 느낌입니다.

이 이상 이상한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오랬동안 발화한 철냄새를 맡고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린튼 양의 유해에서 조금 떨어져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물러섭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네요.
다행히 창이 열려있지만 무거운 공기에 눌리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ㅏ.
창가에는 마침 경찰이 없습니다.

릴리안은 창가에 구두 자국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어쩐지 익숙한 크기입니다. 창가에 남은 신발 자국도요.
관찰은 필요 없습니다.

신선한 공기를 쐬며 마음을 조금 환기시키고 있는 릴리안에게 경찰이 다가옵니다.
이 망한 결혼식 날 당신을 집에 귀가시키기 위해 하인들이 분주해지는 가운데 코앞에 도달한 경찰이 진지한 얼굴로 묻습니다.
"아든 스카일러를 아시겠지요."

"그렇습니다만."
"아든 스카일러가 오늘 하루 종일 보이지 않았다면서요? 결혼식을 대놓고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말도 있던데요.”

사실에 관해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릴리안은 그대로 평연한 어조로 질문합니다.
"그를 의심하시는군요."
“린튼 가의 정원사가 1층 응접실을 빠져나가는 사람을 보았다고 하길래 자세한 인상착의를 들었습니다."
"은회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얼굴 어딘가에 흉터가 있는 남자라고 하더군요. 용의 선상에 있는 사람들 중에 제일 비슷한 사람이 아든 스카일러입니다."
"동기...도 있다고 여겨지고요."

"그렇군요. 더 자세한 증언이 있나요? 정원사 이외에 낯선 사람을 본 사람이 있다거나."
"그 외엔 없습니다. 아침 일찍 벌어진 범행이라 이만한 증언을 확보한 것만으로도 다행이죠."

"알겠습니다. 혹시 제 고용인이 돌아오면 소식을 전하도록 하죠."
릴리안이 그렇게 말했지만, 경찰들은 알테어 가의 저택까지 동행하겠다고 말합니다.
아든의 행방을 알 때까지, 의심이 걷히지 않을 것 같네요.
기묘한 일들이 가득한 아침이지만, 확실한 사실은 이 결혼은 이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행복하고 아름다워야 할 날이 피로 얼룩짐에 저택의 모든 이들이 슬퍼하고 있습니다.

"손님들에게는 응접실에 원하는 만큼 머무르시라고 하렴."
알테어 가의 고용인들에게 명령을 내려두며 가만히 덧붙입니다.
"아든이 돌아오면 바로 내 방으로 와달라고 전해주고."
뒤의 말은 당부에 가깝고, 조금 더 조용합니다.
릴리안의 귀가를 위해 마차가 준비되는 가운데, 테일러 린튼의 부모님 되는 사람들이 망연히 앉아있다 당신을 응시하는 게 느껴집니다.
그들은 릴리안만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 태도는 다소 기형적이라 느껴질 지경입니다. 어제의 파티 때 느꼈던 시선처럼...

"부인, 곁을 지켜드릴까요?"
릴리안이 무어라 말을 해도 그들은 입을 열지 않습니다. 딸을 잃은 충격이 그렇게 컸던 걸까요?
릴리안은 문득, 어디선가 강한 시선을 느낍니다. 이 집엔 외부인을 빤히 쳐다보는 것들밖에 없는지...
시선이 느껴지는 장소는 린튼 가 저택 한구석에 있는 풀숲 속입니다.

아까 시선이 느껴졌던 쪽을 염두에 두고 이른아침의 린튼가를 천천히 거닐 생각입니다.
린튼 가의 풍경은 알테어 가와는 사뭇 다릅니다. 조금, 삭막하네요. 어제 테일러 린튼이 말했던 것처럼 정원에는 나무와 풀만 무성해 보입니다.

발자국과 경관의 말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도는 중이지만요.
풀숲에서 조금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자세히 보려면 관찰 판정이 필요하겠네요.

기준치: | 70/35/14 |
굴림: | 5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릴리안은 무성한 풀숲 사이에서 하얗고 벌레처럼 생긴 무언가가 당신을 응시하다 사사삭 기어가 사라지는 것을 발견합니다.
풀숲이 무성해서 쫓아가기는 어렵겠네요.
(음..............)

어젯밤부터 많은 일들이 있어서인지 막 시작한 하루에 이미 피곤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돌아갈까요. 마차가 준비된 것 같네요.
(컴백!)
알테어 가의 저택으로 돌아오자 저택은 그야말로 난리입니다.
당연하죠. 어떻게 성사된 정략결혼인데, 아니, 결혼은 둘째 치고 사람이 죽었으니까요.
심지어 유력한 용의자가 집안의 고용인 중 한 명이라니, 뒤숭숭할 수밖에 없죠.
릴리안을 맞이하는 저택 사람들의 얼굴에 수심이 조금 감돕니다.
아든은 아직 행방을 모르는 것 같네요.
지금 이 상황에서 아든이 미심쩍은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당장 경찰이 한 말만 봐도 말이에요.
아든과 닮은 사람이겠거니 하려 해도 여러 정황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든이 결혼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결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해서 상대를 죽이려고 할 만한 사람이었나?
그런 생각 정도는 들 수도 있겠네요.


만약 아든이 정말로 범인이라면, 아무리 그래도 이곳으로는 돌아오지 않을거라는 생각도요.
아든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하는 중, 저택 밖이 조금 소란스러워집니다.
아든!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르고, 창 밖을 보면 온종일 보이지 않았던 익숙한 얼굴의 주인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자세히 보려면 관찰을 굴려주세요.

기준치: | 70/35/14 |
굴림: | 1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릴리안은 아든이 어딘가 피곤해 보인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하루종일 외출을 했으니까, 그럴만도 하지만요.
릴리안의 시선을 눈치챈 건지, 아든이 문득 고개를 듭니다. 눈이 마주쳤는지, 단순한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요.
피곤해 보이지만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감돌고 있습니다. 온통 이상한 일들이 가득한 하루...일까요.
경찰이 아든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아마 알리바이를 물어보는 거겠죠.
아든이 한쪽 어깨에 맨 가방을 열어 무엇인가를 꺼내 설명하고 있는 듯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저택 사람들을 향해 가볍게 허리를 숙입니다.
"소란스럽게 만들어서 죄송해요. 이런 일이 생긴 줄은 몰랐어요."

'이리 와.' 아까의 미소를 돌려주듯 연한 미소를 띤 얼굴은 그렇게 말하는 듯 합니다.

"나 없는 동안 한바탕 난리가 났나 보네."

"방이 비어있지 않아서 놀랐니?"
마치 소소한 장난의 반응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한 질문은 들은 말에 대한 대답이라기엔 애매합니다.

제법 살풍경한 내용이지만 말하는 사람의 어투가 너무 태연해서 일상적인 대화로 보일 정도입니다.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습관적으로 창 밖을 한 번 흘끗거립니다.
"뭐, 잘 설명해서 돌려보냈지만."

릴리안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냥 대답에 따라붙는 동작입니다.
"그러게 종일 어디에 있었어. 내가 알테어 가에 있는 마지막날인데 배웅 하나 없이-."
릴리안의 말투 또한 부드럽고, 얼굴은 여느때와 같아 둘 사이에는 아주 일상적인 분위기가 흐릅니다.

어깨를 으쓱해 보입니다.
"인사도, 배웅도 어젯밤에 다 했잖아. 다 잊고 태연하게 보내주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사람인지라 그게 어려워서. 알테어 가의 고용인으로써 불경한 태도이긴 하지만, 하객도 아니니까 그냥 빠지려고 했지."
아든은 이야기하고 조금 멋쩍었는지 슬쩍 시선을 돌립니다. 섭섭했겠지. 미안. 덧붙이는 말은 조금 목소리가 작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까 더 섭섭한걸."
운을 뗍니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가문의 고용인이기도 하지만 너는 내 사촌인데, 하객이 아니라는 말은 어폐가 있지. 아니면-"
옅은 은회안을 옆으로 비꼈다가, 본인에게 결정권을 줄 수 있는 질문인 양 말을 맺습니다.
"어제 명령을 내려둘 걸 그랬지. 린튼저택까지 동행했다가 가장 가까이에서 날 배웅하라고."



"네가 명령했어도, 나는 오늘 너를 배웅하러 동행하지 않았을 거야. 다행이네. 더 불경한 짓을 하진 않게 되어서."

"그렇구나. 나도 그렇게까지 널 괴롭힐 생각은 없었으니 안심하렴."
낮아진 시선에 아든의 발끝이 들어옵니다.
"아침에는 나도 어느정도 그 사람들 말에 기울어 있었어. 만약 그렇다면 이젠 영영 내앞엔 안나타나려나, 하던 참이었는데."
고개를 든 릴리안의 얼굴은 밝아보입니다.
"어서와."

밝아 보이는 릴리안의 얼굴과 달리 아든의 얼굴은 도리어 조금 어두워집니다.
그 때 릴리안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여종이 빼꼼 얼굴을 내밉니다.
잠깐 와서 벽에 거울을 다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네요.

손을 가볍게 흔들고 방을 나섭니다. 아든과 여종이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방문 너머로 들립니다.
지능 판정해주세요.

기준치: | 60/30/12 |
굴림: | 1 |
판정결과: | 대성공 |
(실패 아니면 대극대)
릴리안은 대화를 나누던 아든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사람이 살해당했다는 비극을 전해들었음에도, 그는 전혀 유감이라고 생각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아침이 오면 밤이 따라오는 것처럼. 마치 이 모든 게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처럼 여상한 태도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든이 짐을 두고 갔네요.
열어보지 않아도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릴리안이 그럴 성격이 아니라면 굳이 억지로 열 필요는 없어요.

혼자 남으면, 어느 새 우울한 기색이 돌아와있습니다.
아든이 남의 성가신 시선을 거치지 않고 돌아온 일은 예상과 다르게 정말로 기쁜 일이었지만, 자신까지 여기 돌아와서는 소용없었을 날이었으니까요.
그애는 불쾌해할지도 모르지만, 또 둘만 있게 된다면 한번은 물어보기로 할까요.

간단한 일이었는지 아든은 금방 돌아옵니다. 도와줘서 고맙다고 쿠키를 얻어왔네요. 도련님과 나눠먹으라고 넉넉하게 줬다며 릴리안에게도 조금 나눠줍니다.

아든이 받아온 과자를 무심코 받아듭니다.
"너라면 어땠을까 생각하고 있었지."
과자를 입으로 가져가지 않고, 반으로 쪼갭니다. 그다지 의미없는 동작입니다.
"아든, 말해봐. 정말로 네가 한게 아니야?"
릴리안의 말투는 평연, 아니 골똘합니다.

시선 끝으로 과자부스러기가 바닥 틈을 향해 떨어집니다.

조금 놀란 눈으로 릴리안을 보고 있지만, 이내 눈빛이 차차 무뎌집니다. 마치 이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처럼.
"모든 상황이 날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는데, 너 같이 명석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고 했다고 의심을 거둘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
팔짱을 낀 아든은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좋을대로 생각해.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으니 해명하는 것은 내 재량이고, 믿느냐 마느냐는 너의 재량이지."

"보고 들은 게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네 대답을 듣고싶은거야."
릴리안의 표정은 이제 어둡지도 밝지도 않습니다. 그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듯이, 혹은 여전히 무언가를 기다리듯이, 잔잔합니다.
"네가 아니라고 하면 아닌거고, 하지만 너라도 이제와서 그사람들에게 돌아오라고 할 생각은 없어."
검지로 관자놀이 옆을 규칙적으로 두드리자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손끝에 걸립니다.
"화는 나겠지만-."

조금 복잡한 얼굴입니다. 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보지 않으면 읽어내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사람이었지만, 새삼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을 조금도 간단하게 풀지 않는 데에는 자신의 몫도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솔직해지는 건 어제로 충분했잖아."
그러고 보니 릴리안이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렸을 때에는 화를 사는 게 조금 두려웠고, 자라서는.. 신경질을 내는 건 거의 제 몫이었고 서로 화를 돋울 만한 행동을 하지 않고 선을 잘 지켰기 때문에.

릴리안은 마치 간단한 수식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처럼 눈을 깜빡인 뒤, 손을 얽을 머리칼을 뒤로 넘겨버립니다.
"그런일을 저지른 범인이라면 보통이상의 처벌이 가해지겠지-. 나는 화내겠지만, 네가 그런 일을 당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이성을 잃고 화내지는 않을거야."
마지막 말에는 심히 유감인 듯, 고개와 눈썹을 기울였다가,
"그래서, 해명 말고 대답을 줄 생각은 여전히 없니?"

조금 피곤한 어투로 비슷한 말을 건네고, 바닥에 놓은 가방을 도로 어깨에 걸치듯 맵니다.
"난 안 했어. 너도 알잖아. 그치. 뭐 이런 말이라도 해야 믿을 만했나? 이만 쉬어. 오늘 너도 일이 많아서 피곤했을 테니까."
등을 돌려 릴리안의 방을 나섭니다.

릴리안은 팔짱을 낍니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서 있다가, 지나간 일은 지나보내기로 결정합니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사실 죽은사람에 대해 원인을 찾는 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당장 내일부터는 다시 자신의 가치를 위해 노력해야할텐데.
피곤함이 한꺼번에 밀려와 매우 거추장스럽다고 느낍니다.
아든이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알테어 가의 집사가 따뜻한 차 한 주전자와 함께 내일 린튼 가 사람들이 방문할 예정임을 알립니다.
결혼이 무산되었으니, 뒷정리를 해야겠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러 오는 것 같다고 전합니다.

해야만 하는 일이니 그사람들을 만나겠지만, 이유가 이유인만큼 썩 달갑지않네요.
또다시 피곤한 밤이 깊어집니다. 차 한 잔 했으니, 잠이 잘 올까요?

지친 몸을 예의상 눕히긴 했으나, 쉽게 잠들 수 없는 밤입니다.
잠을 설치며 뒤척이던 릴리안은 문득 문틈으로 빛이 들어왔다 사라지는 것을 발견합니다.
제법 시간이 늦은 것 같은데, 릴리안처럼 잠들지 못한 사람이 또 있나 보네요.

혹시 이 시간까지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면 밀크티를 부탁하고, 아니라면 정원이라도 거닐 생각입니다.
복도로 나가보면 릴리안과 같은 층에 있는 아든의 방이 불이 켜진 채 열려 있습니다. 아까 그렇게 나가더니 아직 잠들지 못한 걸까요?

아든의 방으로 다가가면 열린 문틈 사이로 그의 방이 얼핏 보입니다. 아무도 없네요.
다만 바닥에 이런저런 물건들이 대강 흐트러져 있을 뿐입니다.
바닥에 신문과 종이들이 흩어져 있고, 수첩이 펼쳐져 있습니다.

주인이 없는 방에 들어가는 건 예의가 아니므로, 문가에서 더 발은 딛지 않고.

"...릴리안? 아직 안 잤어?"
계단을 올라온 아든이 고개를 기울입니다.

"생각이 많아서. 너는 이런 시각까지 피곤하지 않아?"

다가오는 아든의 얼굴이 방의 불빛 때문에 좀 더 선명히 보입니다.
잠이 잘 안 온다고 태연하게 대답하는 아든의 팔에는 이상하게 상처가 가득합니다.
실수로 넘어지거나 긁힌 정도로는 생기지 않을 흉터들이 군데군데 깊게 새겨져 있습니다.

릴리안의 시선이 불빛을 등지고 아래쪽으로 떨어집니다.
"잠이 안 온다고 망아지처럼 장미정원에서 구르고 오기라도 한거니?"
장난스러운 어조로 물으면서 릴리안은 손을 뻗어 아든의 손목을 끌어당깁니다.
"이렇게 빨리 자랑하러 올 줄이야-."

릴리안이 손목을 끌어당기자 그제야 제 상처를 보인 것을 알았는지 조금 당혹스러운 얼굴로 제 팔을 한 번 내려다봅니다. 그리고 힘을 실어 잡힌 팔을 빼냅니다.
"별 거 아냐. 그냥, 일을 돕다 보면 이 정도 상처는 생길 수도 있지. 정원사 아저씨도, 팔에 상처가 좀 있으시잖아."

"넌 영영 정원사 일은 안 돕는 게 좋겠어."
놓인 팔 대신 제 잠옷카라 깃을 만지작거리며 석연치않은 얼굴입니다.
"어쨌든 치료받아야할텐데. 내가 하면 안하느니만 못할테고, 사용인들을 깨우는 건 좀 그렇지."
아든의 얼굴을 다시 응시하며 결론을 전합니다.
"네가 하도록 해. 그럼 왜 자꾸 숨기는지는 묻지 않을게."

팔을 적당히 등 뒤로 숨깁니다.
"치료는 따로 안 해도 돼. 이미 다 아물어서 흉터로 남은 거야. 그냥, 이렇게 보이니까 아파 보이는 거고."
이 가라앉은 분위기가 조금 어색한지 입술을 몇 번 달싹입니다.
"이만 들어가서 자라고... 해도 잠이 잘 안 오겠지. 자장가라도 불러줘야 하나?"

"...네가, 자장가를 불러주려고?"


피곤한 기색은 여전하지만, 조금 기분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해봐."

혹시, 사서 고생하는 길을 택한 건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서로 어색하게 돌아서는 것보다는 낫겠죠.

릴리안은 불빛이 닿지않는 문옆 벽에 기대어 팔짱을 낍니다.
아든을 놀리는 것이 퍽 즐거워보입니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어버립니다.

성실하게 들으려는 듯 릴리안은 눈을 감습니다. 다시 알테어의 집으로 돌아왔다는 감각이 문득 듭니다.

릴리안의 팔을 붙잡고 억지로 릴리안의 방 쪽으로 걸어갑니다. 복도에서 노래를 부르라니, 벌칙도 아니고.
"누워서 들어야 그나마 잠이 올 거 아냐."

반론을 표하면서도 순순히 아든의 손에 끌려갑니다.
역시, 아직 여기에 있을 수 있어서 기쁜걸지도.
릴리안을 억지로 방까지 데려온 아든은 그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까지 꼭꼭 덮어준 후에 머리맡에 앉아 익숙한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반짝 반짝 작은별... 로 시작하는 국민 동요입니다.
노래를 엄청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히 듣기 좋은 목소리입니다.
천천히 노래 가사를 읊는 아든은 다른 한손으로는 릴리안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줍니다.
노랫말에 섞여 아든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합니다.

달빛만 조금 들이치는 방은 어두워서, 그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지만.. 목소리는 노래할 때와 다름없이 평온합니다.

"만약에 헤어질 수밖에 없고, 내가 널 배웅하는 쪽이라면."
문장 사이로 하품이 쏟아집니다.
"나는 네가 안보이게 될때까지 배웅할거야. 함께 있을 수 있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가장 곁에 있고싶을거고."

웃는 목소리가 노래를 마저 마무리짓습니다.
"고마워. 잘 자."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어준 아든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갑니다. 다정한지, 복잡한지 모를 밤입니다.

그런 대답을 소리내어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불확실합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간에 아침은 옵니다. 아침부터 집안이 분주하면서도 침잠한 이유는 어제의 살인 사건 때문이겠죠.
오늘은 린튼 가의 사람들이 오기로 했습니다. 두 집안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함입니다.
알테어 가의 분위기는 썩 좋지 못합니다. 좋을 수 있을 리가요. 가문의 위상을 위해 잡은 정략결혼인데 하필이면 이런 식으로…….
물론 자식의 혼사가 망쳐졌다는 사실이 더해져 더더욱 초상 난 분위기일 겁니다.
손님을 맞을 준비로 저택이 조금 분주합니다. 손님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저택 곳곳을 둘러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부엌, 휴게실, 뒷마당을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준비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 오면 사용인들이 의복을 갈아입히려고 재촉하러 오겠죠.
새벽까지 뒤척였던 여파로 연이어 하품이 새어나옵니다.
휴게실로 내려오면, 휴게실은 고요합니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만 간촐하게 되어 있을 뿐입니다.
탁자와 벽난로가 눈에 띕니다.
탁자를 보면 손님 수에 맞게 놓인 찻잔들이 있습니다. 손님용은 두 개.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신문이 놓여 있습니다.
오늘 자 신문이네요.

신문을 살필 경우, 1면에 테일러 린튼 살인 사건이 보도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겠죠.
기사 내용은 간단한 사건의 개요와, 용의자를 몇 명 추렸으나 모두 알리바이가 있어 사건은 미궁 속에 빠져드는 중이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알테어 가의 고용인이라고 쓰여 있네요. 알리바이는 있으나, 수상하긴 하다는 건가요.

빠르기도 하지-.
자료 조사 판정을 해보세요!

기준치: | 60/30/12 |
굴림: | 75 |
판정결과: | 실패 |
강행... 하나요?

기준치: | 60/30/12 |
굴림: | 10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아까도 이러더니!)
릴리안은 신문을 뒤적거리다 실종, 사망자 명단을 발견합니다.
명단에 있는 이름들은 죄다 낯선 이름들입니다만... 실종자에 린튼 성을 가진 이들이 제법 있네요.
역시 그때 파티에서 들은 소문은 사실이었나 봅니다.

릴리안은 신문을 내려놓고 목을 축이기 위해 부엌으로 이동합니다.
벽난로는.. 안 보나요...
당신의 마음 속에.. 말을 걸고 있습니다...
(저어...음.... 부엌으로...갔다가...돌아오겠습니다...)
(덜그럭)
릴리안은 부엌으로 향합니다. 아침에 마시는 홍차가 참 좋죠.
부엌에는 여종들이 모여 있습니다. 불상사가 있었다 해도 산 사람들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맛있는 냄새가 만연합니다.
여종들은 릴리안이 온 줄도 모르고 저들끼리 은밀한 이야기를 하듯이 속닥속닥 떠들고 있습니다.
릴리안이 딱히 발소리를 죽이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굴려주세요!
기준치: | 65/32/13 |
굴림: | 4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릴리안은 요리를 하며 잡담을 나누는 그들의 대화를 일부 듣습니다.
“린튼 가 사람들은 가문 구성원도 전부 공개하지 않는다고 했잖아? 그런데 이번에 죽은 테일러 린튼 씨가 마지막 후계자였다던데.”
“그럼 뭐야? 그 부부만 남은 거야?”
“글쎄, 일가친척이 몇 살아 있긴 한다는데 전부 죽으면 린튼 가도 대가 끊기는 거겠지…….”
린튼 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양이네요.

차가운 저택에서 보았던 영애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마지막... 얼굴을 보고 이야기 한 것은 딱 한번으로, 그만큼의 유감스러움을 느낄 뿐입니다.
릴리안은 여종들의 일을 방해하지 않고, 그냥 부엌에서 돌아나옵니다.
릴리안은 맛있는 냄새를 뒤로 하고 부엌을 나옵니다.
다시 휴게실로 가나요? 아니면 마당으로 가나요?
벽난로 안에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딱 좋은 정도네요. 타닥타닥, 잘도 탑니다. ....응?
문득 장작 잿더미 사이에 타다 만 종이 조각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누가 여기에 종이를 태우려고 넣었나 보네요.

종이 조각을 꺼내면 기묘한 글자들이 일부 적혀있습니다.
<아이호트의 거래>, <숙주에 관하여>.
일부가 타서 내용은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겨우 몇 개의 단어만 읽히네요.
…전염을 통한… 지배…….
…그리고 그 아래에 그려진 거미 그림….
테일러 린튼이 쥐고 있던 쪽지에 그려져 있던, 그 거미 그림입니다. 이런 문헌이 저택에 있었던가요?
이성 판정입니다.

기준치: | 44/22/8 |
굴림: | 14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원래 모르는 것은 공포도 느낄 수 없다고 하던가요. 릴리안은 이게 대체 무슨 내용이지? 하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합니다.

벽난로를 보고 지나칠 때, 릴리안은 카펫 아래에서 삐죽 튀어나온 종이를 발견합니다.
어디 수첩이나 책에서 한 페이지 뜯은 것 같네요.

암호처럼 무어라 적혀 있습니다. 지역명이 잔뜩 적혀 있네요. A에서 B로 이동. B에서 C로 이동. 마지막엔 D에 머무름...
D 지방이라면 알테어 가 저택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지방입니다.
그 밑에 적혀 있는 것은 암호입니다.
해독하려면 교육 판정이 필요할 것 같네요.

기준치: | 60/30/12 |
굴림: | 68 |
판정결과: | 실패 |
지능 판정을 성공하신다면.. 성공으로 처리하겠습니다..

기준치: | 60/30/12 |
굴림: | 81 |
판정결과: | 실패 |
(가망이...없는거같아요.....릴리안 알테어 이.......녀석.....)
강행.. 하시나요?
릴리안.. 그는 늘 두번째엔 잘하곤 했지..

기준치: | 60/30/12 |
굴림: | 9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한참 고민하던 릴리안은.. 암호를 해독해냅니다.
예전에 책에서 읽었는데, 이걸. 그러니까… 해독하자면…. 이름이군요.
낯선 퍼스트 네임과 익숙한 라스트 네임. …린튼.
암호를 읽던 릴리안은 이 필체가 아든의 것임을 알아차립니다. 그야, 10년을 함께 한 사이니까요.
우선 이 린튼의 이름은 적어도 테일러 린튼의 부모님의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른 린튼인가요? 친척? 가문 구성원?
아든은 이걸 왜 적어둔 걸까요? 그리고 왜 이곳에 떨어뜨린 걸까요.

그런데도 말하지 않는다면, 그건 어떤 이유일까.
천천히 휴게실 옆문을 통해 뒷마당으로 걸어나갑니다.
뒷마당에는 말끔하게 관리된 정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화단 앞에서 꽃에 물을 주고 있는 아든이 있습니다.
대단한 일을 맡기지 않는다는 게 사실인지 그는 물뿌리개 하나를 들고 물을 주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릴리안의 목소리는 막 잠에서 일어난 사람답게 조금 잠겨있고, 아든을 향해 짓는 미소는 오늘도 온화합니다.

릴리안을 보는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감돕니다. 물뿌리개에 든 물이 바닥을 보일 때즘 그는 물뿌리개를 내려놓습니다.
"꽃을 돌보는 걸 좋아해서, 마당에 자꾸 서성이니까 이거라도 하래."

릴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든에게로 다가갑니다.
"설마 그러고 밤새 안 잔건 아니겠지."

낄낄거리며 눈을 깜빡입니다. 방금 전까지 물을 준 꽃을 만지작거리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합니다.
"이거 내가 물 줘서 키운 거라 그런지 좀 정이 가."


여전히 꽃을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부드러운 시선이 꽃에 닿습니다.
"자식을 잃고 슬퍼하시는 분들이니까, 꽃이라도 보시면서 위안을 얻으시면 어떨까 싶어서."

꽃을 만지작거리는 아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합니다.
"린튼 가문 사람들을 달가워하지 않았잖아."
그런 사람들한테 네가 아끼는 꽃을 꺾어다주려고? 시선을 올려 그렇게 묻는듯합니다.

릴리안과 눈을 맞추지 않고 여전히 꽃만 보다가 조용히 속삭입니다.
"이 꽃.. 꽃말이 고독이래. 자식을 잃고 고독해시실 분들과 어울리지 않아?"

평소와는 다르게 눈을 마주쳐오지 않는 아든을 잠시 올려다보다 바로 섭니다. 천천히, 옷자락에 묻은 흙을 털어냅니다.

잔잔하게 웃으면서 꽃에 고정했던 시선을 거두어 릴리안을 향합니다.
그의 눈에는 언제나 다소 깊은 감정이 어려 있었지만, 근래 그의 눈에서는 감정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맹목적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근래 답지 않은 행동과 말을 반복하던 것도 떠오르고요.



"내가 갑자기 답지 않은 행동과 이상한 말들만 늘어놓으니까... 혼란스럽겠지."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어. 지금의 나는 좀 이상해. 이상해졌어. 이상해진 이유를 설명할 수 없으니까, 너에게 이상한 모습만 보여주게 된 거야."
다소 두서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는 자각이 있는지 몇 번이고 말을 머뭇거리다 늘어놓고, 머뭇거리다 늘어놓기를 반복합니다.
"곧, 다 설명할 수 있게 될 거야."

"혼란스럽지는 않아. ...생각보다는?"
이내 희미한 미소, 언제나의 그것보다 조금은 더 다정해보입니다.
"그저 궁금할 뿐이야. 하지만... 설명이 머지 않았다니 곧 알게되겠지."
꽃줄기를 밟지 않을만큼만 아든을 향해 가까워집니다.
"나는 쭉 궁금하니까 알고싶을 뿐이야. 네가 뭘 하든 그게 나한테서 멀어지려는 것만 아니라면, 그리 크게 상관은 없어."

"나는 늘 너랑.. 좀 더 가까워지고 싶었어. 물론 네가 네 나름대로, 매우 가까운 곳에 나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만큼, 더 욕심나는 게... 사람 마음이잖아."
허리에 둘러진 팔에 조금 힘이 실리고, 덤덤하던 목소리 끝이 조금 떨립니다.
"하지만... 나는... 내 마음이 더 중요해서, 내 마음밖에 몰라서... 너를 화나게 만들 거야."
떨리던 목소리가 다시 잔잔하게 가라앉습니다.

"아든, 네가 나를 화나게 만든다고 해도."
아침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든의 어깨에 부드럽게 턱을 기댑니다.
"세상에서 제일 나와 가까이 있는 건 너야."
기댄 턱 언저리로 잔떨림이 전해져옵니다. 이전과 같은 토닥임은 없습니다.

"릴리안. 내 방 침대 아래에 권총이 한 자루 있어."
이 말을 꺼내기까지 너무나 오래 고민했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이 애틋함이 조금 더 오래 계속되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내가 이곳을 떠나면, 그걸 가지고... 날 만나러 와줘."
이번에는 먼저 품을 벗어나는 건 아든 쪽입니다.

"네가 멀어진다면, 내가 이유를 납득할 수 있길 바래야겠네."
여느 때처럼, 웃고있지는 않습니다.

릴리안의 얼굴을 보고도 아든은 태연히 다시 한 번 당부하고, 마당을 벗어나 어딘가로 향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릴리안이 그의 말을 곱씹을 시간도 채 주어지지 않고, 저택이 다시 한 번 소란스러워집니다.
탕. 총소리가 울립니다.
소리의 근원지는 현관 쪽인듯 합니다.

술렁이는 소리들을 따라 현관쪽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나는 마음에 드는 설명을 바라.
아든, 그건 네가 내 앞에서 직접 설명해줘야하고.
현관에 도착한 릴리안은 다소 냉랭한 표정입니다.
릴리안이 예상한 그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다만, 총 소리를 듣고 달려온 사람들과, 손님을 맞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사방에 있다는 점은 예상과 조금 다를까요.
현관에 쓰러진 린튼 부부는 피 웅덩이 한가운데에서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습니다.
목격자들은, 아마 릴리안을 제외하고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듯 경악에 물든 낯으로 린튼 부부와.. 그의 앞에 서 있는 아든을 응시합니다.
한 손에 리볼버를 쥔 아든은 여전히 태연한 얼굴입니다. 이 모든 일이 당연하다는 듯이.

청회색 눈동자는 엄격합니다.
이건 너무, 허술하지 않을까?
저 태연한 낯빛으로 보건대 일부러 그랬거나, 자포자기했거나...어느쪽이든 심중은 알 수 없습니다.
아든은 이 참상이 익숙한 얼굴로 웃어 보입니다.

"이쯤 되면... 들켜도 괜찮겠지."

궁금해하듯이, 캐묻듯이, 흥미를 잃은 체 하듯이, 불만족스러운 것처럼.
"이렇게 빨리 멀어질 거라고는 안했잖아-."
웅성거림 속의 중얼거림이 아든에게까지 닿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든이 입을 떼기도 전에 누군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릅니다. 살인자야!
알테어 가의 고용인들이 아든을 제압하고 그의 손에서 총을 뺏어듭니다.
경찰에 살인 사건을 신고하는 사람들 틈에서 아든은 한번도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무릎을 꿇습니다.
그 눈은 평온하고, 다소 가라앉아 있습니다.
배우가 무대에서 퇴장할 차례를 기다리듯 가만히 무릎꿇고 있자면, 경찰이 들이닥칩니다.
목격자도, 증거도, 시체도, 범인도 있는 현장에서 범인인 그가 도려내지듯 구속됩니다.
손에 수갑이 채워지는 것을 보고 있던 아든이 문득 눈을 들어 릴리안을 찾습니다.

누구를 향하는지 모를 말이지만, 누구를 향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한 말입니다.

이전날 창가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마침내 아든이 경찰에 연행되어 완전히 시야에서 벗어납니다.
저택 모든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분위기에서 웅성거리고 있습니다.
아든이 살인마라니... 그럼, 테일러 린튼을 죽인 사람도...?
사람들이 저마다 웅성거리고 있는 가운데, 릴리안이 제일 태연한 것처럼 보이네요.
이제 어떻게 할까요. 만나러 와달라는 그의 말에 따르나요, 아니면... 어떤 선택이든 그는 참견하지 않을 겁니다.

그 안 어디에도 아든이 없다는 걸 면밀히 확인한 후에, 드디어 어떤 불만족스러움, 의심,혹은 다른 것을 가라앉힌 듯이 외투를 걸칩니다.
불필요한 것은 일체 없이 방에서 나와서는, 어젯밤 불이 밝혀져있었던 아든의 방으로 향합니다.
총은 뭐에 쓰려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우선은 그 요구를 들어줄 생각입니다.
그래야 만족스러운 설명을 할 마음이 들지 않겠나요.
아든의 방으로 가서, 그의 말대로 침대 밑을 살피면 권총 한 개와 노트 한 권을 발견합니다.

어젯밤에 방에 펼쳐놓았던 노트일까요.
릴리안이 노트를 펼치자 그 안에는... <시간을 돌리는 주문>이 적혀 있습니다.
내용은 다소 장황하지만, 아든의 필체로 주문의 요약본이 적혀 있습니다.
1. 술자가 자기 자신에게 주문을 건 후 타인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 시간이 특정 시점-최대 한 달 전으로 돌아간다.
2. 술자가 죽인 이들은 돌아가는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과거로 시간을 돌려도 여전히 죽은 사람이 된다.
3. 이 과정에서 얻은 술자가 상처 또한 그대로 육체에 보존된다.
4. 타살이 아닌 자살을 할 경우 술자 또한 시간을 돌리지 못하고 사망에 이른다.
시간을 돌리는 주문? 마법사도 아니고, 이런 게 가능한가요?
이성 판정입니다.

기준치: | 44/22/8 |
굴림: | 77 |
판정결과: | 실패 |
1d3 만큼 이성 감소합니다.

rolling 1d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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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
이성 2만큼 감소합니다.
릴리안은 <시간을 돌리는 주문>을 습득했습니다.
문득 릴리안은 왜 아든이 총을 가지고 만나러 와달라고 하는지... 생각합니다.

아든이 죽었다고? 아니, 그 애는 죽은적이 없는데.
하지만 이 노트의 내용이 진실이라면... 그 태연함, 상처들...
짐작은 불쾌했기 때문에, 빗나가기를 바랍니다.
어쨌거나 본인을 만나서 물어보면 되겠죠.
또다시 대답을 피한다면, 그때는 정말로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할거예요.
릴리안은 유치장으로 아든을 만나러 갑니다.
릴리안은 아든이 구금되어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릴리안이 피해자인 린튼 가의 영애와 결혼할 예정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경찰들은 면회를 허락합니다.
철창 너머에 앉아있는 아든은 그저 웃고 있습니다.

저택에 있을 때처럼 고요한 어투입니다.


"이런 데서도 웃고있는걸 보면 네가 바라 마지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거구나."
친구를, 친척을, 고용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그러듯이, 부드럽고 상냥하지만 조금은 오만한 미소가 걸립니다.
"내가 그랬을 거라고 확신해?"
순순히 부탁을 들어주었노라고 인정할 마음은 없습니다. 적어도 지금은요.

쓴웃음을 머금은 얼굴이 철창 너머의 릴리안을 응시합니다.
"네가 총을 가져오지 않아도, 나는 시간을 돌릴 방법이 있어. 난 범죄자잖아. 죽임을 당할 방법이야... 조금만 찾아도 나온다고."

"화를 낼지 말지는 이제부터 결정할 거란다. 그런 말을 하기 전에, 왜 그러는지 이유를 설명해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
케이프 자락을 무심하게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내리깝니다.
"아니면, 얼마나 더 기다려줄까-?"
고개들어 철창너머를 응시하는 눈빛은 직설적입니다.

아든은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습니다.
"말했잖아. 곧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런말은 주위에 듣는 귀가 많은 곳에서 하기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너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매끈한 미간이 흐트러집니다. 진심으로 불가해하고 불쾌한 것을 마주한 것처럼.
"나는 충분히 기다릴 마음이 있지만 이 행동에는 납득이 필요해."
"지금 당장."

팔을 걷어 일전에 보여줬던 상처를 다시 보여줍니다.
"그 주문을 사용한 내게 죽은 사람들은 절대 되살아날 일이 없으니까."
"이번이 여섯번째야. 그동안은 들키지 않고 처리해왔지만... 네 결혼 상대와 예비 장인, 장모를 죽이는데 들키지 않게 하긴 어렵지."
두 팔에 가득한 상처를 내려다보는 얼굴은 여전히 태연합니다.
"그럼, 린튼 가 사람들을 왜 죽이는데? 라고 묻겠지."

정말로 모든 걸 계속해서...
여섯번이나. 왜?
시선은 당신의 얼굴에, 입가에 고정한 채입니다.

태연했던 얼굴이 조금 일그러집니다.
"지금 여기서, 너와 이렇게 마주하고 있으니..."
"내가 한 말 기억하고 있지. 난 내 마음이 소중해서, 너를 화나게 할 거라고."
"...린튼 가를 몰살하려고 하는 이유는, 네가 그 집안과 완전히 인연이 끊기기를 바라서야."

하지만, 몰살이라니...
"좀 극단적이네."

근래 들어 제일 재밌다는 얼굴로 웃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 네가, 나를 환멸하게 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냐구."
"린튼 가는... 너를 원해. 데릴사위로써가 아니라... 그들이 모시는 신에 대한 제물로."
"그리고 그 가문이 없어지지 않는 한 너를 노리는 사람들은 계속 나타나겠지."

했을때는.
오히려 아든이 웃으며 건넨 질문대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죽음이나 살인은, 그정도의 목숨이나 각오를 거는 행위는.
그럴만한 대상이 릴리안 자신이라면 그건 릴리안 안에서 수지가 맞지 않는 이야기로 치부될 뿐입니다.
"그리고, 끝이 아니구나."

"그 두 사람이 끝이 아닌거야."
납득과 수긍과 동의는, 모두 다른 말이지만요.

어깨를 으쓱합니다.
"다행이야. 내게 주어진 기회 안에서, 내 목적을 이룰 수 있었으니까."

철창에서 한발짝 물러납니다. 단순하고 가볍게, 의아한 목소리.
"하지만 아든, 그사람들은 내버려두면 되잖아?"
궁금증이 풀려 말끔한, 전혀 화나지 않은 얼굴입니다.
"그 사람들이 나를...제물로 쓴다한들 뭐 어때."
더 이상 이 화제에서 심각성이나 의문점을 느끼지 못하는 목소리입니다.

"오히려 어떻게 여섯 번이나 죽을 수 있지."
빈손이 철창의 살을 쓰다듬습니다.
새로운 종류의 의문, 그보다 놀라움, 감탄.
"아든,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해. 내가 널 나오게 해줄 방법을 알아볼게."



"...그 사람들을 놔둘 생각이었다면, 내가 지금 여기에 있을까? 제발 결혼하지 말라고 너를 붙잡았을까?"
웃음 섞인 목소리 끝에는 냉랭한 목소리가 돌아옵니다.
"네가 위태하지 않도록, 위험하지 않도록, 고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내가 말했었지."
"나는 진심이었어."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던 그가 일어나 철창으로 다가옵니다.

"이젠... 정말 얼마 안 남았어."
"내가 할 일도, 내게 남은 시간도. 이제 정말 마지막이야."

릴리안은 아든이 다가오는만큼 철창에서부터 물러섭니다.
"그게 다 무슨소용인데?"
"내가 위태하지 않도록, 위험하지 않도록, 고되지 않도록 한들,"
"아든 스카일러가 자신을 희생한다면 그 보상은 누구에게 돌아가겠어?"
고개를 젓자, 긴 머리칼이 신경질적으로 흔들립니다.

눈빛만이 철장 너머를 꿰뚫습니다.
"그게 네가 네 자리에서 기꺼이 할만한 일 아니야?"

"너는, 집안에서 시키면 얌전히 결혼도 하는데, 나는,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었어. 처음... 처음이 무서웠지. 그 후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어. 죽이는 것도, 죽는 것도.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나의 전부였으니까."
조금 감정적으로 내뱉어지던 말들이 점차 느려집니다.
"그냥... 일이 끝나면, 다 어떻게든 될 거니까. 너는 평온한 삶을 누릴 테고... 나는... 없는 사람이 될 테니까. 그럼... 그런 엔딩이야."
"그런데 결혼식 전날이 되니까... 조금, 네 마음을 조금은 떠보고 싶어져서. 이대로 혼자 죽는 건 조금... 슬프지 않나 싶어서 마음이 약해졌는지도 모르지."


창살에 이마가 세게 닿습니다.
"아든, 내가 너였다면 널 죽였을거야."
짧게 소리낸 웃음은 건조합니다. 보내는 시선은 창살의 그늘을 반사해 깊고 어둡게 빛납니다.
"어떻게든 되지 않아. 네가 없는데 어떻게든 될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해?"
은회색 물결이 흔들립니다.


릴리안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는 눈은 차차 차갑게 가라앉습니다.
"그리고 그 주문을 쓸 때, 술자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자, 그럼. '그 주문에 대가는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이 오겠지."
"그건 술자의 존재야."
"너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겠지. 시간을 되돌리고 다른 사람의 존재를 지워버린다는 게 그냥 마법처럼 낭만적으로 짠, 하고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거."


"남의 일처럼 말하는구나."
짤막한 손톱 끝이 그러쥐는 기세로 쇠끝에 눌려 휘어집니다.
"내가 말했지. 멀어지는 것만 아니면 된다고."
천천히 손을 떼면 비틀거리다 바로섭니다.
"더한 걸 생각해 낼줄 몰랐어. 정말 대단한걸."


조금 슬퍼 보이던 얼굴이 오히려 이죽거리는 웃음을 내뱉습니다.
"널 위태롭게 할 일은 없잖아. 사라지는 거라고. 네 약점을 누군가에게 말할 일도, 널 불안하게 할 일도, 없는 거야. 내가 그냥 가출한다고 할 때보다 낫지 않아?"

"큭, 후후후후....!"
결국 버티지 못하겠다는 듯이, 자세를 바로 유지하는 것도 그만 둔 것처럼, 릴리안은 주저앉아서 폭소합니다.
이만큼 웃어본 적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만큼 내킬때까지 웃음을 터뜨립니다.
"넌 아무것도 몰라."
즐거이 눈가에 맺힌 물기를 손끝으로 닦아내고, 헝클어진 머리를 대강 정리합니다.

"그래, 어떻게 되나 보도록 해."
은회안에는 여전히 웃음기가 가득하고, 목소리는 상냥합니다.
"난 도와주지 않을테니까, 맘대로 하렴."
그러나 가는 입가에는 못된 미소를 그린 채로, 릴리안은 돌아섭니다.
그뒤로는 일말의 멈칫거림도 없습니다.


"배웅해줄 마음이 없다는거야."
목소리는 쌀쌀맞습니다.

"그럼 이게 우리의 마지막이겠지."
"아니, 너는... 마지막이 아니겠구나. 나의 마지막이겠지."
"그럼, 너는 배웅하러 와준 거야."
"이왕 죽을 수 있다면, 다른 사람 말고 너한테 죽고 싶었는데. 역시 그건 내 욕심이었겠지."
"여섯 번쯤 다른 사람에게 죽었으면, 한 번 정도는... 내가 선택할 수도 있잖아."

바깥의 빛속에서 되돌아보는 얼굴은 새하얗고 싸늘합니다.
"네가 선택한거야."
"전부 네가 선택했잖아."
그리고 정말로, 릴리안은 완전히 몸을 돌립니다.
모퉁이 너머로 옅은 은발이 흔들립니다.
릴리안은 유치장 안의 아든을 놔두고 저택으로 돌아옵니다.
죽기를 선택한 사람입니다. 죽겠다고, 사라지겠다고. 릴리안의 의지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얼마 지나지 않아 알테어 가의 한 통에 편지가 도착합니다.
유치장에 얌전히 구금되어 있던 아든이, 어느 날 탈옥을 시도했다는 소식입니다.
탈옥을 시도하던 그가 제압하려던 간수를 칼로 찔러, 그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사살했다는 소식입니다.
"범죄자니까. 죽을 방법은 찾으면 얼마든지 있을 거야." 유치장 속에서 하던 말은 아마 그런 뜻이었겠죠.
그리고,
그 소식을 받은 다음 날, 릴리안은 평소처럼 자신의 방에서 눈을 뜹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아든이 사살당했다는 소식을 받았죠.
....아니, 사살? 누가? 왜?
오늘은 당신의 정략 결혼이 한 달 남짓 남은 어느 평범한 날일 텐데요.
멍한 머리로 휴게실로 내려가니, 여종이 오늘 자 신문을 가져다줍니다.
신문 1면에는 "린튼 가의 몰살" 이라는 기사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습니다.
(릴리안 기억을 못하는건가요??)
아뇨.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억...하고 있군요 그상태로 한달 전으로 돌아간건가요?아든이 타살된거니까 루프.....?)
약간, 혼란스러운 느낌이죠. 지금은 한 달 전인데... 어제 사살? 왜? 이런 느낌입니다.
릴리안은 루프를 자각해서 실감하는 게 처음이니까요.

성공했구나, 결국.
심하게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당연하게도, 아무도 아든의 행방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언제부터 안 보이던걸요. 라고 고개를 저을 뿐입니다.
릴리안은 어떻게 하나요?

아든은 거기에 숨겨놨을 겁니다. 비상시에 대비해서요.

정말로 네가 시간을 돌렸다면, 그 모든 게 여기에 있겠지.
아든의 방으로 향해, 그의 침대 밑을 뒤지면 익숙한 권총과 한 번 접힌 종이가 나옵니다.

종이에는 <시간을 돌리는 주문>이... 적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짤막한 편지입니다.
미안해. 화나게 만들어서.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죽을 거야. 말했잖아. 딱히 갈 곳이 없더라고.
꽃에 물도 주고, 달 구경도 하고... 그럴 생각이야.
모든 일이, 곧 끝날 테니까.
아마 시간을 되돌리고 모든 일을 마치기 전, 아든이 남기고 간 편지인 것 같네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지만 혼담은 상대 가문의 몰살로 자연스럽게 무마되고 만 하루가 저뭅니다.
릴리안은 지금 어디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그때 아든이 소중히 내려다보던 꽃은, 아직 피려면 한달 정도가 더있어야하던가요.
아마 그 꽃은, 피고 시들면 다시 심고, 피고 시들면 다시 심기를 반복한 것인지... 그 화단에는 비슷하지만 다른 색의 꽃이 피어 있습니다.
바람이 기분 좋게 부는 밤입니다.

그런 아쉬움을 느낍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정원을 거닐던 중, 발소리가 들립니다.
무언가를 질질 끌고 오는 소리와 함께.

이윽고 무언가를 질질 끌고 오던 발소리가 멎습니다.

질질 끌고 온 물뿌리개를 도로 들어올립니다.

돌아서지 않습니다.


"무례하네. 바로 내방으로 오라고 그랬잖아."

덤덤한 얼굴로 물뿌리개를 기울여 제일 가까이 있는 화단에 물을 주기 시작합니다.

상처있는 손이 물뿌리개를 기울이는걸 바라보다가, 자주 기대곤했던 어깨선을, 흉진 입매를, 옆얼굴을 느릿하게 뜯어봅니다.

"하지만... 가만히, 넘어가주면 안 될까."
한참 망설이다 말을 덧붙입니다. 비열한 말이란 걸 알고 있지만. 평온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으니까요.
"약 10년간... 너와 함께 한 인연을 생각해서라도."

평소의 그 잔잔한 얼굴로 기다려주던 릴리안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걸고 묻습니다.
"지금 내가 여기에 있는것도 방해가 된다, 그런 이야기일까?"
내용은, 가끔 그랫듯 짓궃은 정도입니다.
어조와 표정과 내용 어디에도 화난 기색은 없습니다.

"네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넌 분명... 그 때, 네가 선택한 일이라고, 나는 배웅해주지 않겠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돌아섰잖아."
"그런데 왜 다시 웃는 얼굴로 내 옆에 서 있는 거야?"
꽃잎과, 줄기와, 흙이 흠뻑 젖는 것을 확인하고 물뿌리개를 내려놓습니다.

들었던 말을 돌려줍니다.
"아든, 네가 착각하는 게 있는데."
빈 물뿌리개를 발끝으로 이유없이 건드립니다.
"나는 널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게 아니야. 네 결정을 납득하지 못한다고 해서 너를 싫어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다니."
그저 난, 입매를 검지로 슬쩍 문지르며 어울리는 단어를 찾은 뒤에

최고로 화사한 얼굴로 웃어보입니다.

"맞아. 난 고집스럽고, 답 없는 사람이지."
"너를 사랑하고."
"사촌이자 주인인 사람을 사랑한다는 거 말야. 진작 답 없었지."

"나도 그렇단다."
기분좋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밝게 웃습니다.
"지금 건 꽤 좋았어. 평소에도 그렇게 솔직하면 좋을텐데-."

왠지 옆에 서 있는 아든이 조금 멀게 느껴집니다. 뭔가.. 조금 흐릿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그렇게 느껴지는 게 아닙니다. 흐릿해지고 있어요.
제 손을 한 번 내려다본 아든은 느릿느릿, 시간이 다 되어가나 봐. 라고 말할 뿐입니다.

"이제 너는 안전할 거야."

몸을 돌려 흐릿해진 친구의 뺨에 한손을 가져다대고, 아직 어루만질 수 있는 감촉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아든, 내가 솔직하게 너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다면 제정신으로 내옆에 있을 수 있었겠어?"
다분히 놀리는 듯한 어조입니다.

"아니, 못 믿었겠지. 날 놀리는 거야? 했다가 너랑 또 한바탕 입씨름했겠지."
웃음을 그리던 입매가 조금 일그러집니다.
"그런데 이것도, 심장에 그렇게 좋지는 않네..."
"결혼식 전날 너를 붙잡았던 것처럼, 미련 없이 떠날 수 없을 것 같잖아."

릴리안의 웃음도 조금은 서글픈 기색이 서려있습니다. 그대로 한발짝 다가가면,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면, 키스해달라고 해도 얼마든지."
아든의 어깨에 턱을 기대고, 오른손으로 머리를 가볍게 끌어안아줍니다.
그리고, 왼손 끝에서부터, 짧게 열리는 소리.
"배웅 하는 것만 빼고."


밤의 정원에 울리는 총성에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마음껏 체중을 맡겨 포옹하는 것처럼.
"... 너는, 네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며."
손끝이 빠르게 차가워지고, 늘어뜨리면 리볼버가 풀섶 사이로 떨어집니다.
"그럼, 나도 널 존중해줄 필요 없잖니."
떨리는 눈꺼풀에서 핏기가 빠르게 가십니다. 만족스럽고, 사랑스럽고, 서글픈 표정입니다.


"...왜, 너까지 죽을 필요는 없었잖아. 난, 이런 걸 생각한 적 없었어. 나는..."
두 손으로 릴리안의 뺨을 감싸고 억지로 눈을 맞추듯 끌어올립니다.
"왜... 너도 죽으려고 하는 거야."
떨리는 눈이 핏기가 서서히 가시는 얼굴을 응시하고는, 고개를 숙여 가볍게 입술을 마주대고 뗍니다.
"모르겠어. 나는... 왜 네가..."


"네가 한 일은 다 헛수고야. 아무 필요도 쓸모도...없는, 일이야."
눈을 뜨고있는 것이 힘듭니다. 그러나 호흡이 얕아도 부드러운 목소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정작 네가, 남지 않는데......내가 안전한게,"
손을 들어 다시 한번 저 불쌍하고 볼품없는 뺨을 쓸어주고싶다고 생각하지만, 그뿐입니다.
"...무슨, 소용이니."

뜨겁고, 혹은 차가운 것이 머리께에서부터 기다리지 않고 흘러 빠져나가는 것만이 또렷한 감각으로 남아있습니다.
"정답이야, 아든 스카일러."
"네가 멀리 떠나 없어져버린다면 나는......"
눈꺼풀 반틈을 열어둔 채, 릴리안 알테어는 행복해보이는 기색입니다.
입술이 몇번 움짓거렸을까요? 하지만 더 이상의 어떤 단어는 없습니다.

품 안에서 차갑게 식은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습니다. 지독한 무력감. 마치 처음 린튼 가의 비밀을 파헤쳐버렸을 때 같은 무력감이 그를 짓누릅니다.
"하지만, 그건, 그런 건..... 딱히 내게 말해주지 않았잖아."
이것저것이 뒤섞인 울음이 밤의 정원에 짧게 울려 퍼집니다. 어차피 마지막이니까요. 누가 듣고, 유령이 우는 게 아니냐고 떠들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요.
이 순간에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붙는다면 그 끝조차 우리는 함께해야 합니다. 적어도 지금, 릴리안 알테어는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라는 단어에는 꽤 끔찍한 부분이 있어서 둘 중 한 명이 없으면 ‘우리’가 성립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마지막’ 이후에도 ‘우리’가 되려면 두 사람은 같은 세계에 속해야 했던 겁니다.
귓바퀴를 스치는 바람은 폭풍처럼 들립니다. 우리의 마지막이 아름답게 여겨지는 순간이 도래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이내 밤의 정원에 울려 퍼지던 울음소리가 잦아듭니다.
그곳에 남겨진 것은 차갑게 식은 시체 한 구였습니다.
밤의 정원에 함께 있었던 '우리'를 제외하면 아무도 모를 이유로 누군가가 죽음을 택한, 꽃향기가 코끝을 찌르는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