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PG 로그
200606 워더링 하우스 (w. 소르벳)
ㄹㅣ노
2020. 7. 26. 22:13
세션카드는 홍노님이 지원해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KPC : 아든 스카일러 (리노) / PC : 릴리안 알테어 (소르벳)
히스클리프에서 뜨악한 업보를 (서로) 쌓았던 두 사람...
업보 청산 가능할 것인가? 결과는 요약글에서 확인하세요.
(인장이 전부 엑박으로 나와버려서 죄송합니다...)
이하로는 시나리오의 직접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리노 (GM) < 워더링 하우스 >
눈을 떠보니 익숙한 천장이 보입니다.
정신이 멍합니다. 이상하게도 주변이 소란스럽네요. 창밖에서 흘러들어오는 환한 빛이 어째서인가 지나치게 낯설게 느껴집니다.
머슥..
…그러니까, 사흘 뒤는 당신의 결혼식 날입니다.
상대의 얼굴도 모르고 이름과 집안의 명성만 익히 들어 알 뿐인 마음 없는 정략 결혼 말입니다.
이 지진한 시대의 결혼은 대체로 그런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가문의 명성. 그게 뭐라고 감정을 팔아서…
그러나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저택의 모든 이들은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바쁩니다.
심지어 오페라 하우스를 통째로 빌리고, 손님들을 잔뜩 초대하여 이 결혼을 축하한다고….
잠깐만요.
릴리안은 위화감을 느낍니다.
어느 날 밤의 정원에서, 당신은 아든과 함께 죽었습니다.
당신의 안위를 위해 아든이 목숨을 대가로 시간을 돌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가 없는 세계에 홀로 남겨지고 싶지 않아서...
아든이 보는 앞에서 총으로 스스로를 쏘았던 기억이 선명한데,
왜 살아 있나요? 왜 다시 결혼식이 다가오고 있는 거죠?
이성 판정합니다.

기준치: | 45/22/9 |
굴림: | 3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루프보정인가!)
릴리안은 생각보다 충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야, 시간을 되돌려서 과거로 오는 일은 한 번 겪었잖아요.
이것도 어쩌면... 시간을 되돌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RP 시작하셔도 됩니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혹시 이게 다시 한번의 루프라면, 가장 가까운 사용인이 저 앞에 서있었을텐데요.
세상 모든 것이 맘에 안 든다는 분위기면서, 얼굴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아니면, 이번에는 무언가 달라진걸까요. 릴리안은 시험삼아 사람을 불러봅니다.
릴리안이 문 밖에 있을 누군가를 부르자, 여종이 들어옵니다.
밝은 얼굴로 그에게 예복을 건넵니다.
"도련님. 일어나셨네요. 도련님만 환복을 마치시면 오페라 하우스로 이동할 준비가 다 끝난답니다."

여상하고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미소지은 채 릴리안은 묻습니다.
"아든은 마차 점검이라도 하는 중인걸까?"
밝은 얼굴로 그를 보던 여종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묻습니다.
"아든이라뇨? 저택에 그런 이름을 가진 시종이 있던가요?"
그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릴리안의 반응을 살핍니다.

릴리안은 태연자약한 얼굴 그대로 침대에 걸터앉은 채 여종의 눈길을 받습니다.
여종은 무언가를 생각하듯 눈동자를 굴리다가 고개를 젓습니다.
"그런 사람은 저택에 없어요, 도련님. 꿈에서 새 시종을 들이셨나 봐요."
이내 다시 밝은 얼굴로 웃습니다. 저희의 시중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거예요? 장난스러운 농담까지 섞어가면서요.

릴리안도 활짝 웃으며 응수합니다.
"오늘이면 너희들의 시중을 받을 수 없게되니까 아쉬운 나머지 그랬어."
더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선뜻 일어섭니다.
"갈아입을 옷이랑 도와줄 사용인 한명을 들여보내줄래?"
여종은 들고 온 예복을 침대에 내려놓고 고개를 숙입니다. 여종이 잰걸음으로 방을 나간 후 열여섯쯤 되었을 것 같은 앳된 얼굴의 시종이 들어옵니다.
"결혼 축하드려요, 도련님." 예의바르게 인사를 합니다.

외출복에 한팔을 끼워넣으면서, 릴리안은 그애가 없는 세계는 조금 쓸쓸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릴리안의 곁에서 그의 옷매무새를 살피던 시종은 조금 들뜬 얼굴로 감탄사를 내뱉습니다.
"정말 멋져요, 도련님. 분명 스카일러 가의 자제분도 도련님을 뵈면 좋아하실 거예요."

"방금 스카일러 가라고 했니...?"
시종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대답합니다.
"결혼식이 코앞인데 잊어버리신 건가요? 그 유명한 스카일러 가문의 도련님과 약혼 하셨잖아요?”

"스카일러 가는 왕가와 연이 깊은 가문이라 이 결혼이 성공한다면 알테어 가의 위상도 더욱 드높아질 거라고 가주님께서도 기뻐하셨어요.”

하지만, 시종이 설명하는 내용은 완전히 다른 가문을 떠올리게 합니다.
"린튼 가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니?"
은청안이 가늘어져 있습니다.
린튼 가의 이름을 들은 시종은 조금 풀죽은 얼굴로 변합니다.
"아, 린튼 가…. 전에 도련님과 혼담이 한 번 오갔던 집안이죠. 원인 불명의 실종 사건으로 인해 이제는 구성원이 전혀 남아 있지 않대요.”
"아직 린튼 가가 신경 쓰이세요? 혼담이 한 번 오가긴 했지만, 다 지나간 이야기이니 도련님께서 마음 쓰실 것은 없어요.”
릴리안을 위로하려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그렇구나. 고마워. 더 지체하지 말고 출발할까?"
아무래도 이 세계는 이전의 세계와 이어지는 듯하면서 다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스카일러'라... 형편이 너무 좋지요.
아든이 '허튼 짓'을 하게 만들었던 린튼가는 이미 역사 속에 사장되었고, 거기에 이제부터 만날 사람이 짐작대로라면...
이 세상은 지나치게 릴리안의 입맛대로입니다.
아직, 중요한 당사자를 확인하지는 않았지만요.

릴리안은 익숙하게 저택 계단을 내려갑니다.
계단을 내려가 현관까지 향하는 내내 지나치는 사람들은 전부 익숙한 얼굴들 뿐입니다.
익숙한 세계 속, 이질적인 부분은 아든이 없다는 것뿐이지만...
스카일러 가와 정략 결혼이라니, 참 기묘한 일이죠. 자신들이 죽고 난 후에 세계는 어떻게 된 걸까요.
어쨌든, 우리는 오페라 하우스로 가야 합니다.
저택 입구에 준비된 마차는 멋드러지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오페라 하우스로 향할 준비는 긑난 것 같네요.
당신이 묻지 않았는데도, 시종들이 다가와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줍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향할 오페라 하우스는 수도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입니다.
오페라 하우스보다는 거대한 궁전에 가깝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릴 만큼 멋진 곳이라고 소문이 자자하죠.
왕족과 고위 귀족들이 심심치 않게 모이는 그곳에서 릴리안의 결혼 축하 파티와 공연, 나아가 결혼식까지 진행될 겁니다.
어쩐지 주변 사람들이 더 설레어 보이네요.

마차 문이 닫히기 전, 릴리안은 무심결에 픽 웃음을 보입니다.
과연 이번의 결혼은 무사히 진행되기나 할까요?
마차의 바퀴가 덜컹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릴리안은 생각에 잠깁니다.
스카일러 가문이 왕가와 연이 있을 만한 집안이었던가요?
그럴 리 없다는 걸 릴리안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부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아든이 사라질 것을 알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때보다는 조금 희망적일지도 모르겠네요.
만약 오페라 하우스에서 만날 사람이 릴리안의 예상대로라면, 말이죠.
오전에 출발한 마차는 오후가 지나 저녁에 가까워지고 나서야 거대한 오페라 하우스 근처에 도착합니다.
오페라 하우스는 해안가의 절벽 근처에 세워져 있군요.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는 들꽃이 무성하게 피어 있습니다.
절벽 아래로 내려가면 산책로로 인기가 많은 해안가가 있습니다.
이미 오페라 하우스 앞은 수많은 마차와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습니다.

내리기 전부터 인파가 만들어내는 웅성거림이나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왕실과도 인연이 있는 대가문이라는 게 부풀린 손문만은 아닌 것 같네요.
다름아닌 '스카일러'가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좋은 일이긴 하겠지만... 왠지 헛웃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릴리안이 마차에서 내리고 오페라 하우스의 입구로 향하자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던 사람들이 잠시 행동을 멈춥니다.
짐을 들고 당신을 따라오던 시종들도 그들을 따라 걸음을 늦추었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당신을 향했다가 오페라 하우스의 입구로 옮겨집니다.
“주인공이 모두 모였네!”
탄성과 같은 외침이 귀에 들립니다.

오페라 하우스 입구에는 익숙한 얼굴이 보입니다.
당신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는 당신이 아는 아든 스카일러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구태여 다른 점을 꼽으라면 조금 더 깨끗해졌네요.
마지막에 보았던, 상처가 가득했던 얼굴은 온데간데 없이 말끔한 얼굴에는 당당한 태도가 깃들어 있습니다.
정말, 그는 명망 있는 가문의 자제가 된 걸까요?

릴리안은 잠깐동안 낯을 흐렸다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일정한 보폭으로 하우스 입구를 향해 다가갑니다.
아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얼굴에는 환희도 경악도 당황도 없습니다.

(To GM)rolling 1d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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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계단을 오르고, 아든과 나란해지기 직전 한단만을 남겨두고 릴리안의 입매가 미소를 그립니다.
"기다렸니?"

"초면인데, 이렇게 살갑게 인사를 해주시는 건가요?"
"저에 대해 소개할 말을 열심히 생각해왔는데."
그는 선뜻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합니다.
"아든 스카일러라고 합니다.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비록 정략으로 맺어진 인연이지만 부부가 될 몸이니 결혼식까지 남은 사흘 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네요."

"부디 들려줬으면 좋겠네. 열심히 준비한 소개."
부드럽게 웃으면서 내민 손을 얽고, 감회랄 것도 없이 악수합니다.
"너도 말을 낮추지 그러니. 우린 또래인걸로 아는데."
하지만, 조금은...기쁠까요.
입맛좋은 세계가 그려준 허상일지, 가짜일지, 함정일지 몰라도, 우선은 아든이 있습니다.

난처하게 웃던 그가 손을 맞잡아 살짝 흔듭니다.
"그럼, 서로 가까워져야 할 사이니 말을 놓을게."
그는 악수를 마치고 손을 먼저 놓습니다.
"사흘 간 함께 오페라 하우스에 머물 거니까, 가까워질 기회야 많겠지만..."

어쨌거나, 아든 스카일러는 아든 스카일러네요.
내용물 까지도 그럴 듯하다는 게 지금까지의 감상입니다.
"그러네, 부디 네 마음에도 들었으면 좋겠는걸."

두 사람을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건성으로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릴리안에게 눈을 돌립니다.

"당연히, 나 말이야."

"얼굴은 마음에 들었어."
"결혼식까지 남은 3일동안, 함께 할 일이 많으니까 열심히 자기 어필하면 되겠네. 물론, 결혼은 쌍방 마음에 들어야 하는 일이니 나도 네 마음에 들 수 있도록 노력할게."

말하다가 멈추고, 릴리안은 무언가 고민거리를 떠올린 사람처럼 검지로 입가를 누릅니다. 그러다 이내 슬쩍 미소를 띠우며.
"아니지. 네가 노력하는 모습을 즐겁게 지켜보도록 할게."
아든은, 그러니까 릴리안의 아든은 노력이 지나쳐서 안쓰러운 경향이 있지만, 이런 식의 노력이라면 기꺼울지도 모르겠네요.

"입구에 서 있으니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아 이야기하기 번거롭네."
"오래 이야기를 나눌 상황은 아니지만, 3일간의 일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고 싶어서."

입구를 막지 않도록 난간쪽으로 비켜서자, 아까보다 아든과의 거리가 줄어듭니다.

"내일은 왕실 사람들과 우리를 위한 오페라 공연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던데. 자세한 내용은 나도 내일 들어봐야 알아."
"그리고 모레는 결혼 전야제 겸 파티가 꽤 큰 규모로 열린다고 들었어. 사람들은 왜 이렇게 파티를 좋아하는지... 뭐, 왕가 사람들까지 초대했으니 형식은 화려할수록 좋겠지."
"결혼식은 사흘 후야. 일정이 조금 빡빡하지만, 서로 불편하지 않게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네."

오랜시간 마차를 타고왔지만 릴리안은 그다지 지친 기색이 아닙니다. 일정이 끝없이 마련되어있다 한들 피곤할 일이 있을까요.
아든이라면 삼일 내내 군더더기 없이 에스코트 해줄텐데요.
"그럼 우선 짐을 풀고와야겠네."

아든이 상냥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하던 도중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아마 스카일러 가의 사람인 것 같네요.

그는 손을 짧게 흔들고 릴리안을 지나쳐 오페라 하우스 안으로 들어갑니다.

숙소는 오페라하우스의 2층에 있는 휴게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먼저 2층을 둘러볼까요.
휴게실 안쪽에 있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게스트 숙소가 나옵니다.
숙소에 묵는 건 릴리안과 아든 뿐입니다. 다른 손님들의 방은 준비되어 있지 않네요.

하우스 밖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 같았는데, 여기도 그만큼 소란스러울까요.
휴게실로 내려오면 숙소를 둘러보는 사이에 손님들이 몇 명쯤 왔는지 조금 소란스럽습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릴리안을 보고 너나 할 것 없이 인사를 건넵니다.
"어머, 알테어 가의 자제분이시군요. 결혼 축하드려요."
"후후, 스카일러 가에서 먼저 혼담을 청했다기에 어떤 분이신가 했는데 근사한 분이시네요."
온통 모르는 사람들뿐입니다.

스카일러 가에서 알테어 가에게 결혼신청을 하는 거야 '현실'과 똑같지만.
문득 릴리안은 이 혼담을 요청한 것은 누구일지 궁금해집니다.
아까 아든의 태도로 보아 그럴 가능성은 없어보이지만, 아든이 직접 꺼낸 이야기라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으로요.
릴리안의 정중한 태도에 사람들은 흡족한 얼굴입니다.
"저는 스카일러 가와 알테어 가가 잘 될 거라고 줄곧 생각해왔어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사람까지 나타나는군요. 점점 사람이 늘어날 것 같아요.

삼일동안은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고 하니,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알아둬야겠죠.
릴리안은 적당히 사람들을 지나쳐 1층으로 내려옵니다.
궁전이라는 명색이 무색하지 않게 휘황찬란한 광경이 당신을 반깁니다.
대리석 바닥과 황금색 기둥, 화려하게 반짝이는 샹들리에. 곳곳에 걸린 명화와 고급스러워 보이는 조각품들도 보이네요.
눈을 돌리는 곳곳마다 삼삼오오 귀족들이 무리지어 있고, 경쾌한 음악 소리가 홀 내부에 퍼집니다.
아든은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옆에 서 손님들을 맞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네요.
본래 아든은 자신이 주목받는 것을 그리 즐기는 성격은 아니었는데 말이죠.
무엇을 관찰하고 싶으신가요?
관찰 굴려보세요.

기준치: | 70/35/14 |
굴림: | 6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릴리안은 조금 멀리 있는 아든을 잠시 지켜봅니다.
릴리안의 시종으로 그의 곁을 지킬 때와는 태도가 확연히 다르지만, 그 외에는 크게 다른 점을 찾지 못합니다.
적어도 아든은, 일부러 태도를 꾸며내고 있진 않습니다. 물론 사람들을 계속 상대해야 하니 의례적인 말을 늘어놓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요.

이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서 뭘 듣고 모인걸까요... 역시 이전에 알던 스카일러 가문과는 입지가 다른 모양이죠.
관찰 판정 없이 둘러볼 수 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화려한 홀입니다.
바로 앞에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과 1층 콘서트 홀 입구가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에서 환영 파티가 열릴 예정이라더니, 확실히 파티장으로 쓸 수 있을 만한 크기네요.
어디로 눈을 돌려도 화려한 장식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군데군데서 파티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홀 이곳저곳에 명화가 많이 그려져 있음을 깨닫습니다. 대부분이 신화와 연관된 그림인 것 같네요.
이 정도 자리에 초대받은 사람들이라면 조용히 예술품을 감상하는 데 굳이 말을 걸지는 않겠죠.

그림들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천장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하려면, 관찰 판정이 필요하겠네요.

기준치: | 70/35/14 |
굴림: | 9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천장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연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자신의 세계로 인도하는 신의 손길이 아름답게 묘사됐음을 깨닫습니다.
섬세한 묘사가 일품이네요. 유명한 화가의 작품일까요?
그림에 감탄하기도 잠시, 릴리안은 신의 형태가 어쩐지 익숙하고도 거북하게 느껴집니다. 하얗고...
잘 모르겠습니다. 막연히 거북한 느낌이 듭니다. 당신은 이 '신'으로 추앙받는 것의 존재를 일찍이 경험한 적이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이성 판정해주세요.

기준치: | 45/22/9 |
굴림: | 16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이성은 어렵게 성공할수록 안좋은게 아닌가요...ㅇ
엄습하는 불안감..
이성도 성공해도 좋은 것이니 걱정 마셔요 'ㅅ'
릴리안은 조금 거북함을 느꼈지만, 이내 시선을 돌립니다. 이성 1 감소합니다.
안그래도 콩알만한 이성...
파티가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것 같네요. 주변을 조금만 더 둘러보고 돌아올까요.

아까의 꺼림칙한 느낌은 뭐였을까요. 어차피 꿈이라면, 좋은 기분으로 이어지다 깨어나도 좋을텐데요.
릴리안이 홀을 나와 오페라 하우스의 입구로 향하려 할 때, 문득 아든과 눈이 마주칩니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눈이 마주친 아든은 조용히 웃습니다.

릴리안은 그 찰나에 그리움을 느낍니다.
바람이라도 쐬면 현실감각이 돌아오려나요.
입구로 가서 잠깐 바람을 쐬고 들어오면 딱, 파티가 시작할 시간이 될 것 같네요.

오페라 하우스 입구는 여전히 사람들로 붐빕니다. 행동거지, 몸에 걸친 의복과 장신구로 미루어보건대 대부분이 명망 있는 귀족들 같습니다.
사교계에 자주 얼굴을 비치는 이들이라면 그들이 조금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지만...
릴리안에게는 영 낯선 사람들이겠네요.

린튼가 파티에서 일전에 보았던 사람들이 섞여있기라도 하면 반가울지 모르지만...
아니, 물론 실없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을 관찰해도 알 수 있는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모두 들뜬 얼굴로 파티에 참석하러 온 듯하네요.
다만, 릴리안은 어딘가에서 지독한 시선을 느낍니다.
(???)
사람의 시선이라고 하기엔 위화감이 있습니다.
미미한 오한이 들 것 같은 시선에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면, 이내 기척이 사라져 있습니다.

영 불편한 꿈이네.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찌푸린 미간은 금방 펴집니다.
하긴, 현실도 그렇지 않았는데, 기분좋기만 한 꿈이 주어질 리 없죠.
모든걸 헛수고로 만들고, 좋지않은 끝을 선택한 건 자신이니까요.
그래도 꿈속의 아든은 훨씬 평연해보여서 다행입니다.
부디 이 꿈이 조금 더 행복한 결말을 맞기를, 릴리안은 소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을 찾는 소리가 들리네요. 이만 갈까요. 파티의 주인공이잖아요.

최소한, 이 꿈의 주인공역할은 해야겠죠.
완전한 저녁이 찾아오고, 초청된 가수가 느릿한 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게 들립니다.
환영 파티는 결혼식의 주인공들과 그 친인척, 초대받은 하객들이 이 오페라 하우스에 도착한 것을 환영하기 위한 목적으로 열렸습니다.
거의 모든 상황이 린튼 가와의 정략혼이 결정되었을 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린튼 가와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요.

이정도면 놀랄단계도 지났다고 할까요.
단순히 꿈이라고 해도 너무 과하다고 할까요.
아이디어 굴려보세요.

기준치: | 60/30/12 |
굴림: | 6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릴리안, 사실 애써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게 꿈이 아니란 걸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진 않았나요?
이 오페라 하우스에서 보내는 3일은 단순히 결혼을 준비하고 축하하기 위한 일정은 아니란 예감이 듭니다.
정말 이 오페라 하우스는 결혼을 준비하기 위한 장소일 뿐일까요. ...아무 근거도 없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칩니다.

처음에는 이 세계에 아든 스카일러가 번듯하게 있다는것만으로 만족스러웠지만, 그렇지만도 않다는 가능성을 자꾸 떠올리는 건...
은근히 피곤한 일입니다.
릴리안은 가벼이 한숨을 내쉬고, 여전히 아는 얼굴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주변을 둘러보며 적당한 곳에 서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릴리안의 가문 친인척이 몇 서있습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모르는 얼굴들도요.
고급진 옷, 고급진 장신구, 장인의 손을 타 정성껏 세공된 시계와 브로치 등을 단, 대놓고 ‘나는 대귀족이다’라고 선언 중인 사람들입니다.
아마 저 사람들이 스카일러 가 사람들인 모양이네요.
아든은 그들에게서 조금 떨어져 누군가의 인사를 받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바쁘네요.

이미 어느정도 부정하고 있으면서도, '스카일러'가 '그 스카일러'라면 눈에익느 얼굴도 몇 있을테니까요.
릴리안은 그것을 확인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릴리안이 스카일러 가문 사람들에게 다가가자 그들은 화색을 띤 얼굴로 릴리안을 반깁니다.
"파티의 주인공이 직접 인사하러 와줬군."
"듣던대로 잘생긴 도련님이시네."
"어때, 아든은 좀 마음에 드나요?"
환영 인사가 사방에서 들립니다.

릴리안은 능숙하게 질문공세에 답하며 상냥한 낯으로 가문사람들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응대합니다.
관찰 판정 해보세요.

기준치: | 70/35/14 |
굴림: | 91 |
판정결과: | 실패 |
릴리안은 사람들을 둘러봅니다. 그들의 표정이 조금 묘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당신의 예상대로, 스카일러 가의 일원이라 자칭하는 사람들 중 익숙한 얼굴은 없습니다. 이게 유일한 수확이군요.
앞서 극단적 성공을 몇 번 하셨으니.. 그에 대한 보상입니다.
관찰력 한 번 더 굴려서 성공하시면.. 단서를 조금 더 드리겠습니다 :)

기준치: | 70/35/14 |
굴림: | 84 |
판정결과: | 실패 |
너 아든한테밖에 관심이 없구나......
릴리안은 스카일러 가 사람들에게서 별다른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만... 그들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아든의 친인척인 척 행세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제가 아는 스카일러 가의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는데 말이죠.

위기감이나 당혹스러움이라기 보다, 이것은 세계가 가짜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의 실망감입니다.
하지만 능숙하게 이어가는 대화에는 부자연스러움이 없습니다. 표정에도, 손끝을 까딱이는 사소한 행동에도.
"아든이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 그 애는 우리 가문의 자랑이니."
"준비한 음식은 입맛에 맞을런지 모르겠군. 좋아하는 음식은 따로 있나?"
"오늘 입고 온 예복보다 조금 더 화려한 것을 결혼식 예복으로 준비할 생각인데, 자네 생각은 어때?"
어쩐지 집착이 느껴질 정도의 관심이 쏟아집니다.
아든의 결혼 상대인 릴리안을 그냥 놓아주지 않을 것 같네요. 대인 기능을 상대하여 적당히 빠져나가 봅시다.

기준치: | 70/35/14 |
굴림: | 15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멋진 RP와 함께 부탁드립니다.

"그러보고니 내빈객분들과 이야기하느라 저녁을 잊었네요. 모처럼 준비해주셨을 텐데 만찬에 대한 감상 한마디라도 드리지 않으면 실례일텐데."
더없이 미안해하는 듯하지만 전혀 낮잡아보이지 않을만한, 은근한 미소와 함께 얇은 눈썹을 기울이며 스카일러 가문의 좌중을 바라봅니다.
"때가 지났지만 본격적으로 파티가 진행되기 전에 식사를 마치고 와도 될까요?"
양해를 구하는, 더없이 신사적이고 공손한 표정입니다.
릴리안의 나긋나긋한 태도에 사람들은 모두 할 말을 잃은 듯합니다.
"아직 식사도 못한 사람을 너무 오래 붙들었구만. 그래. 식사는 해야지."
"젊은 사람들끼리 오붓한 시간도 보내야 하고요. 나중에 또 봐요."
릴리안이 행여나 붙잡히지 않도록 예의바르게 인사하고 바로 자리를 뜹니다.
마침 아든도 사람들 틈에서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릴리안을 발견하자 빠르게 다가오네요.

반가운 얼굴로 웃으면서 다가옵니다.



농담조인 목소리는 조금 맥이 없는것이, 벗어나고보니 꽤나 오랜시간을 시달렸다는 실감이 듭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요.

"우리 가문에서도, 가문의 경사라고 괜히 신낸 것 같고."
어깨를 으쓱하며 손을 내밉니다.
"잠깐이라도 사람이 좀 적은 곳으로 가자. 또 눈에 띄면 귀찮아지니까."

"하긴, 아까 보니까 미스터 스카일러도 여기저기 잡혀있던걸."

릴리안의 손을 잡고 홀의 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소파로 향합니다.
(To GM)rolling 1d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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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진짜일까.
"사교계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알고있을 셈인데 말이지. 너도 이런 자리가 익숙하지 않은가봐?"

소파에 앉으며 릴리안을 잠시 올려다봅니다.
"나와봐야 나를 통해 가문에 줄 대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피곤해."

"그럼 오늘은 어때?"
밝은 창밖으로 의례적인 시선을 한번 돌렸다가
"너희 가문 사람들마냥 신나지는 않겠네."

맞잡은 손을 잠시 보고는 다시 시선을 올려 릴리안을 올려다봅니다.
"하지만 결혼 상대가 너라서, 그건 좋아. 오늘 처음 봤지만... 너랑은 좀 잘 맞을 것 같거든. 아무리 정략 결혼이라도 그렇지, 전혀 안 맞는 사람과 맺어지는 것보다는 낫잖아."
"너도 내가 마음에 든다면... 우리는 조금 더 좋은 인연이 될 수 있겠네."
홀 안에 울리는 노랫소리에 맞추어 발을 조금 까딱거리며 이야기합니다.

주변에 불필요한 사람들이 없어져서인지 릴리안도 아까보다는 여느때같은 분위기로 돌아와있습니다.
"보통 '너라서 좋아'같은 대사는 첫눈에 반한 상대한테 하는거잖아?"
잘 맞을 것 같은 이유를 꼼꼼히 설명하는 게 너답지만- 하고 덧붙입니다.
"나도 너와는 좋은 인연이 되고 싶어."
이번에는 말이야, 뒷말은 물론 덧붙이지 않습니다.


"그러게. 말이 이상했나? 초면에 건넬 만한 멘트는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네. 내가 말솜씨가 좋은 편은 아니어서..."

쿡쿡 웃으면, 잡고있던 손에 자연스럽게 힘이 실려 기울어집니다.

몸이 기울어져 조금 더 가까워진 릴리안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조금 입술을 달싹입니다.
"이것저것, 뭐라도 해서 너에게 더 잘 보이고 싶지만, 보는 눈이 좀 많아서... 응."
주변을 살피는 듯한 눈치로 한 번 둘러보고는 말을 얼버무립니다.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가 아든의 우물쭈물하는 입가로 시선을 줍니다. 대답이 나오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몇초 동안 은회안을 깜빡여 응시하다가, 제풀에 놀리는 걸 그만 둔 아이마냥 잡은 손을 뺍니다.
비어있던 옆자리에 편안히 머리를 젖히고 앉아서.
"그렇지 않아. 난 너에 대해 많은 걸 몰라. 아직도 알아야할 게 더 많을 정도지."
미소짓고있지만, 내심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저것 알려주도록 해. 나는 널 잘 볼테니까."


"다정하네. 분명,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너를 좋아했을 거야. 최고의 결혼 상대가 되었을 거 같은데?"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다시 입을 엽니다.
"지금 이 자리, 정말 즐거워?"

"이 세상에서 나를 좋아하는 건, 아마 너뿐일걸."
등받이에 젖혔던 머리를 왼팔에 걸치고, 릴리안은 감았던 눈을 뜹니다.
"별로 즐겁지 않다고 하면, 아든 스카일러가 날 즐겁게 해줄까?"

조금 허탈한 듯한 웃음을 터뜨리고는 릴리안을 돌아봅니다.
"네가 그래도 이 자리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때까지 곁에 앉아 있을 수는 있겠네."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이야."
"그럴 수 있어. 우리는... 조금 더 빨리 서로를 알아갈 수 있어."

동의의 의미로, 릴리안은 고개를 까딱입니다.
"한가지 착각할 까봐 말해두겠는데, 나는 너랑 앉아있는 게 나쁘다고는 생각 안해. 다른 어느 누구랑 앉아있어도 너랑 앉아있느니만은 못할걸."
아든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듯, 릴리안은 괴었던 팔을 내리고 좀더 편한 자세로 고쳐 앉습니다.
"그럼 얘기해봐. 너를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는 스카일러의 분위기는 어때? 넌 나처럼 사교계에도 거의 나오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자랐을까? 반려동물이 둘도없는 친구라든가...?(아니, 아든은 그런 타입까지는 아니었지만)."
이 아든이 어떤 아든이든간에, 자신의 사용인이자 소꿉친구이자 가족이 아닌 아든에게는 적어도 흥미가 있습니다.


"우리 가문은.. 어떤 신을 믿고 있어. 나는 다른 분들만큼 독실한 신자는 아니어서... 잘 모르지만."
"난 형제는 없고, 그냥, 평범하게 자랐어. 사교계에 잘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별 일 없이... 그냥. 그렇게 자랐어."
말하는 내내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핍니다.

그 단어는 영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을 끊지 않고 잠자코 아든을 응시합니다.

"너를 본 건 오늘이 처음이야. 무슨 감정 같은 걸 느낄 새도 없었지. 그냥...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하셔서."
"신이 원하는 일이, 우리 가문이 원하는 일...이니까."
아든이 눈치를 살피며 말을 겨우 끝맺을 무렵, 스카일러 가의 사람이 그들에게 다가옵니다.
"오늘 처음 만났는데 벌써부터 둘만의 밀회를 즐기고 있는 건가요? 오붓한 분위기를 방해하게 되어 미안하네요."
조금도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그녀는 아든에게 손짓합니다.
"부모님께서 찾으세요."

"가봐야 하는 거 아니니?"
스카일러 가문 사람에게 시선이 향했던 시간은 잠시 뿐입니다.

난처한 얼굴로 스카일러 가의 사람과 릴리안을 번갈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파티가 그렇게 길어지진 않을 거야. 적당히 즐기고, 푹 쉬어. 내일도 일정이 있으니까."
발을 떼기 전 조금 찡그린 얼굴로 릴리안을 내려다보던 아든이 문득 고개를 숙입니다. 코가 맞닿을락 말락한 거리에서 멈춘 얼굴이 이내 다시 멀어집니다.
"잘 자."
그는 스카일러 가의 사람을 따라 인파 속으로 걸어갑니다.

"그래, 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음악이 멎습니다. 아든의 말대로 파티는 길게 이어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바깥은 이제 완전히 짙은 어둠이 깔려 있습니다.
호텔에 묵는 손님들은 조금 빨리 돌아갈 채비를 하는 듯합니다.

이 시간까지 연줄을 목적으로 기웃거리는 사람들은 없겠죠.
그만 숙소에 돌아가보기로 합니다.
릴리안은 숙소로 돌아갑니다.
꿈 같은 현실 속에서 하루를 살아본 감상은 어떤가요?
아든의 방은 맞은편에 있습니다. 두 사람의 방 사이에 있는 방들은 전부 빈 방입니다.
여기엔 둘만 머무니까 당연하지요.

조용한 시간이 오면, 아든과 나눴던 짤막한 대화들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여전히 아든에 해대서도 확신할순 없지만...
"신이 원하는 일이, 우리 가문이 원하는 일...이니까."라는 구절은 유독 마음에 걸립니다.
적어도, 아든은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으면서도 이 결혼은 갑작스러워 내키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했죠.
릴리안은 그 사이에서 어떤 모순점을 느낍니다.
그래요. 이 세계엔 모순점이 많습니다
사라졌던 아든은 어느새 명망 있는 귀족 가문의 자제가 되어 있고, 우리는 초면이라고 말합니다.
아직도 그 날, 밤의 정원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선명히 기억날 것만 같은데도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던 릴리안은, 문득 창 밖에서부터 시선을 느낍니다.
오페라 하우스 입구에서 느꼈던 것처럼, 집요하고 지독한 시선입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라도 보일까 싶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시선이라고 치부하기엔 거대한, 가늠하기 어려운 존재의 시선에 가까운 감각입니다.
시선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창 밖에는 새카만 어둠이 깔려 있을 뿐 누구의 형체도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꼭 잡아먹힐 것만 같은 두려움.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 선연한 공포감이 혈관을 타고 흐릅니다.
이성 판정 해주세요.

기준치: | 43/21/8 |
굴림: | 88 |
판정결과: | 실패 |
정체를 알 수 없는 집요한 시선에, 제 아무리 그라도 공포를 숨길 수는 없습니다.
이성 1d2 감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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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라도 걸린듯, 가위에 눌린듯 움직이지 않는 몸이 서서히 굳어가는 게 느껴집니다.
뇌가 둔해지고 사고가 멈출 것 만 같은 순간...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와릴리안은 순간 정신을 차립니다.
식은땀이 뺨을 타고 흐르는 감각이 느껴지고, 어느새 몸은 다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릴리안은 입을 달싹입니다.
목소리는 바로 나오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야?"
몇번 더 시도하고 나서야 긁힌 듯한 음성이 새어나옵니다.

내뱉어진 말은 질문이었지만, 딱히 답을 기다린 것은 아닌지 바로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아직 덜덜 떨리는 손을 억지로 들어 뺨에 흐른 식은땀을 닦아냅니다. 빠르게 하려고했지만 동작이 여느때보다 둔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미안. 갑자기 찾아와서."
식은땀이 흐르는 릴리안의 얼굴을 보고는 가까이 다가옵니다.
"일단 사과부터 할게. 너는 사과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할지도 모르지만..."
애매한 말을 건네고는 대뜸 릴리안의 입술에 가볍게 제 입술을 누르고는 뗍니다.
(갸!아!)
(아든이 저럴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꺄아~~~~)
(아 진정해야만...!)

막 풀려나 가쁘던 호흡에 따듯한 호흡이 흘러들었다 흩어지자, 그제야 방안의, 밤의 공기를 호흡할 수 있게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것은 착각이 아닙니다.

아까까지 공기 중에 서려 있던 따가운 시선이 사라지고 편안하게 호흡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을 보는 시선은 기묘하게 익숙합니다. 당신을 올곧게 쳐다보는 그 시선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세계에서는 모순적이라 느낄 만한... 그런 익숙함입니다.
그리움과 애정이 뒤섞인... 아까 릴리안에게 공포를 심었던 시선과 판이하게 다른 시선이 그를 마주합니다.

그리고 잠자코 손을 뻗어, 아든의 뺨 언저리까지 가져갔다가... 자신의 손이 무척 축축한 것을 깨닫습니다.
"..."
조금, 기운없는 웃음과 함께 잠옷에 손가락을 문질러 닦고
"이러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어?"
다시 뻗은 손끝은 아까 맞닿았던 입가에 닿습니다.


얼굴을 어루만지는 손길을 눈으로 좇다가 작게 웃음을 터뜨립니다.
"밤은 짧고, 시간이 별로 없어서 좀 서둘렀어."
"아침을 맞이하기 전에 너한테 할 이야기가 몇 개 있어서."

"방해하지 않을게. 전부 말해보라고 한건 나니까."
무릎께로 내린 손은 이제 긴장이 풀려 따듯합니다.

여전히 무언가의 눈치를 보듯 조용한 어투로 이야기합니다.
"네가 무언가를 물어봐도, 전부 대답하지 못해. 너를 답답하게 할지도 몰라, 나는."

"그거야 언제나의 일이잖니? 네 나름대로 이야기해주면, 이번에는 나도 곱씹어서 들을테니까."
아든이 아든이라는 확신은, 이미 마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그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어떤 형태라도 믿을 수 있을것입니다.
"우선, 나한테 이렇게 주의깊게 전해야 할 일이라는 게 뭐야? 그게 이번 결혼식과 관계가 있어?"

조금 난처한 얼굴로 말을 덧붙입니다.
"나를 지켜보는 눈만큼, 너를 주시하는 눈도 많아. 그러니까 조심하고..."

더 캐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불쾌한 시선에 대해서도... 짚이는 게 없지는 않으니까요.
"그럼 너희 가문 사람들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겠구나. 내가 아는 분들이랑 많이 다르던데."
떠보듯 묻지만 명쾌한 답을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입을 달싹이며 계속 어딘가의 눈치를 보는 듯한 불안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내가, 스카일러 가의 사람들 중에 제일 이질적인 존재...겠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된 셈이기도 하죠.
"이 오페라 하우스도, 일정도, 모두 그 사람들이 준비한거겠구나."
확신에 가까운 말은 답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결혼에 네 감정도 섞여 있지 않듯이."

아직까지 아까의 감각의 잔여물이 남아있기라도 한 것 같습니다.
"정말로 상관없어?"
창가를 등지고 서면 어둠속에서 표정은 또렷하지 않을것입니다.
"확신해?"

계속 주변을 살피듯 배회하던 시선이 릴리안을 비껴갑니다.

조금 힐책하는 듯도 들리는 목소리입니다.
"적어도 네가 자진해서 그 자리에 들어간거라면,"
어슴프레하게, 릴리안의 얼굴은 미소를 그리고 있습니다.
"혼자서 뭘 어쩔 생각은 그만두는 게 좋을거야."
팔짱을 끼고, 어느 새 릴리안 알테어는 똑바로 서있습니다.

조금 거만해보이기까지 하는 그 모습은, 적어도 아든에겐 익숙한 모습일것입니다.

조금 신경질적인 어투로 쏘아붙인 아든이 이내 흠칫했는지 잠깐 입을 다뭅니다.
"너는 나를 완전히 구면인 것처럼 대하는구나. 나는 너를 모르는데, 너는 나를 꿰뚫고 있는 것처럼."

"그렇다면 다행이야."
하지만, 하고 릴리안은 한걸음을 내딛습니다.
"적어도 네가 그 자리에서 서툴게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그러다 또 혼자서 엉망이 되지 말라는 뜻이지."
아든의 어깨에 빈손을 얹습니다. 격려하듯, 쓰다듬듯 두드립니다.
"너의 그런 노력에는 감사하지만, 지나치게 말을 안 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구해준 건 고마워."

"굉장히 그리운 느낌이 드네. 아까 내가 할 때는 별 생각 없었는데, 좀 막무가내였나 싶고."
"밤이 늦었으니까, 이만 갈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자면... 나는 너에게 거짓말은 안 했어. 아직은 이야기할 수가 없어서... 그뿐이지."

아무 느낌이 없었다는 구절에서 약간의 궤씸함을 느꼈으나, 웃어넘긴 릴리안은 완전히 여유를 되찾은 것 같습니다.
"너무 늦지않게 나머지도 이야기해줘."
언젠가 들었던 비슷한 말을 떠올리면서, 릴리안은 문가에서 아든을 배웅합니다.

별안간의 해프닝으로 잠깐 소란스러웠던 방에는 이내 적막이 내려앉습니다.
릴리안은 잠깐의 대화에서 대화 속에 숨겨진 맥락을 다소나마 읽었을 겁니다.
두 사람은 누군가에게 감시받고 있다. 모든 사정을 알아차릴 수는 없지만, 아든은 행동이 자유로운 상태는 아닌 듯합니다.
이 결혼식은 두 가문을 이어주는 목적으로 계획된 게 아니란 사실도... 어렴풋이 알아차렸겠죠.

뭐 어떤가요. 꿈이든 현실이든, 잠들어 지나보내는 밤은 원래부터 적었는걸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어쨌든 당신과 아든은 이곳에 살아 있습니다.
입술에 닿았던 온기는 분명 산 자의 것이었습니다. 그것만은 확실해요.
그렇게 밤이 저뭅니다.
휴...
중간에 쫌 쫄렸어요 또 싸울까봐
왔어요~
낮부터 오페라 하우스는 분주합니다.
오늘은 왕가의 손님들이 방문하는 날로, 초대받은 손님들만을 위한 공연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노비지엠으로도 잘 즐길 수 있어요!)
이것으로 들어보셔용
릴리안은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오페라 하우스 1층에서 공연에 대한 정보를 전해듣습니다.
왕가와 연결된 거대한 귀족 가문의 결혼식을 축하하여 새로이 제작된 극이라 이번이 초연이라네요.
겨울을 배경으로 하는, 이루어지지 못한 절절할 사랑 이야기… 라고만 들었습니다.
굉장히 유명한 극작가가 집필했다니 내용을 기대해봐도 좋겠는걸요.
하지만 하필이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이야기? 결혼식을 앞두고?
전해들은 정보를 곱씹고 있을 때, 아든이 인파를 헤치고 다가옵니다.

마치 어제 밤에 있었던 일은 모르는 것마냥 태연하게 말을 걸어옵니다.

릴리안도 적당히 말을 맞춰 답합니다.

"왕가 사람들의 취향이려나."
어깨를 으쓱해 보입니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 고루하신 분들 취향은 아무래도 맞추기 어려운 데가 있지."
말투는 평연하지만 은근히 비꼬는 투입니다.
스카일러 가문원인 척 하는 사람들이 아든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 마음껏 책잡아도 되겠죠.,

여전히 웃는 얼굴로 짐짓 근엄한 척 말을 늘어놓습니다.
"그런 건 둘만 있을 때 얘기해."

너도 같이 험담한 모양새이지 않냐고 농담을 걸고싶었지만, 지금의 둘은 그런 관계는 아니었죠.
순순히 웃으며 수긍합니다.

매끄러운 미소와 함께 릴리안에게 손을 내밉니다.
"공연 끝나고 나서 바닷가 구경이라도 가지 않을래? 여긴 늘 사람이 많으니까 소란스럽잖아. 거긴 좀 조용할 거야."

자연스럽게 그 손을 잡고 깍지를 낍니다.

가벼운 말투로 내뱉고는 작게 웃으면 깍지 낀 손을 잡아끕니다.

느릿하게 뒤에서 걸으며 툭 던집니다.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베어있습니다.

아든이 깍지 낀 손을 들어올려 손가락쯤에 짧게 입맞춥니다.
"자리까지 에스코트해주고 싶지만 친척들이 부르셔서 가봐야 돼."

"그래, 내 옆자리를 너무 오래 비워두진 말도록 해."
너그러이 양해해주기로 합니다.

깍지 낀 손을 풀고 그는 조금 느린 걸음으로 스카일러 가 사람들 쪽으로 향합니다.

아든 스카일러에게 저런 말을 듣는 날이 오다니!
엉성한 꿈 속에서 모처럼 유쾌한 기분입니다.
다소 유쾌한 기분으로 제 자리를 찾아 가려던 릴리안에게 익숙한 얼굴이 다가옵니다.
가끔 가족 행사에서나 봤던 먼 친척입니다.
"결혼 축하한다, 릴리안! 이 결혼이 성사된다면 분명 알테어 가의 위상도 더욱 드높아지겠지."
친척은 호탕하게 웃습니다.

친척은 릴리안의 다소 데면데면한 반응에도 별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말만 합니다.
"설마 스카일러 가에서 우리 쪽에 먼저 혼담을 권할 줄이야. 횡재했지."
"아든은 너를 굉장히 아꼈잖아? 예전부터 네 옆에서 떨어지는 일이 거의 없었지. 그러니 혼사도 일사천리일... 응? 내가 방금 뭐라고 했나?"
혼자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다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마치 친아버지라도 대하는 듯한 자연스럽지만 확연한 변화입니다.
"아든 스카일러가 저를 굉장히 아꼈다고 하셨어요. 숙부님께서도 종종 보신 모양이죠?"
물어놓고 릴리안은 눈앞의 사람에 대해 정확히 기억해냅니다. 아주 어렸을 때 몇번, 생일연회등에 얼굴을 비추던 육촌쯤의 친척입니다.
"아니. 너희는 초면이지. 나도 여기 와서 얼굴을 처음 봤는데?"
"우리가 스카일러 가와 연이 있을 리가 없잖아. 내가 뭔가 헷갈린 모양이구나. 하하!"
숙부는 고개를 저으며 릴리안이 입에 담은 사실을 부정합니다.

표정은 바꾸지 않은 채로, 릴리안의 은회안이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살핍니다. 결코 불쾌하지 않게, 그러나 면밀하게.
"벌써 기억이 흐릿하신 건 아니죠? 아직 그럴 연세도 아니신데."
마치 기특한 조카가 당부하는 듯 예의바른 말투입니다.
"내가 그 사람을 알고 있을 리가 없지. 그럼. 뭔가 내가 헷갈린 모양이구나. 곧 공연이 시작할 테니 나도 이만 가봐야겠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을 주워섬기던 숙부는 공연 즐겁게 감상하라며 다시 인파 속으로 사라집니다.
시종급의 엑스트라 숙부님인가보네요....
'3'~
공연이 시작되려면 아직 조금 시간이 남았습니다.오페라 하우스의 2층, 3층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16세기 건축물같은 천장과 층계참을 올려다보다가, 2층부터 산책 겸 살펴보기로 합니다.
2층 관객석으로 통하는 콘서트홀 입구와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게스트를 위해 마련된 작은 티 테이블이 보입니다.
아직 공연이 시작되지 않아 콘서트홀 입구는 열려 있지 않네요.

그러고보니 매일 빼놓지 않고 마셨던 홍차도 어제는 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냅니다.
테이블 위에는 라벤더 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불면증을 치료하기에 좋은 효능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공연 전에 마시기 합당한 걸까요?
근처에서 라벤더 티를 한 잔 이미 마시고 있던 귀부인의 웃음 소리가 들립니다.
"아든 씨가 직접 준비한 차라고 하던데요. 맛이 괜찮네요."
"가족들 말고 손님들에게도 대접할 정도면 자신이 있었나 보죠. 한 모금만 마셔도 기분이 좋아져요."
다들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니 기분이 좋아진 모양입니다.

정말로 아든이 끓인 차라면, 결코 맛이 나쁘지 않을것입니다.
조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은 정말 평범한 차입니다.
향은 좋아 보이네요.

라벤더 티를 마시니 기분이 약간 몽롱해집니다. 긴장이 풀리는 것 같고, 좀 편안한 기분이 듭니다.
이성 1 회복합니다.
좋은 차였네요!

차에 까다로운 릴리안의 입맛도 만족시킬 만한 괜찮은 차였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볼까요.
듣기 판정을 해보세요.

기준치: | 65/32/13 |
굴림: | 6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릴리안은 엿듣기에 재능이 있는 듯합니다.
공연 내용에 대해 떠들며 웃는 부인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오늘 공연 내용 들으셨어요? 멸망의 위기가 들이닥친 세상에서 죽음을 택한 연인이 다시 부활하는 이야기라던데요."
"스카일러에서 극작가에게 직접 주문한 내용이래요."
"죽기 전에 이루지 못한 사랑을 부활한 이후에 이루는 연인...이라, 요새는 이런 게 먹히나 보네요."
즐거운 목소리로 떠들던 부인들이 근처에 선 릴리안을 보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소근거립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듣지 못하겠지만... 릴리안은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용케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소문 들었어요? 스카일러 가의 자제분은... 사실 이 결혼을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던데요."
"이 결혼을 성사시키지 않으려고 한다던데, 저만 들은 게 아니었군요..."
그들은 이내 또 화제를 바꾸어 이야기하며 어디론가 가버립니다.

저 소문에 근거는 있는 걸까요? 이 세계 자체가 어떤 덫같은거라면...
릴리안은 고집스럽고, 세상 심각한 아든의 얼굴을 떠올리고 픽 웃습니다.
뒤로 돌면, 수군거리던 사람들이 떠난 자리로 층계참이 보입니다. 올라가보면 또 좋은 차가 있을까요.
소문은 소문일 뿐이니까요. 믿든 안 믿든 개인의 자유겠지요.
3층으로 올라가볼까요.

3층은 2층보다 사람이 더 적습니다. 시야가 안 좋은 자리니까요.
2층과 마찬가지로 콘서트홀 입구는 잠겨 있습니다. 아직 입장 시간이 안 된 모양이에요.
손님들의 짐을 보관하는 캐비넷이 보입니다.
대부분 열쇠가 잠겨 있지만 한 칸이 열려 있네요.

특별히 누구의 짐인지 확인할 생각은 없지만... 발걸음은 그 캐비닛 앞으로 옮겨갑니다.
조금 더 열어보면 보일 것 같네요.
여기선 열어봐야할것같....은데......
빈 칸인 줄 알고 닫아주려고 다가갔다가 안을 보게 되었을 수도 있겠네요.

부주의하게 열어두었다 도난이라도 당하면 측은하겠죠. 릴리안은 손을 뻗어 걸쇠고리를 당겨 닫아주려합니다.
누가 짐을 빼내는 중에 실수로 열고 간 모양이네요. 칠칠맞은 사람...
캐비넷 문을 닫아주려던 릴리안은 열린 문틈으로 안에 든 것을 보았습니다.

공연에 대해 적힌 책자와, 발신인에 '스카일러' 라고 쓰여진 봉투가 있습니다.

릴리안은 발신인의 성씨부분에 홀린듯이 봉투를 집어듭니다.
편지 봉투 겉면에 적힌 발신인은 '쟈니 스카일러'입니다. 역시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네요.
수신인은 적혀 있지 않으나, 받는 사람의 주소로 적혀 있는 내용이 약간 기묘합니다.
잉글랜드 세번 밸리. 브리체스터, 캠사이드.
여러 개의 주소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가 맞는 걸까요?

정말로 개인적인거라면 미안할 일이지만, 감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이 묘하게 경종을 울리는 느낌입니다.
캐비닛 앞에 우뚝 서서, 릴리안은 편지봉투의 내용물을 뜯어봅니다.
봉투를 열자 안에는 종이 한 장이 접혀 있습니다.
물론, 봉투를 뜯은 릴리안이라면 편지도 읽어보겠죠?
(릴리안 양심은 있지만 감도 좋으니까...! 지금은 넘어가지 않는걸로><;)
편지의 내용을 보자, 거기에는 '세뇌 주문'이 적혀 있습니다.
'범위 내에 특정인을 기억하는 이들에게서 특정인, 특정 사건과 관련된 기억만을 앗아온다.'
'주문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지혜가 필요하다.'
'세뇌에 당한 이들은 특정인, 특정 사건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잊으며, 세뇌를 푸는 주문을 듣기 전까지 결코 다시 기억해낼 수 없다.'
귀족께서, 수상한 편지를 보내시네요.
상식을 뛰어넘은 주문의 내용을 확인한 릴리안은 이성 판정합니다.

기준치: | 41/20/8 |
굴림: | 69 |
판정결과: | 실패 |
이성판정을...하는군요...
수상한 주문을 발견했으니까요. 이성 1 감소합니다.
아든....미안....

아든을 포함한 양쪽 가문의...아니죠. 이 경우엔 알테어 가문의 사람들만일까요.
릴리안과 아든을 일찍이 알던 사람들에게 '누군가'가 이 주문을 걸었다면 어제의 기묘한 일들은 나름대로 원인이 있는 일이 될것입니다.
"..."
원인이 있다면, 대첵도 있겠죠.
여느 때보다 빠르게 뛰는 심장고동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릴리안은 닫아주려던 캐비닛을 그대로 둡니다.

아주 잘게 접은 편지는 케이프 안주머니에 깊숙이 넣고요.
모두가 아든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건 이 주문 때문일까요. 릴리안은 주문이 적힌 편지를 품에 넣고 돌아섭니다.
세뇌 주문이 있다면 세뇌를 푸는 주문 또한 존재할 텐데, 어디에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아든도 그것을 모른다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
알면 진작 사용했겠죠?
릴리안이 잠시 생각에 잠기려 할 때, 곧 공연이 시작된다고 안내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2층 5번 박스석이 당신과 아든의 자리입니다.
결혼할 사이니까요. 둘이서 관람할 수 있게 해준 모양이네요.

너무 오래 옆을 비워두지 말라고 한 자신이 늦을 수는 없겠쬬.
오페라 글라스를 챙겨들고 박스석으로 향하는 길목, 이미 입구에서 아든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부에서는 오케스트라단이 악기를 조율하는, 듣기 좋은 불협화음이 들려옵니다.

잔잔한 미소와 함께 문을 가리킵니다.

"누가 극상의 라벤더 티를 대접해줬기에, 향을 음미하다 왔지."

빙그레 웃으며 박스석으로 향하는 문을 엽니다.

기꺼이 아든이 열어주는 문을 지나 자리로 향합니다.
공연 시작 전, 은은한 노래 소리가 콘서트 홀을 채웁니다.
왕가의 사람들은 맞은 편 박스석에 앉아있는 모양입니다. 호위병과 경찰이 단단하게 지키고 있는 게 보이네요.
5번 박스석에는 두 사람만 있습니다.

조용히 일러주며 웃지만 미소가 조금 부자연스럽습니다.

아든의 말대로, 옆 박스석,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시선이 느껴집니다.
칸막이 건너편에서 오페라 글라스를 챙긴 몇몇의 사람들이 당신을 빤히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립니다.

무심하게 도망치는 시선들을 훑어보는 은회안은 조금 가라앉아있습니다.
"지금은 둘만 있으니까 이런 얘기 해도 상관없지?"
방금의 말투는 은근히 신랄했지만, 아든 쪽으로 돌아온 얼굴은 웃는 낯입니다.

아까와는 달리 짓궂은 웃음소리가 돌아옵니다.
"우리 가문에는 내 또래의 아이가 별로 없으니까, 손이 귀하거든.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불안하신 거겠지."

여상하게 귀 너머로 늘어진 은발을 손가락으로 감아내립니다.
"난 친절하고 싶은 사람을 고르는 것 뿐이야."
결혼할 나이의 후계를 아이처럼 신경쓴다는 말에는 물론, 동의할 리 없습니다.

조금 쑥스러운듯 얼굴을 잠시 찡그리고는 무대 쪽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다행이네. 네가 친절하고 싶은 사람으로 날 선택해줘서. 너 같이 좋고 싫음이 확실한 타입은, 적으로 돌리면 엄청 피곤해질 스타일이야."

"안심하렴."
요 이틀간 아주 오랜만에 지어보이는 본심에 가까운 미소가 얼굴에 덧그려집니다.
"너와는 적이 될 일 없을테니."
은회안은 공연을 기다리듯 나른하게 앞쪽을 향한 채입니다.

차분한 목소리가 그의 이름을 부릅니다.
"자기 자신에 확신이 있는 타입은 싫지 않아. 나는."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이어 박수 소리가 들립니다.
무대 위로 누군가 올라오고, 극장의 불이 꺼집니다.
극을 시작하기에 앞서 부부가 될 이 결혼식의 주인공들을 위한 시 낭독이 있을 예정이라나요.
정말 격식이란 격식은 다 갖추고 있군요. 왕가 사람들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요.
배우의 맑은 목소리와 또렷한 발음이 극장에 울려 퍼집니다.
우연 또는 자연의 무상한 이치로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때때로 시들지만,
그러나 그대의 영원한 여름만은 시들지 않으리
그대가 지닌 아름다움도 사라지지 않으리
죽음조차 그대가 자신의 그림자 속에서 헤매인다고 자랑치 못하리다
불멸의 시구 속에서 당신은 시간과 하나가 되는도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8이로군요. 사랑의 시이니 부부가 될 사람의 앞날을 축복하기에는 모자람이 없겠죠.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가 울려퍼지고, 연극이 시작됩니다.
어두운 조명 아래 배우들이 나오고 무대 장치가 빛을 받아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극의 내용은 생각보다 어둡군요.
사랑하는 이가 다른 사람과 결혼 하는 걸 지켜보던 주인공은 결혼 상대의 집안이 이 세상에 재앙을 불러올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살리기 위해, 재앙을 막기 위해 제 목숨을 던져 고군분투합니다.
혼자만이 아는 비밀을 곱씹으며 예정된 미래를 뒤집기 위해 애쓰던 주인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중한 것을 지켜냅니다.
그러나 재앙의 씨앗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에 남은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익숙한 이야기네요.
누가 봐도 릴리안과 아든의 이야기였습니다.
놀랐나요? 아니면, 너무 뻔해서 지루하던가요.
그러나 이 시점에서 국면이 바뀝니다.
주인공과 그가 사랑하는 이를 지켜보던 신이 개입한 것입니다.
신화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라더니, 이렇게 신이 등장하는군요.
얼핏 보면 그 ‘신’은 꽤 너그러워 보입니다.
목숨을 바친 주인공을 살려준 것도 모자라 그가 사랑하는 이와 맺어질 수 있게끔 도왔으니까요.
신의 도움으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신’의 인도에 따라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빛이 그들을 둘러싸고, 하객들은 일제히 나와 신의 자애로움을 찬양하며 춤을 춥니다.
하지만 그 춤과 노래에는 분명한 광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하객들의 눈에는 기쁨보다는 환희가, 행복보다는 맹목이 존재합니다.
주인공은 몇 번 뒤를 돌아보지만, 이내 신의 인도에 따라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두 사람이 완전히 ‘신’이 거주하는 곳으로 사라지고 나면 무대 위는 하객을 연기하는 무용수로 가득 찹니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무대 바닥에 묘지를 연상시키는 십자가 모양의 빛이 비춰지더니 극이 막을 내립니다.
...이게 끝인가요?
애매한 엔딩이지만 관객들은 다들 박수 갈채와 함성으로 배우들의 열연을 치하하고 있습니다.
뭐, 어찌 되었든 연인들은 신의 축복 하에 결혼을 했으니까요. 해피엔딩이라고 치부한 모양이네요.
지능 판정을 해주세요.

기준치: | 60/30/12 |
굴림: | 89 |
판정결과: | 실패 |
릴리안, 공연은 만족스러웠나요?

덤덤한 눈으로 막을 내린 무대를 향해 박수를 치며 중얼거립니다.

마찬가지로 기계적으로 몇번인가 박수를 치며 답합니다.
마지막은, 예지, 경고, 어쩌면 변덕스런 자비일까요?
어쨋거나 공연을 보는 내내 많은 심상이 스쳐지나간 것은 사실입니다.
호불호로 따지자면,
"비극은 언제나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그런데, 이거 해피엔딩인가? 뭐, 결국 연인은 결혼으로 맺어졌다지만..."
"좀 애매하네. 이왕이면 꽉 닫힌 해피엔딩이어도 좋았을 텐데."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가, 이내 다음에 할 말이 제풀에 조금 우스웠는지 웃을듯 말듯 미묘하게 미간을 찡그리고 아든을 돌아봅니다.
"행복도 선택도, 감정과 의지로 하는거야."
그리곤 결국 미간을 반듯이하고, 평소의 은은한 어투로 말을 맺습니다.
"신이 정해주는 건 재미없지않니?"

주변을 둘러보고는 박수소리에 묻혀 없어질 목소리임을 알고 툭 내뱉습니다.
"네가 그런 말을 하니, 정론이긴 한데 좀 이상하네. 너는, 순리에 따를 거 같은 인상인데."
"내가 너를 잘못 봤나?"

뒤늦게 피싯 웃음을 터트립니다.
"하지만, 뭘 따르든 상관없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다르지."
단지 그것 뿐이야.
박수갈채에 묻힐 듯 뒷말은 나직합니다.

릴리안에게 손을 내밉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릴 보기 전에, 몰래 나가자."

지금까지 장시간을 바른자세로 앉아있던 것이 예의상이었던 것처럼.
"에스코트."
짤막하게만 말하고 어둠 속에서 아든을 재촉합니다.

조금 퉁명스러운 말투로 이야기하지만 어둠 속을 더듬어 그의 손을 잡고 발소리를 죽여 박스석을 나섭니다.

어둠속을 살금살금 빠져나가다니, 어렸을 때도 하지 않았던 장난같네요.
두 사람은 하객들이 채 나오기 전에 좌석을 빠져나갑니다.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 오페라 하우스의 입구를 빠져나옵니다.
대단한 일탈이라도 하는 기분이 드네요.
바다로 나오면 미묘하게 피부를 찌르던 시선 같은 감각이 사라집니다.
당신의 앞을 달리는 아든은 당신의 손을 잡고 해안가로 내려갑니다. 마치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
턱끝까지 차오른 숨을 토해내며, 천천히 몸을 돌려 릴리안을 마주봅니다.
"겨우 여기까지 왔네."

릴리안도 숨을 몰아쉬고 있습니다.

"미안해."

"또 키스하려고?"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으며 자유롭지 않은 두 팔 대신 머리를 아든의 어깨에 기댑니다.

조금 울먹이는 목소리가 말을 얼버무립니다.
"그냥, 내가 다 미안했어. 너한테 사과하고 싶었어. 나는... 다 내가 잘못한 거야. 하지만 후회 안 해. 또 같은 상황이 와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거야."

릴리안은 기댔던 머리를 들고 아든과 조금 거리를 벌립니다.
"나한테 키스 하나 못하면서 얼마든지 더한 건 할 수 있는 게 너지."
드디어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아든의 볼을 감쌌다가, 말끔한 뺨의 어느 자국이라도 타고 내려오는 것처럼 눈가에서부터 보조개라인 언저리를 찬찬히 씁니다.
"나도 사과 안 해. 내가 잘했다고는 생각 안 하지만, 네가 먼저 잘못했으니까."
유치한 소리를 당연스레 말하고, 손을 떼고 녹아내리듯 부드러운 얼굴로 웃어보입니다.


부드럽게 웃는 릴리안의 얼굴을 마주하며 시선을 해안가로 돌립니다.
"그냥, 나는 너에 대한 일이라면 평소처럼 행동할 수 없게 되는 것 같아. 네가 소중한 거겠지."
"널 보면 자꾸 눈물이 나는 것도, 그렇고. 이것도 결국 다 내 잘못이니까. 우리가... 다시 이렇게 만나서, 결혼을 하니 마니하게 된 것도."

바닷바람이 차갑지만 그간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불쾌감은 전부 흩어진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리고, 명심하렴. 이번일은 공동책임이야. 내가 네 노력과 열의를 전부 헛수고로 만들었으니까."
아든과 나란히 서서 같은 방향을 바라봅니다.
"이번에는 같이 해."
혼자 책임지려고 하지 말고.


바닷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대강 쓸어넘기며 중얼거립니다.
"세상에 벽을 치고 있는 것처럼 데면데면하게 구는 도련님이, 제 울타리에 내 자리를 만들어놨다는 걸 체감할 때... 너는 나를 특별하다고 생각했겠지만, 내게 그건 사랑과 닮은 느낌이었어."
"아마 나는 네가 참 많이 소중해지겠구나. 알았지."
바다 건너를 보는 눈빛이 옛 추억을 곱씹으며 가늘어집니다.

다음 말을 입밖에 내도 좋을지, 그럴 수 있을지 릴리안은 드물게 망설입니다.
얼마든지 부드럽고 달콤한 말을 속삭일 수 있지만, 이것은 전혀 다른종류의 문장임이 분명합니다.
"그게 바로, 내가 바라 마지 않던거야."
천천히, 머리를 돌려 은회안이 아든에게로 기울어집니다.
"내 가장 가까운 곳에 들일 정도인데,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니면 곤란하지."

"애초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만큼 가까이 둘 리도 없잖아."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제일 잘 알텐데.
심장이 빠르게 뛰어서, 어쩐지 뒷말은 목 언저리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고개를 돌려 릴리안을 마주 보는 시선에는 그리움, 애정, 그보다 깊은 곳에 후회가 배어 있는 듯합니다.
"네가, 나 같은 걸 사랑할 리는 없다고. 우정 같은 거라고, 우리가 워낙 오래 알고 지냈으니까 정이 깊어진 것뿐이라고. 늘 혼자 기대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거야."
눈물이 덜 말라 축축한 눈이 가늘게 휘어지며 웃습니다.
"네가 나 없이도 잘 살 거라고, 너는 부드럽지만 강한 사람일 거니까 어떻게든 잘 해나갈 거라고, 너를 좀 과대평가한 거지."
"나도, 사실, 그런 걸 바란 적 없는데."


하지만 아든의 웃는 얼굴을 보면... 그저 마음이 한없이 연해집니다.
너무 연해서 조금만그 안의 것을 헤집어 떠올리려고 하면 핏방울이 맺혀나올 것처럼.
"그럼, 그렇게 오래 날 봐왔으면서. 사실은 내가 형편없고 나약한 도련님에 불과하단 거 알잖아."
웃는 입매에 맞춰 기울어지는 눈매가 조금 슬픈 기색을 띱니다.
"너한테 매달릴 영리함도 용감함도 없지."

"그래서 이렇게 네가 말해주는 수밖에 없어."
"솔직하게 말하고, 계속 손을 내밀어주는 수밖에 없어."
그 손을 잡을 수만 있다면, 나는 이런 엉망진창인 세계에서도 멀쩡할거야.
뒷말은 꺼내지 않고, 기다리듯 아든을 바라봅니다.
무언가 얘기해주기를, 무언가 내밀어주기를, 무언가 제안해주기를, 혹은 다시한번 확인시켜주기를.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웃으며 릴리안을 향해 돌아섭니다.
"도련님은 너인데, 왜 먼저 말을 꺼내는 건 내 쪽이냔 말이야."
투덜거리는 말투에는 독기가 없습니다. 오히려 웃음기가 배어 있습니다.
"그럼, 키스해달라고 하면, 네가 먼저 해줄래?"

휘어지는 눈빛에 온기가 깃들고, 그대로 고개를 기울인 릴리안의 상체가 아든을 향해 기울어집니다. 이전의 답례와는 다른, 가볍게 톡톡 두드리는 듯한 버드키스. 이번에는, 재회의 안도감을 담아서.
"이 세계에서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이만큼 순순하게 솔직한 아든 스카일러야."
입술을 떼고 중얼거리며, 잠시간 더 기울인 자세로 익숙한 얼굴을 감상합니다.

"너는 가까이 다가오면, 오히려 불안해. 이번엔 품에 권총을 숨겨오진 않았지?"

무고를 주장하려는 듯 비어있는 두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보입니다. 아든이 마음껏 얼굴윤곽을 확인하도록 내버려두면서.

"그러니까, 내가 붙잡지 않아도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나도 이젠 무모한 짓 안 할 테니까."
부탁하듯, 릴리안의 볼에 가볍게 입술을 비비고는 떨어집니다.
"여기에 너무 오래 있다가는 사람들이 우릴 찾으러 올 거야. 그 전에 너한테 알려줄 게 있어."

릴리안은 아든의 말을 똑똑히 들었다는 것과, 이번에 그 말을 어기면 우린 절교라는 사실을 진지한 표정으로 못박아둡니다.


"이번 네 계획과 자초지종에 따라서 신뢰를 회복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둘게."
짐짓 엄하게 들리는 말투와 다르게 머리칼을 가지고노는 손길은 더없이 부드럽고 애정이 깃들어있습니다.

힘없이 웃고는 혹여 누가 듣기라도 할까 소리를 한결 낮춰 속닥거립니다.
"일단, 우리는 과거로 왔어. 너랑 나는 죽었지만... 누군가에 의해 되살아났지."
"미리 말해두지만 내가 한 일 아냐. 나도 되살아난 걸 알고 적잖게 놀랐다고."
"그 누군가는... 너를 원해. 아직 포기 못하신 모양이지."
"결혼식은 너를 자신의 영역으로 데려가기 위한 의식.. 같은 거고."

그리고 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이전의 결말과... 요 이틀간의 불쾌한 지점들을 되짚어보면... 연극에서 자비롭게 굴던 '신'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미끼로 고른게 하필 너란 말이지."
손가락에 얽히던 은발을 도로 정리해주고, 릴리안은 눈썹을 기울여 웃습니다. 비끼는 시선은 밤바다로 기울어 조금 곤란한듯, 그러면서도 비꼬는 어조입니다.
"과연, 인간 이상의 존재란 상상 이상으로 영악하네."

"우리 가문 사람들은... 아니, 그 사람들은 내 가족 행세를 해야 일이 편하니까 내 성씨를 같이 쓰고 있는 것뿐이야."
가만히 한숨을 내쉽니다.
"너한테 초면인 척 한 것도, 사실 처음엔 진짜 초면인 줄 알았어. 뭔가... 주문 같은 게 걸려 있던 것 같아. 이젠 풀렸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아무리 자신의 행적에 대해 뻔뻔하게 나가던 릴리안으로서도, 이쯤되면 아든이 처한 모든 상황이 얼마나 불합리한지는 반박의 여지 없이 전해져옵니다.
"나 때문에 고생이 많네......"

정작 그는 별 생각 없다는 투로 가볍게 받아칩니다.

이전의, 그러니까 가출하기 전의 아든은 종종 이런식으로 투덜거렸던 것 같아요.
"흠, 그러네..."
그때의 고생까지 모두 보답해줄 마음으로 릴리안 역시 짧은 고민 끝에 가볍게 중얼거립니다.
"이번 일이 무사히 해결되면,네 사용인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말을 맺으려다 무어가 떠올린 듯, 입가를 두드리던 건지가 뚝 멎습니다.

매일 원하는 만큼 키스해준다든지...
눈이 소년처럼 영롱한걸 보면 퍽 좋은 생각이라고 여기는 게 분명합니다.

썩 기분 나쁘지 않은 얼굴로 미소짓습니다.
"하지만 됐어. 그냥, 건강하게 오래 살면 돼. 너나 나나. 넌 어차피 가사일도 잘 못하잖아."
"어쨌든, 내 계획은.. 결혼식 날 도망치는 거야."
"결혼식이 무사히 끝나면 안 돼. 하지만 그 전에 오페라 하우스에서 도망치는 건... 거의 불가능해. 우리를 쫓는 시선이... 우리를 놓치지 않을 거야."




"그것의 시선에서...우리를 보호한 주문이야. 그런데 완전히 벗어나려면 주문을 여러 번 걸어야 해. 아직.. 좀 모자라."

"조금 더 여기 남아서 설레는 연인행세를 해야한다는거네."

불퉁한 어투로 대꾸하고는 릴리안의 볼에 가볍게 입맞춥니다.
"이렇게 거는 거지. 주문."
"뭐, 첫날밤에는... 갑자기 그것이... 찾아온 것 같아서 좀 급하게 해버렸지만."

"아니, 크게 어려울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적어도 이전의 답답하던 상황보다는, 지구가 되집혔다고 해도 좋을만큼 수월하게 여겨집니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좋게만 흘러가리라는 법이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지만...
"적어도 첫날밤의 네 행동을 일으켰다는 점에서는 그것에게 다소 감사를 표해도 되겠어."
물론, 절반은 농담입니다.

"지금 주문을 다시 걸었으니까, 오늘 밤은 별 일 없이 잘 수 있을 거야. 이만 돌아가자."

또다시 지긋지긋한 시선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과,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긴장감을 품은 채로 밤바다를 걸어 돌아갑니다.
"말해봐, 아든."
"내가 이렇게 하는 것도 주문에 포함돼?"
다소 빠른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로, 잡은 손을 끌어당겨 손가락 지문이 닿는 곳에 입술을 댔다 뗍니다.

"넌 주문이 뭔지 모르잖아. 주문은 나만 걸 수 있어."

적어도 유감스럽게는 보이지 않는 얼굴로 수평선을 바라보며 앞서갑니다.
오페라 하우스는 여전히 환하게 잠들지 않은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오페라 하우스로 돌아옵니다.
어딜 갔다 왔냐고 추궁하는 스카일러 가 사람들에게 적당한 핑계를 대며, 아든은 멀어져갑니다.
밤이 깊었네요. 이만 숙소로 돌아갈까요.

그러나 오늘은 크게 뒤척이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을 가지고, 릴리안은 넓은 개인실로 돌아옵니다.
숙소에 있는 작은 테이블에는 라벤더 티가 담긴 작은 주전자와 작은 쪽지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 나는 언제나 네가 원하는 걸 해. ]
보내는 이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지만, 알 수 있겠죠.

네가 그러리라는 걸 알아.
라벤더 티 덕분인가, 아니면 간밤에 바다 바람을 쐬어서인가. 릴리안은 평소보다 맑은 정신으로 잠에서 깨어납니다.
내일은 드디어 당신의 결혼식 날입니다. 네, 결코 멀쩡한 결혼식의 형태는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당최 그 '신'은 누구이고 왜 이토록 자신을 원하는지 모르지만, 이 결혼식이 정상적으로 끝까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 하나만은 확실합니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모두 밤에 있을 피로연을 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옷을 차려입고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가는 내내 당신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이 즐비합니다.
스카일러 가에서 얼굴을 보고 식사를 하고 싶다고 제안하여 릴리안은 식당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다른사람들이야 모두 측은한 꼭두각시, 아니면 감시자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죠.
선을 그어버리고 나면 여러가지로 편해집니다.
가뿐한 마음가짐으로 식당으로 들어서면, 아든이 자리에 앉아 당신을 향해 인사합니다.
스카일러 가 사람들 몇 명과 알테어 가 사람들 몇 명도 이미 도착해 착석해 있습니다.
릴리안의 자리는 아든의 맞은편입니다.

자리에 이동하는 동안, 그는 찌르는 듯한 시선을 느낍니다. 지켜보고 있군요.
이성 판정입니다.

기준치: | 39/19/7 |
굴림: | 77 |
판정결과: | 실패 |
시선의 정체를 알고 있지만 오싹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성 1 감소합니다.
언제 이렇게 깎였을까요....쟤의 이성....
아든이 말해주지 않았지만... 보호 주문 1번에 이성이 1씩 감소한답니다.
(그그럼 할수없다....)
릴리안이 불쾌함을 외면하며 시선을 돌렸을 때, 벽 위를 기어가는 하얀 거미가 보입니다.
저 거미... 어디서 본 것 같은...

납득하고 이곳에 있다고는 해도 거슬리는 건 거슬리네요.
어쩔 수 없죠. '신'의 영향력은 아직 두 사람을 짓누르고 있는 듯하네요.
릴리안은 자신의 자리에 착석합니다.
갓 만들어진 요리들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서 앉아라. 음식을 식게 하는 건 매너가 아니지."

릴리안은 본래 식사량이 많지 않지만... 방금 전의 경험으로 더더욱 손을 댈 기분은 아닙니다.
숯한 경험을 살려, 조금 덜어온 요리를 티나지 않도록 시간들여 먹을 생각입니다.
맞은편에 앉은 아든은 이것저것 음식을 접시에 담아 곧잘 먹고 있습니다.
식사를 하는 내내 스카일러 가의 사람들의 관심은 릴리안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아든과 어제 오붓한 시간을 보내셨다고 들었어요. 벌써 그만큼 가까워진 건가요?"
"신혼여행지는 결정하셨나요?"
"식사를 많이 안 하시는 것 같은데, 입맛에 안 맞으시나요?"

릴리안은 지겨운 기색도 없이 질문들에 하나하나 답을 달아줍니다.
얼핏 여유로움마저 느껴지는 태도는 어제와 확연히 다릅니다.
가만히 대화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 있던 아든이 대화에 끼어듭니다.

아든은 태연자약한 태도로 제 앞에 놓인 감자 샐러드를 스푼으로 조금 덜어 릴리안의 접시에 옮겨줍니다.
"조금이라도 더 먹어."

내가 많이 먹지 않는다는 것도, 이런 자리에서 넉넉히 식사할 기분이 아니란 것도 다 알면서...
하지만, 챙김받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네요.

"시선이 뜨겁네요. 제가 많이 마음에 든 것 같아요."
골탕을 먹이려고 작정한 듯한 태도입니다.
(참지못하고 그만 튀어나왔어요 힣)

릴리안은 뜨는둥 마는둥하던 포크를 내려놓고, 아예 나른하게 턱을괴고 정면의 아든을 마음껏 바라봅니다.
이전 첫대면에서의 말도 돌려줄 겸, 보란듯이 응수해줍니다.
그러고보니, 아든과 이런 식으로 투닥거리는 것도 꽤 오랜만이네요.

먼저 시선을 돌린 것은 아든 쪽이었습니다. 요리 접시로 시선을 내린 그는 한쪽 볼이 볼록해질 만큼 열심히 음식을 입에 넣었습니다.

기껏 덜어줬으니,적어도 샐러드 그릇은 깨끗하게 비워줘야죠.
한참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스카일러 가의 사람이 말을 꺼냅니다.
"오늘 밤에 파티가 있으니 다들 반드시 참석해주셔야 합니다."
이미 피로연이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빠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는군요.

릴리안은 어려움없이 응수합니다.
원래 식사를 많이 하지 않는 릴리안을 알아서인지, 아든이 먼저 일어납니다.

손수건으로 가볍게 입을 닦고 태연하게 웃습니다.

주어진 기회를 놓칠 도련님이 아니죠.
"둘이 붙어다니는 시간이 길구나. 좋은 일이지."
스카일러 가 사람들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짤막하게 인사하고 자리를 벗어납니다.


식당을 벗어나자마자 가볍게 기지개를 하며 투덜거립니다.
"각자 방에서 먹어도 될걸, 굳이..."

릴리안도 드디어 조금 숨이 트인 듯 목소리에 웃음기가 배어있습니다
"아니면 우리가 생각보다 건조해보이나?"
의견을 묻듣 아든의 얼굴을 빤히 바라봅니다.

조금 당황했는지 웃음을 터뜨립니다.
"우리가 그렇게 서로 살가워 보이는 인상은 아니잖아."
"사실 우리가 실제로 사랑하는지, 그런 건 별로 상관없을 테고. 아마... 감시하라는 명을 받은 거겠지."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식당에서 빠르게 멀어집니다.

당황스럽게 실룩이다 결국 웃는 아든의 표정변화를 여유롭게, 재미있다는 듯 지켜봅니다.
뒷말은 나름 심각했지만 줄곧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듣고있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어투로 말하고는, 릴리안에게 좀 더 가까이 오라고 손짓합니다.

많네. 언변은 뛰어난 편일텐데, 아든에게는 대수로운 말을 건넬 수 없는 것이 유감입니다.
뒷말을 줄이고 눈썹을 기울인 채 다가갑니다.

"이따 밤에 보자. 이건 낮 동안 무사하라는 주문."

가볍게 웃고 릴리안도 아든의 반대쪽 뺨에 입맞춥니다. 어느 나라의 오랜 아침인사처럼.
"너무 시달리지 않길 바라."

조심스러운 어투로 속삭이고 릴리안의 팔을 가볍게 두드립니다.
"이따 저녁에 보자."

아든과 헤어진 후, 릴리안은 숙소로 돌아갑니다.
시종이 '파티 준비를 해야 한다'고 고하기 전까지 오랜만에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는 휴식을 만끽했을 것 같네요.
오랜만에 평온한 시간이 흘러갑니다. 결혼 전야제라니, 그러고 보니 한 번 겪었죠.
먼, 혹은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을 한 번쯤 떠올렸을 법도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반쯤은 핑계였을까요.
어쨌거나 지금처럼 먼저 와보라는 제스쳐는 절대 하지 않았었죠.
...아, 아니. 딱 한번, 먼저 손을 내밀어 춤을 권했던가요...
그때도 퍽 괴로운 얼굴을 하고있었는데...
남의 일처럼 돌아보다가 깜빡 낮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한참 낮잠을 자고 일어나보면 해가 저물어 있습니다.
시종이 준비한 예복을 그에게 건넵니다.
"다들 파티에 참석할 채비를 하시느라 바쁘신 것 같아요."
오늘 피로연의 컨셉은 '가장 무도회'라고 합니다. 가면을 써도 좋고, 안 써도 상관없다고 하네요.

시종에게 머리를 땋아줄 것을 부탁한 뒤 가면 없이 참석하기로 합니다.
시종은 익숙한 손길로 그의 머리를 땋아 내립니다. 예전에는 아든이 곧잘 해주었던 일이었죠.
머리를 땋아주는 동안 내다본 창 밖은 어둑어둑합니다.
시종이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를 다 정돈했다며 말을 겁니다.
이제 갈까요. 이곳에서 지내는 마지막 밤입니다.

아든은 오늘 낮을 평온하게 보냈을까요.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들이 이 성대한 결혼식의 피로연이 시작되었음을 알립니다.
오페라 하우스 내부의 조명의 색이 바뀝니다.
가면을 쓴 사람들, 가면을 쓰지 않은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웃고 떠들며 잔뜩 들뜬 얼굴로 오페라 하우스에 입장합니다.
화려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악단이 음악을 연주하고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저마다의 스타일로 차려입은 사람들이 춤을 춥니다.
릴리안은 1층 홀로 걸어들어오는 아든을 발견합니다.
피로연을 위한 연회복 차림으로 한껏 가꾼 채 당신과 시선을 마주합니다.
저들끼리 떠들던 사람들이 일제히 두 사람을 주시합니다. 이 무수한 시선에는 감시의 목적이 섞여 있음을 압니다.
하지만, 그것을 다 알면서도, 아든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릴리안에게 손을 내밉니다.

"제가 춤은 좀, 부족하지만요."
말을 엉거주춤 덧붙이며 웃습니다.

그날 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지만.
주변도, 아든 스카일러도.
"기꺼이-. 불안하면 제가 리드해드릴까요?"
자신에게 핀잔주듯 리드를 맡기던 목소리를 상기하면서, 릴리안은 내민 손 위에 손을 얹습니다.
아든이 슬며시 웃으며 맞잡은 손을 바짝 당깁니다.
지금 이 순간, 어찌 되었든 두 사람은 결혼할 상대로 지목되었습니다.
결혼식은 무사히 거행될 리 없고, 두 사람이 공식적인 부부가 될 일도 없지만...
황홀한 음악이 울려퍼지고, 모두가 결혼을 축하한다며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것을 듣고 있자면, 조금 착각하게 될 것 같기도 합니다.


릴리안은 즐겁게 속삭이며 시선을 조금 아래로 흘립니다. 언젠가와는 포지션이 반대지만, 아든이 버벅일라 치면 릴리안이 요령좋게 방향을 틀거나 스텝을 교차해 춤은 그럴듯해 보일것입니다.


어느정도 낮은곳에 시선이 머무는 것은 릴리안도 마찬가지지만, 이쪽은 여유가 있는 느낌입니다.
"네가 뭇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할 일은 없을거야."
능숙하게 음악에 스텝을 어우르며, 달래듯 아든의 어깨에 걸치고 있던 손끝으로 숙여진 관자놀이를 톡톡 치듯 쓰다듬어줍니다.

"딱히 남한테 망신당할까봐 조심하는 거 아냐."
릴리안과 마주친 눈은 평온하다기보다는 조금 떨리고 있습니다.
"너랑 이러고 있으니까, 좀 쑥스러워. 옛날 생각도 나고."

"모처럼인데 만끽해야지. 언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이렇게 축하해주겠어."

조금 여유를 되찾은듯 한결 풀어진 표정으로 웃습니다.
"안타깝지만, 도련님 미래의 얼마 안 되는 오점으로 남도록 계속 같이 있을 테니 벗어날 생각은 접는 게 좋을걸."

릴리안도 이 말에는 웃음을 감출 수 없는 듯 고개를 숙이고 쿡쿡댑니다.
정연하던 춤의 리듬이 잠깐 삐그덕합니다.
"우리 가문의 위상으로는 이렇게 성대한 피로연은 못 열어줘."
고개를 들고, 웃음기 배인 목소리로 릴리안이 말합니다.

서서히 음악이 작아집니다. 한 곡이 마무리되고 다음 곡이 시작되려 하네요.

우뚝 발을 멈춘 아든이 릴리안의 허리에 두른 손에 힘을 주어 조금 더 가까이 밀착합니다. 몇 번 하지 않았는데, 키스가 조금 익숙해진 기분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건 말건, 그의 입술이 가볍게 릴리안의 입술 위에 닿았다 떨어집니다.
"이건 주문 아냐."
"설명 안 하면 오해할 거 같으니까, 선수쳤어."

릴리안은 피식 웃고, 그저 한마디 감상으로 일축합니다.
"점점 능숙해지는데-?"
장난스럽게, 유혹적으로 미소를 그리곤 바짝 줄었던 거리를 원상복귀하고, 누가보기에도 귀족적인 인사로 춤을 마무리합니다.

두 사람이 무사히 춤을 마치고 인사를 나누자, 스카일러 가의 사람이 아든을 부릅니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꼭 이런 식으로 한번씩 끼어드는군요.


이제 오늘밤의 큰역할은 끝난걸까요.
설마 오늘같은 날도 가면을 쓴 채로 몰려들지는 않겠죠.
아든이 떠나고, 오늘은 다들 파티를 즐기느라 바쁜지 릴리안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이미 줄을 탈 사람은 다 눈도장을 찍었다는 뜻일까요?
성가신 만남이 많은 것보다는 낫겠네요.
한숨 돌린 찰나, 릴리안은 다시금 시선을 느낍니다.
오페라 하우스에 올 때부터 느낀 그 집요한 시선입니다.

가늘게 뜬 눈으로 릴리안은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립니다.
시선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면 구석진 자리 어둠이 내리깔린 곳에서 누군가 눈을 형형히 빛내며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대뜸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아무도 그를 눈치채지 못한 걸까요? 당신의 손목을 자국이 남을 만큼 강하게 쥡니다.

속삭이는 목소리는 기이할 정도로 빨랐고 기이한 주문처럼 들릴 정도였습니다.

"나와 함께 지하 동굴로 가자. 나의 거래자가 되어라."
그를 붙잡는 손길이 꽤나 집요합니다.
"나의 강림을 맞이할 새로운 아이호트의 숙주가 되어라!”

그는 주변을 살피며 으르렁거립니다.
"그 빌어먹을 것이 내 눈에서 빠져나가려 하고 있어. 너를 내게서 빼내려 하고 있다고. 무슨 수작을 부린 거지?"
"허나 소용 없다, 소용 없어!"

발끝이 쭈뼛하는 감각을 느끼는 와중에도 릴리안의 어깨에 힘이 들어갑니다.
지금 보는눈이 많은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겠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의 얼굴을 보면, 평범한 사람의 형상입니다.
스카일러 가의 사람입니다.
눈을 희번뜩 뜨며 무어라 속삭이던 그는 곧 인형처럼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이내 삐걱거리며 걸음을 옮깁니다.

그는 홀을 빠져나가려 하는 듯합니다.

'그것'이 홀밖으로 모습을 감추기 직전에 빠른걸음으로 뒤를 밟습니다.
그를 뒤따라가려 하면, 사방에서 시선이 꽂힙니다.
어둠 속에 표정을 감춘 스카일러 가의 사람들이 일제히 당신을 응시합니다.
정신력 판정해주세요.

기준치: | 37/18/7 |
굴림: | 3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드디어...1
쫌 제대로된....정신력이 나왔네요....!!
릴리안은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강해졌습니다.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빠져나가는 사람의 뒤를 밟습니다.
릴리안이 홀 밖을 나가자 시선들이 거두어집니다.

저것을 따라가서 뭘 어떻게 하리라는 계획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노골적이었던 것은 처음이었으니 이쪽으로서도 그냥 보낼 수는 없습니다.
한참 그를 따라가자면 그것은 복도를 돌아 사라집니다.
릴리안이 그를 따라 복도를 돌았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흔적도 보이지 않네요.

온 신경을 기울이고, 펄떡거리는 심장소리마저 무시하고 있었건만...
릴리안은 급히 달리다 멈춘 마차처럼 방향을 잃고 텅빈 복도를 둘러봅니다.
벽에 비밀통로라도 있지 않는 한, 사람 하나가 그냥 사라질 리는 없을텐데요.
해볼 수 있을까요!;3;
관찰 굴려주세요.

기준치: | 70/35/14 |
굴림: | 95 |
판정결과: | 실패 |
자...료...조...사...
드듣기......
자료 조사는 지금 상황과 맞지 않을 것 같고, 강행을 해보시겠어요?

기준치: | 70/35/14 |
굴림: | 23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터덜)
릴리안은 사라진 이의 흔적을 찾기 위해 어두운 복도를 둘러보던 중, 복도에 길게 늘어진 카펫 아래에 무언가 떨어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두 번 접힌 종이 쪽지네요.

쪽지 안에는 < 세뇌를 푸는 주문 > 이 적혀 있습니다.
'범위 내에 존재하는 세뇌 주문에 당한 이들에게 기억을 되돌려주며,'
'정신을 지배 당하고 있는 이들을 완전히 속박에서 풀어낸다.'
'술자의 마력과 이성을 대가로 하여 다음 키워드를 두 번 반복해 읊으면 즉시 효과가 발동된다.'
키워드 : 데이지, 바다, 폭풍
주문을 시전할 경우, 술자의 마력 -1, 이성 -1d3

분명 이것은 도움이 될 단서입니다.
어쩌면 지금 파티장으로 돌아간다면......
하지만 릴리안의 발은 빈 복도에서 꼼짝하지 않습니다.
아까 홀을 나올때만 해도 집요하게 어둠속에서 달라붙던 시선들.
이쪽은 아든을 더한다고 해도 수적으로 열세입니다. 의심가는 사람들 전부가 저 홀에 있으리라고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섵불리 시도했다간 역으로 그것들을 부추기는 꼴이 될지도 모릅니다.

종이를 원래대로 접는 손길에 불필요하게 힘이 들어갑니다.
우선은, 조금 더 이곳에 있어야하니까요. 대책을 생각할 시간은 아직 그만큼 남아있을겁니다.
릴리안은 다시 홀로 돌아가나요?

홀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릴리안은 손목에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낍니다.
아까 전에 꽉 잡혔던 손목이 시큰거립니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조금 쉬고 가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홀보다는 덜 떠들썩하고...이왕이면 밝은 곳이 좋겠네요.
옷소매 안이 어떻게 되어있을지 좀더 자세히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그는 첫날에 보았던 휴게실을 떠올립니다.
모두 파티를 즐기느라 분주한 지금, 거기엔 사람이 별로 없겠죠.

도중에 먼지를 떨구듯 털어내는 동작만으로도, 손목이 평상시와는 다르다는 게 느껴져 조금 짜증이 난 상태입니다.
괜히 컨디션이 더 안 좋게 느껴집니다. 결혼식 전날에 이게 무슨 불상사인가요...
그는 휴게실로 향합니다.
휴게실은 텅 비어 있습니다.
푹신한 소파와 티 테이블, 턴 테이블이 눈에 들어옵니다.
턴 테이블에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손목의 시큰거림은 그대로지만요.
비어있는 소파쪽으로 천천히 걸어갑니다.
푹신한 소파에 앉자 기분이 조금 누그러지는 것 같습니다.
앞서 누군가 왔다 간 듯한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관찰 판정해주세요.

기준치: | 70/35/14 |
굴림: | 80 |
판정결과: | 실패 |
강행... 하시나요.
하세요!

기준치: | 70/35/14 |
굴림: | 6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튕기다니!튕기다니!
릴리안은 소파 틈새에서 쪽지 한 장을 발견합니다.
[ ■의 강림이 머지 않았으나 하찮은 필멸자의 방해로 실패했으니 그 원인을 이용하여 이 세상에 다시금 아이들을 퍼트리고 숙주를 만드는 것이 응당한 일. ]
[ 원인이 되는 두 인간을 ■의 지하 동굴로 데려온다. 일시는 내일 아침. 결혼식이 끝나는 순간. ]
급하게 휘갈겨 쓴듯 거친 필체로 적혀 있군요.

말끔하게 찢어버립니다.
휴게실에 벽난로가 있었다면 딱 좋았을텐데요.
릴리안이 쪽지를 찢어버리고는 가만히 앉아서 쉬고 있자니, 휴게실 문이 벌컥 열립니다.
초조해보이는 기색의 아든이 휴게실 안으로 들어옵니다.

퍽 걱정스러워 보이는 얼굴로 소파에 앉은 그를 향해 다가옵니다.

릴리안은 빠르지 않은 어조로 답하며 자연스럽게 잡혔던 쪽 팔을 팔걸이에 기댑니다.
소매가 풍성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심기가 불편한듯 얼굴을 찡그리며 릴리안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 누릅니다.
"갑자기 나가길래 따라온 건데, 무슨 일이 생겼던 건 아니지?"

"다 보고있었으면 처음부터 그랬다고 말했으면 좋았잖아."
"... 무례한 사람이랑 엮이긴 했지. 의외의 수확이 좀 있었고."
거짓말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좀 쉬려고 여기 온 것도 맞으니까요.

자초지종을 자세히는 몰랐는지 얼굴이 서서히 굳어집니다. 릴리안의 몸을 살피듯 위아래로 한 번 훑습니다.
"...무슨 일 있었어?"

여기서는 순순히 털어놓는 편이 좋을까요.
"괴롭힌다니, 15살짜리 애도 아니고."
웃음기 섞어 궁시렁거리면서도, 릴리안은 슬그머니 소파의 좌석을 짚고있던 손을 무릎 위로 올려놓습니다.
"무슨 일이 있긴 했는데, 네가 그만큼 걱정할 일은 아니야."
"...그냥 좀, 불쾌했지."

"...실랑이가 있었나 보네."
멍자국이 남은 팔을 내려다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쉽니다.

정말 그것뿐이라는 것처럼 릴리안이 한두마디 더 덧붙입니다.

걷었던 소매를 다시 내려줍니다.
"숙소로 돌아가서 쉬자. 어차피 다들 파티를 즐기느라 우리가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몰라. 알아도 우리가 같이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할 거야."

줄곧 묘하게 곤두서있던 릴리안의 분위기가 다소 유해집니다.
아든을 화나게 하지도, 필요이상으로 걱정시키지도 않았을뿐더러, 많은 감시가 닿지 않는 곳에 있을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습니다.

"팔 아프지. 그냥 가자."
먼저 등을 돌리고 앞장섭니다.

"이편이 더 방해받지 않을 것 같은데."
멀쩡한 왼손으로 아든의 팔꿈치를 벌려 팔짱을 낍니다.

"그래. 누가 봐도 열렬한 연인 사이로 보이겠네. 고작 3일만에 이렇게 가까워졌다고? 비결이 뭔지 다들 궁금해하겠어."
장난스러운 말투로 농담을 건네며 걷습니다.

릴리안도 농담을 받으며 숙소로 올라갑니다.
두 사람은 숙소로 장소를 옮깁니다.
릴리안의 방으로 들어온 아든은 방에 그를 밀어넣고 문을 닫습니다.

문득 생각난 얼굴로 릴리안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춥니다.

알면서 굳이 묻습니다.

그는 킥킥거리며 웃습니다.

완전히 밖에서 차단된 공간으로 와 드디어 긴장을 풀었는지, 릴리안의 후후 웃는 얼굴은 조금 힘이 없어보이지만 부드럽습니다.

장난스러운 말과 달리 릴리안의 팔을 내려다보는 눈에는 수심이 어려 있습니다.
"뼈가 다친 건 아니지? 그럼 쉬면, 좀 나을 텐데."

"잘 모르겠는데, 아마 괜찮지않을까."
적어도 손목이 팔끝에서 덜렁거라진 않잖아.
아든에게 동의를 구하듯, 나름 참을만 하다는 것을 어필합니다.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보다가 릴리안을 침대에 앉힙니다.


릴리안의 곁에 앉아 눈을 느리게 깜빡입니다.
"아까 주문 건 걸로 총 다섯 번 걸었으니까, 이제... 괜찮아."
"이제 그것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어."

"고생한 보람이 있네."
아직 이 말을 하기는 좀 이를지도 모르지만요.

"그래서, 결혼식장에서 도망친 후의 일을 좀 생각해봤는데."
"다들 나를 기억 못하잖아. 그러니까... 알테어 가로는 갈 수 없을 거야. 스카일러 가를 자칭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나를 쫓아올 테고."
"역시, 어디까지고 도망치는 수밖에 없는 걸까."
무릎 위에 얹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이야기하는 말투가 조금 느리고, 낮습니다.
"그런 불안한 앞길에 너를 데려가야 할까. 나는 그게... 조금 마음에 걸려."


"그건 아니지. 네가 말했잖아. 그것들이 이토록 집요하게 원하는 건 '나'라고."
그런데 나혼자 돌아간들,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
물어놓고 릴리안은 잠시 뜸을 들입니다.
어둠 속에서 희게 보이는 아든의 은발을 가만히 쓸어줍니다.
"너는 여전히 내 안위밖에 생각하지 않는구나."

"그런 너를 위해서 내가 선물을 준비했지."

어리둥절한 얼굴입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이걸 쓰기 적절한 상황을 떠올리지 못했지만...적어도 이게 너의 험난한 앞길에 도움이 될 거야."
그것을 아든에게 내밀며, 릴리안은 똑바로 아든의 눈을 응시합니다.
"나한테도 그렇고."
"잊지 않았지? 이번일은 공동 책임이야."

"...세뇌를 푸는 주문..."
난 이거 못 찾았는데. 조금 맥이 풀린 듯 중얼거리는 목소리엔 힘이 없었지만, 그의 얼굴은 한결 편안해 보입니다.
"이게 있으면, 저택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

릴리안은 보란듯이 오른팔을 내밀어보이고, 멍자국을 왼손 검지로 톡톡 칩니다.
"내가 짜증스러움을 감수하고 발견했는데-. 대단하지 않니?"

중얼거리는 목소리 끝에 약간 물기가 어립니다. 쪽지를 쥔 손이 떨립니다.

"아, 울리려고 보여준 건 아닌데."
어떻게 해주는 게 좋을까 잠시 헤매는 듯 하다가, 릴리안은 가만히 떨리는 아든의 손등을 덮어 잡습니다.
"네가 나를 위해 한 행동에 비하면, 이 정도는 우연의 산물에 지나지 않아. 내가 아무리 뻔뻔해도 그정도는 알아."

물기 어린 눈이 밝게 웃습니다.
"그런 거 일일이 계산할 관계가 아니잖아, 우린."
"중요한 건, 꽉 닫힌 해피엔딩을 맞을 가능성이 생겼다는 거지."

"그러기 위해서 생각을 좀더 해봐야겠지만-."
포개지 않은 손을 뻗어 아든의 눈가를 천천히 쓸며,
"아까 발견하자마자 써볼까 싶었는데, 이 거대한 오페라 하우스의 하객들이 전부 있는 자리에서, 감시의 눈을 코앞에 두고 쓸만한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것 같아서 관뒀어."

잠시 고민하다 한 마디 툭 던집니다.



아든과 말이 겹치자, 묘하게 납득이 가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왜 이제껏 대망의 본무대를 떠올리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 역시 감정이 흐트러진 상태에선 머리가 둔해지나본데."
이제까지의 지대한 관심으로 볼 때, 세뇌당한 사람들이든 단순히 섞여든 사람들이든 내일은 모두 두 사람을 주목할것입니다.
그만큼 절호의 찬스는 전에도 후에도 없겠네요.

"세뇌를 풀면, 사람들이 쫓아오지 않겠지."

릴리안은 누가 보기에도 영롱한, 아름다워보이는 미소를 짓습니다.
짓궂은 내용과는 아주 별개로 보이는 표정입니다.

"알테어 가 사람들은 기억이 돌아왔으니 우리를 알아볼 테고. 보호 주문으로 신의 시선에서도 벗어났으니.. 계획대로 된다면, 이번에야말로 자유로워질 수 있겠네."

"나는 이렇게 성대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익숙한 스카일러 가의 어른들에게 축하받고싶은걸."
그냥 막연한 미래에 대한 생각이 밀려듭니다.
단 하룻밤을 경계로 한, 아주 멀리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미래에 대한 생각이.

"뭘 축하받아. 진짜 결혼이라도 할 생각이야?"

"내 인생의 오점이 될 정도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거, 그런 의미 아니었어?"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는지 당황한 얼굴로 말을 꺼내다 말을 버벅입니다.
"예전처럼, 지내도, 계속 곁에 있는 거니까. 어... 그런 거였지. 알테어 가에서 너랑 나랑 결혼하는 걸 허락해주겠어?"

릴리안은 조금 도전적인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집요한 시선을 받을 때보다도, 오싹한 기색이 등줄기를 타고 지나갑니다.
어머니라면.... 어머니가 알면 파면당할지도 모르겠네요.
(파...문...)
"하지만 아든, '오점'이라는 건 세간에 알려져야 남는거야."
하지만 이내 대담하게 미소짓습니다.

무엇보다, 아들을 '오점'취급할 생각은 없지만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으니까, 뒷말은 굳이 생략하기로 합니다.

영 믿기지 않는 얼굴로 얼떨떨한 눈빛을 한 채 쳐다봅니다. 릴리안 알테어에게 이런 말을 들을 날이 올 거라고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요.
"너, 가주님께 단단히 혼날지도 몰라."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표정입니다.
"아니면, 내 애인 정도로 만족할 수 있어?"
멀쩡한 쪽 손가락으로, 곱슬머리 끝을 뱅글뱅글 감아내립니다.
"내가 다른사람이랑 또 결혼한다고 하면, 그때는 날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려나?"

입꼬리를 일그러뜨리다 잠시 고개를 떨굽니다. 그야, 좋은 가문 사람이라면 양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까지 자신을 붙잡아주는, 본인 입으로 나약한 사람이라 말하는 그에게 굳이 사실을 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욕심을 부려도 되는 거겠지. 지금은 우리 둘밖에 없으니까.
"그런 짓궂은 질문 좀 하지 마. 당연히 보내주기 싫지."
"네가 먼저 말한 거야. 책임지고, 날 네 인생의 오점으로 새겨넣어야 해."

"그 말, 내가 해주려고 했는데."
릴리안은 어린날 그랬던 것처럼, 아든에게 아무 배려 없이 받아칩니다.
"너야말로 네 말에 책임을 지도록 해."

그는 비로소 편안하게 웃습니다. 이곳에 와서 릴리안을 만나, 이보다 더 편안한 기분이 든 적이 없었으니까요.
내일은 두 사람의 결혼식 날입니다.
물론, 그 결혼식이 무사히 막을 내리는 일은 없을 것이지만...
상관없지 않나요? 조금 뒤로 미뤄지는 것뿐입니다.
내일은, 그래요, 자유로워지는 날입니다. 지긋지긋한 신과 숙주의 관계에서.
먼 길을 돌아... 결국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아침이 옵니다.
일찍부터 모든 사람들이 분주합니다.
시종이 들어와 예복을 건넵니다.
장인에게 주문 제작했다는 예복은 지금까지 입어본 옷들 중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합니다.
가족, 친척들이 연달아 당신의 방을 방문해 축하 인사를 건넵니다.
어제 성대한 피로연이 열렸던 오페라 하우스의 1층 홀은 어느 새 결혼식이 진행될 식장으로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휴게실에서 예식을 앞두고 대기하고 있노라면, 심장 박동 소리가 귓가에 울립니다.
이 결혼식이 끝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다행스럽게도 하룻밤 푹 자고나자 손목의 멍은 많이 희미해졌습니다. 시큰거림도 더 이상 크게 신경쓰이지 않습니다.
시종들이 휴게실을 나가고 나면, 숙소로 이어지는 계단에서 아든이 내려옵니다.


릴리안은 아든에게 보란듯이 오른손목을 팔랑팔랑 흔들어보입니다.
걱정거리를 하나 덜어주겠다는 것처럼요.

안도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웃어 보입니다.
"어제 얘기한 대로만 하면 돼."

잘게 접은 쪽지는 릴리안의 굵은 머리끈 사이에 숨겨져있습니다.
어딘가에 버리면 들킬 위험이 있었으니까요.
주문은 잠들기 전 몇번이고 확인해두었습니다.

조금 쑥스러운 얼굴로 말을 흐리다가 릴리안의 손등에 가볍게 입술을 댑니다. 키스라고 하기엔 민망한 접촉입니다.
"내가... 사람을 보는 안목은 확실하잖아."
그는 쑥스러운듯 잽싸게 휴게실 입구 쪽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아든이 믿는 이상에, 분명 실패는 없겠죠.
릴리안은 여전히 자신에게 확신을 주지 않지만, 아든이 그렇게 말한다면요.
머리타래를 조이는 손끝에 조금 힘이 들어갑니다.
아든이 나가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들러리가 휴게실로 들어옵니다.
웨딩 로드를 걸을 시간이라 고합니다.
일단 이것은, 당신과 아든의 결혼식입니다.

릴리안이 웨딩 로드를 밟으며 걸어나가면, 무수한 박수 갈채가 쏟아집니다.
그리고 박수 갈채에 섞여 따가울 만큼 쏟아지는 시선들이 있습니다.
스카일러 가의 사람들은, 마치 당신을 잡아 먹기라도 할듯이 주시하고 있습니다.
허공으로 꽃잎이 휘날립니다.
모두가 웃고, 음악 소리마저 경쾌합니다.
마냥 이 광경을 즐길 수는 없습니다. 계획이 실패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이곳이 아니라 전혀 다른 곳에서 끝날 테니까요.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노라면, 길의 끝에서 아든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죽음에서 돌아온 우리.
지독한 위기에 처하고 마는 우리.
많은 길을 돌고 돌아, 결국 어떻게든 우리가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이유는 세 개뿐입니다.
사랑하거나, 미쳤거나, 혹은 둘 다거나.

얼핏 찔러오는 듯한 시선에 싸늘한 표정을 보일 법도 한데, 청회색 눈동자는 오로지 길끝에 서 있는 은발의 소꿉친구에게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쿵쿵거리는 심장소리를 그대로 느끼면서, 발걸음을 흩트리지 않도록 신경을 기울이면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면서도 아든 스카일러에게만 관심을 둔 채 마침내 기다리던 사람의 옆에 섭니다.
아든의 곁에 서면 주례가 시작됩니다.
평범한 주례사입니다.
이어서 아든이 당신의 손에 반지를 끼워줍니다.

"나도 해줘."
자그맣게 속삭입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어쩐지 신기한 기분입니다.
릴리안도 그의 손에 반지를 끼워줍니다. 신기한 기분이네요.
좀처럼 해볼 수 없는 경험이니까요.
아든과 릴리안의 시선이 조심스럽게 마주칩니다.
주례는 어느새 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든 스카일러는 릴리안 알테어를 배우자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존중하며 함께 할 것을 맹세합니까?"
아든이 떨림에 잠긴 목소리로 천천히 대답합니다.
"맹세합니다."
주례는 릴리안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옆에 선 그를 평생 사랑하고 존중하며 함께 할 것이냐고.

문득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면 이상하게 지금이라도 웃음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합니다.
슬쩍, 건드리듯 손을 잡으면, 반지끼리 부딪쳐 나는 미세한 소리마저 들을 수 있습니다.
"맹세합니다."
그저 신기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상태로, 릴리안은 정해진 말을 읊조립니다.
릴리안이 잡은 손을 내려다보던 아든이 좀 더 강하게 손을 맞잡고 입모양으로 속삭입니다.
지금이야.
그리하여 직후에 일어난 일은, 이 무대를 뒤집어버릴 사건입니다.
주례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든이 당신을 이끌고 웨딩 로드를 내달립니다.
방금 전까지 웃던 하객들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표정을 짓습니다.
맞잡은 손은 단단합니다. 절대 놓지 않겠다고 말하듯이.
일련의 장면이 슬로우 모션처럼 펼쳐지는 기분입니다.
하객석 구석에 앉아 있던 스카일러 가 사람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이 보입니다.
그들이 쫓아오고 있습니다. 당신과 아든을 잡으러, 신에게 바치기 위해서.

"「데이지, 바다, 폭풍」―,"
한번 더, 「데이지」, 「바다」그리고, 「폭풍」
릴리안이 주문을 읊자 두 사람을 쫓아오던 사람들은 돌연 행동을 멈춥니다.
알테어 가의 사람들도, 스카일러 가의 사람들도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 여기서 뭐하는 거지? 혼란스러워하는 목소리가 웅성웅성 오페라 하우스 안을 가득 채웁니다.
두 사람은 그대로 오페라 하우스를 나와 달립니다.
시간은 환한 대낮, 작열하는 태양빛을 등에 이고 당신은 그와 함께 들판을 가로질렀습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더는 달리기 힘들어질쯤, 아든이 멈춰섭니다.
절벽에 핀 들꽃이 바람에 휘날리고, 어딘가에서 꽃향기가 풍겨오는 것만 같습니다.
당신들은 자유로워졌습니다.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이 시야에 잡힙니다.
아까까지 있었던 일들도 현실이라면 현실인데, 지독하게 현실감이 없습니다.
이 기이한 감정을 뭐라고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아든이 몸을 돌려 그를 마주 봅니다.

묻는 목소리는 아까 주례 앞에서 서약의 말을 읊을 때보다 더 떨리고 있습니다.

바로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 답답해서, 즐거워서, 아직 믿기지 않아서, 눈꼬리로 물기가 흩어집니다.
"......내,가."
"내가 유일하게 가장 가까이에 두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말을 꺼낼 때마다 힘차게 공기를 운반하던 폐가 찌르는 아픔을 호소합니다. 하지만 대답은 끝내야만 합니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릴리안 알테어의 마음을, 더 이상 과소평가할 필요도 없고, 지레짐작으로 오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줄곧... 그는 저렇게 말했으니까요. 자신이 미처 몰랐을 뿐.
"사랑해. 내 인생에 사랑이라 명명할 수 있는 관계의 주인은 너뿐이야."
다음 날, 신문 1면에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한 쌍의 연인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본인들의 결혼식장에서 도망쳤다나요.
이 결혼식은, 일말의 소동이 있었으나 곧 약간의 해프닝이자 이벤트로 무마되었습니다.
알테어 가 사람들이 '아든 스카일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이죠.
참 불가사의한 사건이 다 있네요.
사연을 모르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해프닝의 주인공인 두 사람은 다시금 돌아온 생을 만끽합니다.
알테어 가의 저택, 꽃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을 걷고 있자면 아든은 그가 가꾸는 작은 화단 앞에서 평소처럼 미소짓고 있습니다.
당신이 바라온 삶은, 엔딩은, 이게 맞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