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
191109 < Never End Choice > 본문
<Never End Choice >
KPC : 아든 스카일러 (리노) / PC: 릴리안 알테어 (소르벳)
짝사랑은 좋은 문명!!!!
여러가지로 받아주신 소르벳님 감사합니다
아 그러니까 릴리안이... 완전... 찐슬데고요
은발슬데남캐 둘인데 한 명은 찐슬데고 한명은 짭슬데인 기묘한 조합
이 아래로는 시나리오의 직접적인 스포일러가 가득합니다.
플레이 예정이 있으신 분들은 열람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Never End Choice
당신은 눈을 뜹니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익숙하기 그지없는 풍경입니다.
머리맡의 창문으로는 따스한 햇볕이 들어오고, 오른쪽에 놓인 책상에는 아든의 편지가 놓여있고, 찬 공기가 잔잔히 머물고 있어 이불에서 나온 당신을 놀라게 할, 당신의 방.
릴리안, 지능 다이스 롤.

기준치: | 60/30/12 |
굴림: | 92 |
판정결과: | 실패 |
(...)
이번이 몇번째의 루프더라. 9번째? 10번째? 그쯤이었던 거 같은데. 이젠 루프를 하는 것도 무뎌졌나 봅니다.
9번째 밤에 아든이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흐릿합니다. 괴로웠던 감정은 생생한데도.
이번에는 어떻게 아든을 지켜야 할까, 그런 생각과 함께 릴리안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방 안을 둘러보면 평소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책장, 옷장, 책상, 침대가 놓인 간촐한 방입니다. 창 밖으로는 멀리 시계탑이 보이네요.

(아든의 편지가 놓여있다고했는데 조사해봐도 되나요?)
릴리안은 제일 먼저 책상에 놓인 아든의 편지를 살펴봅니다.
[ 릴리안, 잘 지내고 있지? 고작 이틀이긴 하지만 네가 없으니까 좀 외롭다. 곧 돌아갈 테니까. 마중 나와줄래? 12일 저녁 8시에 도착할 예정이야. ]


아직 쌀쌀한 날씨에 맞춰 코트를 꺼내입고 카페로 외출합니다.
종업원은 그의 얼굴을 익혔는지 반갑게 인사하네요. "어서 오세요. 오늘은 혼자 오셨네요?"

"매뉴는 언제나의 세트로 부탁드릴게요. 빵을 제외하고, 샐러드는 드레싱이 없는대로요."
바깥은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로 활기찬 듯 보이지만 묘하게 술렁이고 있습니다. 카페 안에서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이네요.

듣기 다이스 롤.

기준치: | 70/35/14 |
굴림: | 1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
릴리안은 주변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입니다. 혼자 와서 할 일이 없는 탓이죠.
두 중년 남성이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아, 진짜라니까! 괴물이 사람을 먹어서 시간을 되돌리고 있대도!"
"에헤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 이 인간 아침 댓바람부터 술이라도 마신 건가?"
시간을 되돌리고 있는 사람이 있긴, 하죠?

이젠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소리랄까.
그저, 오늘 밤에는 저 소시를 떠드는 둘 중의 하나가 희생양이 되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런 생각을 감흥없이 해봅니다.
"맛있게 드세요~" 종업원은 밝게 인사하고 갑니다.


깨끗하게 접시를 비운 릴리안은 계산을 마치고 집에서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행운 판정 성공시, 꽤 이른 아침부터 가게를 열고 나온 정보상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네요.

기준치: | 40/20/8 |
굴림: | 55 |
판정결과: | 실패 |


납품할 양보다 조금 더 많이. 주문받은 약을 조제하러 다이닝룸으로 걸어가던 중...
(혹시 집안에서도 별개로 조사할 수 있는 곳이 있나요?)

릴리안은 우선 방으로 돌아가 책상 위를 살펴봅니다.
"어디에 끼워뒀더라...?"
(책상 위부터 관찰해봅니다!)
릴리안이 업무를 보거나 독서를 하던 책상입니다. 책상 위에 주문서가 뒤집어져 놓여 있네요.
책상 위에는 그 외에 아든이 남겼던 편지, 손잡이가 조금 낡은 단검이 놓여 있습니다.

책장에는 릴리안과 아든의 관심사와 관련된 책들이 가득합니다. 그러고 보니, 서로 반씩 나눠 쓰자고 했었죠.
릴리안이 쓰는 책장의 한 줄은 아든이 출간할 때마다 선물한 책 초본이 가지런히 꽂혀 있습니다.

릴리안, 관찰 다이스 롤.

기준치: | 65/32/13 |
굴림: | 5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번에는 아든을 살려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릴리안은 책장을 살피던 중 한쪽 구석에 처음 보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책도 있었던가?


그렇습니다. 최근 도시의 발전과 관련하여, 한 학자의 의견을 적은 듯한 책으로 보입니다.
세상은, 한창 문명의 발전이다, 기계 혁명이다, 혹은 기계의 발전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 대립으로 시끄럽지만...
릴리안도 아든도 이쪽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던 것 같은데 왜 이런 책이 집에 있었던가?

책은 평범한 책입니다. 이 이상 특별한 점을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혹시 모르는 일. 릴리안은 우선 없던 책을 헷갈리지 않도록 책상 위에 꺼내어두고 돌아섭니다.
점심이 오기 전에는 시장에 가볼 생각이었지만, 이건 집안의 달라진 점을 좀더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 가타네요.
우선은 아침에 정돈해두었던 침대 언저리를 살펴봅니다.
(관찰판정...!해봅니다!)
릴리안, 관찰 다이스 롤.

기준치: | 65/32/13 |
굴림: | 4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침대를 보고 있자니, 분명 그럴 리 없는데도 침대가 피로 얼룩진 기분이 듭니다.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빼앗은 무고한 목숨들에게 죄책감을 느끼나요?

목숨을 빼앗은 사람들의 얼굴이나 목소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만, 특별히 가슴이 아프다거나 미안한 감정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그랬다면 단검을 챙기거나 약을 더 만들 생각은 오늘 하지 않았을테죠.
가볍게 눈두덩을 누른 뒤, 릴리안은 잔상을 떨치기 위해 창밖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창가, 관찰해봅니다)
그렇죠, 아든의 모든 죽음이 불운한 사고로 되풀이되었던 것처럼 그들의 죽음도 불운한 사고로 묻혔을 겁니다.
이변이 없다면 오늘도 불운한 사고는 반복되겠죠.
창가를 관찰해보니 멀리 시계탑이 보입니다.
관찰 롤 성공시, 조금 더 자세히 볼 수 있겠네요.

기준치: | 65/32/13 |
굴림: | 76 |
판정결과: | 실패 |
(쉬익쉬익...)
시계를 보니 언뜻, 시계의 숫자 부분이 붉은 색으로 일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평소와는 다르네요.

약을 갈다 손이라도 찧지 않으려면 조금 한숨을 돌리는 게 좋을까요.
(의자에 앉아서...아까 안한 것 같은 책상 위 관찰판정 해봐도 될까요!)
그대로 텅 빈 집안에 있어도 일은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으니. 주문서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기분전환 겸 근처를 거닐기로 합니다.
막 일어났을 때보다는 해가 올랐을테니, 좀더 얇은 옷을 걸치는 게 좋겠네요.
(나가기 전에 옷장을 열고! 마지막으로 관찰판정 해봅니다...!)
관찰 판정 없이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옷장 안에는 검은색 계통의 옷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원래 릴리안의 취향과는 조금 거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 때 흔적을 남기지 않고 어둠에 녹아들기 위해 선택한 것입니다.

높은 곳에라도 올라가면 정신이 맑아질까요?
시계탑을 목표로 천천히 걸어갑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신문에서, 이상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기사를 읽은 것 같습니다. 변화의 물결이 덮쳐오는 여파로 종교를 통해 불안을 해소하려고 한다나 뭐라나.
아든은 그 기사를 보고 "나중에 소재로 써볼 만하겠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웃었었죠.

종교는 정말로, 손에 잡을 수 없는 안개같은 것, 소재거리에 불과할텐데.
릴리안, 듣기 다이스 롤.

기준치: | 70/35/14 |
굴림: | 91 |
판정결과: | 실패 |
릴리안, 관찰 다이스 롤.

기준치: | 65/32/13 |
굴림: | 32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릴리안은 검은 후드를 눌러쓰고 가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정말 누가 봐도 수상한 종교인에 걸맞는 행색이네요.
수상한 사람은 약간 몽롱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립니다.
종말, 모든 것이 끝나는 시간, ...13.... 13은 종말을 가리키는 숫자다...
릴리안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였습니다.

13이라는 숫자가 묘하게 뇌리에 남는 듯한 기분으로 시계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시간을 되돌리는 사람이 있는 와중에, 신을 믿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될런지?
시계탑 근처에는 사람이 북적입니다. 그야 그럴 만도 하죠. 평소와 달리 시계의 숫자 부분이 불에 타는 것처럼 붉은 빛으로 일렁이고 있는걸요.

이 자리에 있는 인파가 전부 그 변화를 눈치챌 정도이니...
"무슨일일까요. 단순한 고장은 아닌 것 같은데."
큰 실마리는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릴리안은 우선 시계탑을 둘러싼 사람들 중 옆사람에게 인사치레로 말을 겁니다.
갑자기 들려온 릴리안의 목소리에 약간 경계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던 사람은, 릴리안의 얼굴을 보자 금세 사근사근해졌습니다.
"그러게요. 갑자기, 저기 봐요, 1부터 10까지의 숫자가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니까요. 직원들이 원인을 찾겠다고 시계탑 출입을 제한했어요."

시계탑에는 올라갈 수 없는건가, 생각하며 릴리안은 옆사람의 얼굴을 미소띤 표정으로 응시합니다
주변 사람들도 한 마디씩 보챕니다. 뒤숭숭한 일이 자주 벌어진다고, 뭔가 큰일이 생기는 건 아니냐고, 별다른 내용은 없는 것들입니다.

옆사람에게 감사인사를 건네며, 시계탑을 바라볼 때는 소리없이 미간에 잔주름이 잡혀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릴리안의 귓가에 대수롭지 않게 떠드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러고 보니, 요새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사람에 대한 소문 들었어요?"
"무슨 정보를 산다고 시장을 들쑤시고 다니던데. 얼굴을 절대 안 보여준대요."
릴리안, 듣기 다이스 롤.
기준치: | 70/35/14 |
굴림: | 4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뭐라도 새로운 힌트가 필요한 지금. 정보 하나라도 허투루할 수 없겠죠. 릴리안은 귀를 기울여 봅니다.
"검은 후드를 깊게 눌러쓴 사람인데, 요새 유행하는 사이비 종교인인 줄 알았더니 아니더래요."
"그 미친 사람들은 말도 이상하게 하고, 아무리 봐도 이상한 분위기가 풍기는데 그 사람은 굉장히 또렷한 목소리로 정보를 구하고 있다고..."
"무슨 정보를 구하는지는 모르겠네요. 그 사람도 원하는 정보를 구한 일이 별로 없는지 대부분 허탕을 치고 돌아간대요."
재잘재잘 떠들던 여자들은 이내 다른 곳으로 걸어갑니다.

어차피 들를 예정이었지만, 오늘은 좀더 면밀하게 주변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래저래 평소와 다른 것들이 일어나는 "오늘"이니까요.
붉은색으로 일렁이는 시계탑에 한번 더 눈길을 준 다음, 릴리안은 정말로 오늘의 할일을 하러 발걸음을 돌립니다
릴리안은 시장으로 향합니다. 시계탑을 등지고 걷기 전에 시계를 한 번 보니, 어느새 오후 3시를 넘겼네요. 느린듯 빠르게 지나가는 하루입니다.
시장에 들렀다가 역으로 아든을 마중 나가면 될 듯 합니다.

이대로 저녁까지는 집에 들어오지 않을 생각이니, 아침에 걸쳐놓았던 네이비색 코트는 다시 여민 채입니다.

"정량과 종류, 혹시 모르니 한번 더 확인해시겠어요?"
"여전히 지나가는 숙녀 대여섯은 울릴 거 같은 얼굴이구만. 그런데 얼굴이 좀 어두워 보이네."
진심인지 인사치레인지 모를 말을 건네며 그는 약을 확인합니다.

"방금 산책을 다녀오는 길에 좋지 않은 소문을 들었거든요. 요즘 시장 안을 맴도는 얼굴 없는 남자가 있다든가..."
"매일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줄 알았는데, 그런 소문도 용케 주워들었구만. 맞아. 우리 가게에도 한 번 왔었어."

릴리안의 시선은 주인이 셈하는 약봉지에 머물러있습니다
다시 약봉지 안을 뒤적거리던 주인이 말을 잇습니다.

릴리안은 나직하게 맞장구치며 귀를 기울입니다.
"그런 소문 처음 들어본다고 했더니 뭔가에 쫓기듯 급하게 가버렸어. 들르는 가게마다 자기에 대해 발설하지 말라고 하는 것 같은데.. 실상은 이렇게 소문이 다 퍼져버렸지."


눈썹을 기울이며 웃는 표정은 평소대로입니다.
"정말 소문이 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걸 묻고다니는지는 조금 흥미가 생기네요."
어디까지나 허무맹랑한 농담이라도 들은 것 같은 투입니다.
심지어 약간은 재미있어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얼굴이나 체격은 후드와 망토로 가려서 알 수 없었지만 남자인 것 같더라고. 이상한 사람 만나지 않게 조심해. 그 팔로 어쩌겠어." 낄낄대며 농담도 덧붙입니다.

릴리안도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마주 웃으며 대금을 갈무리합니다.
슬슬 역으로 아든을 마중나가면 좋을 것 같은데...
결국 정보상은 혼자있을 때 들르지 못한 것이 다소 아쉽네요.
이변이 생긴다면 정보상에 들를 일은 없을 것이고, 평소와 같다면 릴리안에게는 또 '다음'이 있겠죠.
기차의 기적 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옵니다.

릴리안은 빈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은 채 기차가 도착하기 전 여유있는 시간에 플랫폼에 붙은 대기실에 도착합니다.

물론, 모르겠죠. 급하게 온 것인지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며 릴리안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이어진 질문에는 슬며시 눈을 돌리며 입가에 미소를 걸고, 짐가방 외에 들어줄 것은 없는지 묻습니다.

"누나를 보러 급하게 다녀온 거라 짐은 별로 없어서 괜찮아. 누나가 둘째를 출산했더라고. 조카가 벌써 둘이라니."

아든의 잔소리는 언제나의 것이기에, 릴리안은 별로 싫은 기색도 없이, 그렇다고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기색도 없이 여전히 미소지은 얼굴로 흘려넘깁니다.
"오래 기차에 몸을 실었으니 피곤할텐데, 외식하고 들어갈까?"

릴리안의 제안에 아든이 빙그레 웃습니다.
"고작 이틀 얼굴 안 봤다고 좀 그리운 느낌이 드네. 감성적이 됐나 보다."


농담을 흘리듯 말하던 아든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 잠들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으려면 새벽까지 못 잘걸. 어떻게 쉽게 자겠어."


'세상 돌아가는 일에 그렇게 관심이 없으면 약에만 관심이 많은 거야?' 대수롭지 않게 덧붙이며 두 사람은 식당에 다다릅니다.


"뭐 먹을래? 에스코트까지 해줬으니 내가 살게."

그렇게 말하지만 사실 에피타이저만으로 양은 충분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랜 친구라고 늘어난 건 눈치 뿐인지, 아든은 메뉴와 릴리안을 번갈아 보며 묻습니다.

허를 찔렸다는 듯 동그랗게 뜨였던 은회안이 이내 부드럽게 가늘어집니다.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한 아든이 메뉴를 엎어두고 점원을 부릅니다. 메인 디쉬가 스테이크인 B코스를 주문하려는 듯합니다.

릴리안은 쿡쿡 웃으며 얌전히 아든이 주문한 음식이 빌즈에 적히는 것을 바라봅니다.

릴리안의 웃는 얼굴을 보던 아든이 조금 멋쩍은 얼굴로 눈을 돌립니다. 일 빼고 뭐 했어? 중얼거리듯 묻습니다.

'아니, 평소보다 조금 더 걸어다녔나.' 역시 농담조로 아무렇지 않게 덧붙입니다.
"그러는 너는? 오랜만에 다른 도시에 가서 기분전환이 됐어?"

쿡쿡 웃던 아든은 조금 고개를 기울입니다. 이틀간을 되짚으려는 듯이.
"음, 그러게. 오랜만에 고향에 다녀오니 좋았어. 부모님 얼굴도 뵙고, 누나랑 형도 보고, 뭐,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하니까. 나중에 너랑 같이 여행이나 한 번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거기 가서도 굳이 네 생각을 하는 것도 이상하다 싶지만, 꽤 오랜 시간 같이 지내고 있으니까 이상할 것도 아닌가."

릴리안은 평온한 얼굴로 에피타이저로 나온 구운 연어의 몸통을 자릅니다.
"그러고보니 학교 다닐 때도 너희 동네엔 놀러가 본 적이 없는걸. 소설에서나 네 이야기를 통해서 워낙 많이 들어서 한번쯤 갔다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릴리안 앞에 놓인 접시를 잠시 보던 아든은 뭔가 생각하는듯 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틀밖에 안 지났는데 뭔가 안색이 좀 바뀐 것 같기도 하고. 기분 탓인가?"

연어를 균등하게 자른 릴리안은 칼을 제자리에 두고 눈썹을 기울여 웃습니다.
"아까는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두끼밖에 먹지 않았어."
'이틀동안 총 네끼.' 하며 릴리안은 애매한 웃는얼굴로 테이블 너머를 바라봅니다.
언뜻 찔린 듯한 표정처럼도 보이지만, 실상 그다지 반성하고 있지는 않네요.

릴리안이 끼니를 소홀히 하는 것은 워낙 자주 있는 일인지 잔소리할 생각도 별로 들지 않는 듯합니다. 어느새 제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자르기 위해 칼을 듭니다.
"다 큰 어른이니 네 몸 알아서 잘 챙기겠지. 그거 말고 별 일 없었으면 됐어. 넌 무슨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어서 불안할 때가 있어."

아마 다섯 몇번째까지는 어줍잖게라도 변명을 시도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아든의 말에 순순히 수긍하며 연어를 입으로 가져가는 중입니다.
"좀더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게 좋았으려나, 꽤 오랫동안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그런 말을 한다는 건 내쪽이 잘못한거네."

고기를 자르는데 집중하던 아든이 나이프를 내려놓고 한 차례 손을 내젓습니다. 조금 당황한 기색입니다.
"그냥, 성격차겠지. 꼭 전부 이야기해줄 필요는 없어. 그건 그냥 내 욕심이야. 그러니까.. 음... 널 신경쓰고 있다, 뭐 그 정도로만 생각하면 돼."

릴리안은 별 일 없었던 것처럼 부드러운 표정으로 냅킨을 들어 입가를 닦습니다.
"하지만 내가 너를 불안하게 만들었다면 그건 사과해아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 뿐이야. 네가 나를 언제나 알아주니까, 그만큼 느슨하게 말하지 않고 끝내버리는 부분도 분명 있었을테고."
표정은 어디까지나 미소지은 채입니다.
"얼른 먹지 않으면 다 식겠는걸."
아든의 손짓이 멈춘 것을 넌지시 언급해줍니다.

"그런 것도 나쁘지 않잖아. 내가 너에 대해 더 빨리 눈치채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니까. 남에게 느슨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네가 나한테 느슨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내 즐거움이겠지."
고기를 씹으며 고개를 든 아든은 조금 쑥스러운듯 웃습니다.
"지금 그대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나는. 조금 특별한 것 같잖아."
어쩐지 두루뭉술한 말입니다.

릴리안은 아든의 멋쩍어하는 웃는얼굴을 가만히, 또렷이 바라보다가, 네가 그렇다면, 이라고 말하는 대신 잔잔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 아든의 속도에 맞춰 아주 천천히 에피타이저 접시를 비워갑니다.

배가 고팠는지 아든은 금세 접시를 비우고 후식으로 나온 케이크를 포크로 쿡쿡 찌르고 있습니다.
"내가 이대로도 괜찮다고 한 거야."
후식으로 나온 조그만 케이크는 녹은 것처럼 순식간에 접시 바닥을 보였습니다.
"밥만 먹었는데 벌써 10시가 다 되어가네. 시간이 빨라. 곧 내일이 되겠어."

릴리안도 시간을 확인하며 코트를 걸칩니다.

옷을 챙겨 나온 아든이 테이블 위에 놓인 전표를 직원에게 내밉니다. 계산을 하려는 듯하네요.


"밥이야 언제든 사줄 수 있으니까 그때 사면 되지."

이번에도 뒤따라나오는 아든을 위해 문은 길게 잡고있었네요.
아든은 날씨가 좀 쌀쌀해졌나? 하고 중얼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천천히 집을 향해 걷습니다.

릴리안은 아든의 옆에서 속도를 맞춰 걷습니다.
아무래도 시각이 어두워질수록 종일 느슨하게 풀어두었던 감각이 날카로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아든은 릴리안과 발맞춰 걷다가 멀리서 길고양이를 발견했습니다. 어, 고양이다. 키우지 못하는 대신 길고양이나 들개를 발견하면 지나치지 못하는 성미였죠.

걱정할 것 없다는 것처럼 웃으며 릴리안은 고양이 앞에 다가간 아든의 몇걸음 뒤에 멈춰섭니다.

아든은 유리 그릇을 다루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고양이를 쓰다듬었습니다.
그때, 유난히 낡은 점포를 홍보하기 위해 허공에 매달려 있던 낡은 간판이 아든과 고양이 위로 떨어져 내립니다.

"아든!"
"어?" 아든은 품에 안은 고양이를 훌쩍 다른 곳에 놓아줍니다.

릴리안이 아든을 부르며 다가가자 아든이 릴리안의 손을 쳐내듯 힘을 실어 밀쳐버립니다.

무언가 더 말을 붙이기도 전에 간판이 땅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피가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요, 평온한 일상의 끝은 늘 이렇게 갑작스럽게 끝을 고했습니다. 몇 번이고.
간판에 상체가 반쯤 깔린 아든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어떻게든 간판을 치우려 애씁니다.

릴리안도 몇번 입을 달싹이다 아든 앞에 주저앉아 간판을 필사적으로 들어보지만, 평소에 잔소리를 무시한 결과일까요. 간판은 릴리안의 두 팔 정도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안간힘을 써서 간판 밑에서 몸을 빼낸 아든은 바닥에 반쯤 고개를 묻은 채 더 움직일 힘도 없는지 미약한 숨을 몰아쉬고 있습니다.
(이 시날대채.....)
마지막은 한 발짝 앞에 있습니다.
(아니....?
(아니 예상은 했지만 아니...?)
피에 젖은 얼굴에서 엿보이는 눈동자는 초점이 점차 흐려지는 듯합니다.


릴리안은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 대신 손을 가져갑니다.
힘없이 늘어진 아든의 손은 어둠 속에서도 창백해보입니다.
"여기,있어."
어떻게 발버둥 쳐도 운명은 아든을 붙잡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그를 앗아가고 맙니다.
서서히 식어가는 손을 붙잡고 있자니 얼굴과 어깨 군데군데가 피로 물든 아든이 약하게 숨을 내쉬며 릴리안의 손을 조금 더 꽉 붙잡습니다.
"릴리안, 괜찮아. 우리는... 괜, 찮을 거... 네가..."
말꼬리가 차차 흐려집니다. 릴리안, 듣기 다이스 롤.

기준치: | 70/35/14 |
굴림: | 15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
(뭐라도!)
“네가, 12시의 절망을. 견뎌낼 수 있다면…”
무언가를 더 말하려는 시도는 결과를 맺지 못했습니다. 릴리안의 손을 붙든 손에 힘이 빠져나감을 느낍니다.

익숙한 죽음입니다. 죽음에 다다르는 방식만 다를 뿐.

이윽고 아무 소리도 돌아오지 않는다는걸 확인한 다음...
아주 천천히 손을 놓습니다.
주변은 그저 익숙한 어둠입니다.
몇번째일까요.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걸로 또 다시 누구도 바라봐주지 않는 상태로 돌아왔을뿐일텐데.

바라봐주는 눈이 없다는 것은, 이렇게나 살을 애는 느낌이었을까요.
네가 나를 바라봐주지 않았다면 좋았을텐데.
그런 생각은 입밖에 꺼낼 리 없이, 릴리안은 피가 번진 아든의 눈꺼풀을 가만히 감겨줍니다.
소중한 것을 잃는 밤은 유독 싸늘하게 느껴지는 듯합니다. 몇 번이고 보아온 죽음인데, 상실감은 늘 무뎌지지 않고 그의 가슴을 베어냅니다.
슬픔에 젖은 머리 한편으로 아든이 남긴 말이 떠오릅니다. 12시의 절망이라니...?

"아."
그러고보니, 자정이 넘어가기 전에 시간을 돌리지 않으면...
싸늘하게 식은 그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품 안의 단검이 생각납니다. 그래요. 아든을 죽음에서 구해낼 수는 없었지만, 우리에겐 또 하나의 기회가 있잖아요.
당신에게는 남겨진 수단이 있습니다.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바치면 돼요. 그러면 다시 익숙한 아침이 찾아올 겁니다.

미동없이 내려다보던 얼굴에 그린듯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아든을 이대로 찬 길에 혼자 두는 것은 걸리지만, 곧 다시 만날 수 있을테니까.
그럼, 오늘의 일과를 시작해볼까.
무고한 사람 10명의 목숨. 그것이 이번 루프의 대가입니다. 릴리안은 루프를 택하겠죠?
(키퍼님 자체심의로 부탁드립니다><)
인적이 드문 거리에서 무고한 사람 10명을 발견하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아마, 시간이 되돌아가지 않았다면 연쇄 살인마라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왔을 법도 한데요.
릴리안이 10번째 목숨을 앗아가자, 마침내 단검이 붉게 빛나더니 시야가 뿌옇게 흐려집니다. 이 감각도 이제 익숙하겠죠.
이번에야말로, 죽음이 널 앗아가게 두지 않을 거야. 릴리안은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좀더 묘사를 생략하고 휙휙..! 가보도록...할게요?!)
(그그래도 6시간 하면 다 끝낼 수 있나! << 낙관적)
(서로 하고 싶은 걸 하자구요! 타이만은 그런 맛이죠 RP 마구 하는 맛...)
(끝까지 아든 못 구하면 어쩌지!!!)
(릴리안은 전혀 딴쪽으로 받아들였지만....)
(이번에야말로...성공하겠서요 루프 끝낸다...!)
당신은 눈을 뜹니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풍경입니다. 당신의 방이니까요.
릴리안, 지능 다이스 롤.
기준치: | 60/30/12 |
굴림: | 16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아앗!!!!!)
아, 이번은 11번째 루프입니다. 다만 평소와 다른 것이 있다면, 10번째의 아든이 마지막에 내뱉었던 말이었을까요.
원래는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미약한 목소리로 당신의 이름만을 부르다 쓰러졌는데, 아든이 내뱉은 말은…….
모르겠습니다. 단순한 기우일까요.

오늘 조제할 약의 주문서와, 평소대로의 물건들이 놓여있을 터.
(저번에는 책상 위를 안본거같아서... 책상 위 관찰판정...합니다?)
기본적으로 방 안의 정보는 10번째 루프와 같습니다. 집 안에서는 새로운 정보를 얻기 어렵겠죠.

저번에도 무언가 달라졌으니, 이번에도 무언가 달라졌을지 모를 일.
약봉투와 간단하게 필요한것들을 챙겨 일찌감치 집밖으로 나갑니다.
여전히 기분이 가라앉아있어 아침을 거르려다... 어제 아든에게 들었던 잔소리가 생각나 레스토랑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브런치 1인분, 후식을 제외한 구성으로 부탁합니다."

릴리안도 여상한 미소로 답합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식사를 하러 온 사람은 릴리안 뿐이군요.

릴리안, 듣기 다이스 롤.

기준치: | 70/35/14 |
굴림: | 2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자기야, 오늘 아침에 시계탑 쪽에서 검은 옷을 맞춰입은 사람들이 서 있는 거 봤어? 종종 신문에 나오던 종교 단체 사람들 아냐?"
"막, 그분이 오신다! 이런 소리를 떠들던 사람들? 아무리 여러가지로 뒤숭숭한 시기라지만 그런 사이비 종교가 판치다니..."
"아직도 거기 있을까?"

신경쓰이는 점은 두가지... 시장을 캐고다니는 얼굴없는 남자와 소문이 파다한 종교단체...
"오늘 샐러드가 아주 신선하던걸요."
계산을 마치고 나온 릴리안은 어제와 같이 시계탑의 상태를 확인하러 갑니다.
운이 좋으면, 옆자리의 커플이 얘기하던 소문의 사람들도 볼 수 있겠죠.
시계탑을 올려다보면, 1부터 11까지의 숫자가 붉은 빛으로 일렁이고 있습니다.

시계탑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시계탑 앞은 붐비고 있지만, 시계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도 사람이 모여 있습니다.

(판정의 타이밍일까요...?'0')
검은 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다들 이상한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있지만, 그 눈동자 안에는 명백한 광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분! 그분께서 오신다! 우리의 오랜 염원이 이루어진다!"
그 뒤를 들으려면, 판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릴리안, 듣기 다이스 롤.

기준치: | 70/35/14 |
굴림: | 93 |
판정결과: | 실패 |
(...... 관...찰...력...어...게...인...될까요?)
관찰력 다이스 롤.

기준치: | 65/32/13 |
굴림: | 75 |
판정결과: | 실패 |
(...... 안녕)

기준치: | 40/20/8 |
굴림: | 3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상한 사람들의 말은 당최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릴리안은 운 좋게 일부를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거짓된 기계의 세상을 끝낼 그분의 강림이 머지 않았다!"
그 이후의 말은 애매모호해서 알아듣기 어렵네요.

차라리 오늘의 세계가 거짓이라면 좋을텐데요.
릴리안은 광신자들에게서 미련없이 시선을 돌리고 자리를 뜹니다.
생각에 잠겨 느긋하게 걷다 보니, 10번째의 루프 때보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기분입니다.
이제 어디로 갈까요?

시장에 들렀다가, 언제나처럼 역으로 마중을 갈 생각입니다.
릴리안은 시장으로 가던 중, 불현듯, 의도하지 않게 시선을 돌립니다.
검은 로브를 쓰고 얼굴을 다 가린 사람이 그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소문의 '그사람'일까요?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사실 크게 관심이 없지만, 어떤 정보든간에 지금은 모아두어 나쁠 것이 없겠죠.
릴리안은 조용히 몸을 틀어 로브자락을 뒤쫓아봅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의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그냥 쫓아가긴 어려울 듯합니다.
은밀행동의 어려운 성공 이상시, 그를 뒤쫓는데 성공합니다.

기준치: | 40/20/8 |
굴림: | 4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검은 로브를 휘날리며, 그는 사람들 틈에 섞여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아마 그는 '시간을 되돌리는 괴물'에 대해 묻고 다니던 그 사람이겠죠.

"할 수 없나."
왜 자신에 대해 캐고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이야말로 성공한다면 저사람의 궁금증도 애초에 없던 것이 되겠죠.
릴리안은 미련없이 뒤돌아, 약을 전해줄 단골가게를 향해 되돌아갑니다.
"역시 날을 잘 맞춰주는구만. 거래하는 입장에서 편하지."

릴리안은 태연한 동작으로 약을 건네고, 대금을 받습니다.
반복된 루틴은 이제 익숙하죠. 조금 시간이 이르지만, 아든을 만나러 갈까요?

역 밖으로 나오는 아든과 마주칩니다.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은 이른 시간인데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춥니다.

아든이 조금 지친 기색으로 웃어 보입니다.

빠른걸음으로 아든에게 다가가며 묻습니다.

"얼른 얼굴이 보고 싶어서."

"이런, 알았다면 다른데 들르지 않고 일찍 와있었을텐데."
하지만 이런 식의 서프라이즈는 나쁘지 않습니다. 아든을 바라보며 눈웃음짓는 표정이 퍽 만족스러워보입니다.

이렇게 일찍 올 줄은 몰랐지. 아든이 쑥스럽게 웃습니다. 조금 지친 기색으로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집에 갈까? 하고 묻습니다.

가볍게 아든의 어깨를 두드리며 릴리안이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정말 서둘렀나보네. 많이 피곤해보여."
나란히 서서 안경테 안쪽의 안색을 살피며 덧붙입니다.

장난스러운 어투로 중얼거린 아든이 가볍게 볼을 매만집니다. 너무 서둘렀나. 그는 릴리안의 옆에서 보폭을 맞춰 걷습니다.

"결국 네가 데리러 와준다면 나는 얼마든지 저 안에 앉아있을 용의가 있지만-?"
(아든...관찰판정 해봐돠 되나요.'0')
관찰 판정 가능합니다. 다이스 롤해주세요.

기준치: | 65/32/13 |
굴림: | 3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
릴리안은 아든을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친구를 의심할 생각은 없겠죠? 그냥, 조금 신경 쓰여서 그랬다고 할까요.
아든은 신체적으로 지친 듯한 기색입니다. 릴리안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아주 조금,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듯한 표정을 보입니다.

빙그레 웃은 아든이 릴리안 쪽으로 눈을 돌립니다.
"로맨틱한 대사네, 릴리안. 나중에 내 책에 무단으로 인용해야겠어."
다시 눈을 돌립니다. 그럼, 나는 오지 않는 널 데리러 가겠지. 당연한 거 아냐?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조금 작았습니다.

릴리안은 부드럽게 웃습니다.
"네가 나한테 매번 헌정해준 책들을 생각하면, 내 보잘것 없는 말은 100번을 잉용한들 부족할걸."
그리고 이내 아든을 들여다보듯 낮게 머리를 기울입니다.
"모처럼 빨리 돌아오기도 했고, 저녁은 집에서 느긋하게 먹을까? 왠지 근시일 내에 열을 낼 것 같은 건 나보다도 내 플렛메이트처럼 보이는데 말이야."

멋쩍은 웃음을 흘리다 머리를 기울인 릴리안과 시선이 마주치자 잠시 멈춰서 눈동자를 굴립니다. 음, 이내 자연스럽게 웃어넘깁니다.
"집에 먹을 게 있긴 하지? 먹고 느긋하게 있어도 좋겠네."

릴리안은 약을 납품하고 오던 길에 시장의 어느 가게에서 나눠받았다고 설명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을 발맞춰 걷습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전혀 요리에 재능이 없으니까. 마침 혼자서 처리하기 곤란한 양이었는데, 때맞춰 돌아와줬다고 할까."
릴리안은 걱정을 담아 아든을 살피던 시선을 거두고 앞을 바라보며 느슨하게 웃습니다.

약간 과장된 연기를 하는 듯한 어투로 이야기하던 아든이 어지간히 재밌었는지 조금 소리내어 웃습니다.
"굳이 잔소리할 생각은 없지만, 나 없는 동안 끼니 잘 챙겼지?"

이번에는 릴리안이 은근하게 눈길을 돌릴 차례입니다. 어떻게 대답해도 결국 이런 순간에는 아든의 잔소리를 피해갈 수 없는 것 같은 기분이지만...

투덜거리는 듯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 여전히 웃는 얼굴입니다.
"혼자 살 위인은 아니네, 릴리안. 같이 살자고 제안한 나한테 감사하라고."

하지만 이런 잔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이젠 좋은걸까요.
릴리안은 빼는 기색도 없이 순순히 코트깃 앞으로 오른손을 받쳐들고 허리를 숙여보입니다.

눈을 몇 번 깜빡이던 아든이 미간을 찡그려가며 웃습니다. 뭐야, 연극하는 것도 아니고. 얼른 가자. 재촉하며 한 발 앞서나가는 아든의 볼이 조금 붉은 듯 보였는데, 날씨 탓일까요?

"내가 근 2년간 읽은거라곤 네 책 뿐이니까. 너나, 네 글에서 옮을만도 하지 않을까?"
그리고 금방 따라잡아 나란히 걷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습니다.

릴리안은 열쇠를 꽂아 돌리며 태연하게, 아니 조금 즐거운 기색으로 받아칩니다.

시답잖은 어투로 받아치며 집 안으로 들어섭니다. 짐가방을 아무데나 놓아두고, 비프스튜를 테이블 위에 놓아달라고 부탁하네요.
"난 빨리 씻고 올게."

릴리안은 코트와 반장갑을 벗어 정리하고, 아든이 시키는대로 비프스튜를 데워두고 테이블 위를 정리합니다.

"와, 맛있겠다. 역시 집에서 먹는 밥이 제일 좋지. 누군지는 몰라도 만들어주신 분께 감사해야겠는걸."

릴리안도 동감한다는 얼굴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비프스튜를 개인접시에 옮겨담습니다.
"역시 같이 먹을 사람이 있으면 조금은 입맛이 도는 것 같은걸."

비프스튜를 접시에 옮겨담고 한 입 떠넣은 아든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습니다.
"...점점 더 달변가가 되어가네. 어떻게 하면 잔소리를 덜 들을지 체득한 거지?"

달변가라는 소리를 증명할 마음은 없지만, 아무래도 한입 가져가는 사이에 말이 긴 것은 천성이려나요.

두 입쯤 더 떠먹은 아든이 잠시 손을 멈춥니다. 음, 약간 말꼬리를 길게 늘이다가 그릇으로 눈을 떨굽니다.
"자의식 과잉을 예방하기 위해서지. 네가 나한테 마음 없는 말을 할 성격이 아닌 걸 내가 제일 잘 알잖아."

"그렇게까지 정색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농담이 익숙한 성격은 아니니까, 사과하게 만들어버렸네."
옅게 웃고나서, 다시 숫가락을 집어들었다가 뜨지 않고 손잡이를 매만집니다.
"어쨌거나, 네가 돌아와서 기뻐하고 있는 건 사실이야. 그러니까 불필요한걸 생각하느라 애쓰지 말고 좀더 나랑 먹는 저녁을 즐겨주면 좋겠는걸."
본보기라도 보여주려는 듯, 먼저 한입을 떠넣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사실, 오늘은 이것이 첫끼니까 입맛이 돈다는 것도 전혀 거짓말이 아니기도 하죠.

아든이 숟가락을 놓고 빈손을 뻗어 릴리안의 볼을 슬쩍 한 번 토닥이고 다시 손을 거둡니다.
"내가 무슨 불필요한 생각을 했다고 그래. 난 너랑 마주보고 있을 때는 대체로 너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
숟가락을 들어 조금 빠른 손놀림으로 한 그릇을 비웁니다. 원래 잘 먹는 편이니까요. 누구와 달리.

웃음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릴리안도 적은양의 스튜를 비워갑니다.
그러고보니, 지난번의 아든은 보고싶다고 했던가요.
그 인사를 건넬 때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몰라도, 지금의 릴리안이 느끼는 기분을 말로 표현하자면 분명 그런 문장이 될까요.
...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지쳐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로맨스 소설은 두 권 밖에 안 냈지만, 아든은 짐짓 태연하게 웃어 보입니다. 조금 이상했나, 역시.. 그래도 어색한 얼굴을 하면 또 분위기가 진지하게 흘러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 주신 건데 내가 거의 다 먹었네."
비프 스튜는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있습니다.

"언제나의 일인데 뭐. 나는 이걸로 충분해."

아든은 빈 그릇들을 정리하며 몸을 일으킵니다. 어느새 시간이 9시쯤 되었네요.
"네가 얻어온 음식을 먹었으니 정리는 내가 할게. 너도 씻고 오던가."

릴리안은 아든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테이블을 정리합니다.
여행 후의 아든이 역시 피곤해보이지만, 아무래도 가사와는 연이 없으니까요...
얌전히 욕실행입니다.


땋아뒀던 머리타래는 수건으로 감싸도 한참 무겁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머리카락을 잘라야할까봐."

홍차를 우리고 있던 아든이 찻잔 두 개를 가리킵니다.
"너도 마실래? 홍차."

"금방 말릴 수단을 찾지 못하면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머리카락이니까."
여성들이나 쓸법한 숱많은 빗으로 긴 머리를 엉키지 않게 빗고, 몸을 가볍게 떨더니 아든의 맞은편에 와 앉습니다.

빈 찻잔에 찻물을 따라준 아든이 찻잔을 릴리안 앞에 밀어줍니다.

찻잔을 들어 몇모금 마시고나자 금새 물기로 내려갔던 체온이 따듯하게 돌아옵니다.

괜히 자기 꽁지머리를 한 번 만져보며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여기서 더 기르라는 뜻? 잠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언젠가 해볼게. 어느 날 딱, 아, 지금이다 하고 계시가 내려올지도 몰라."

뒷말에 쿡쿡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습니다.
"계시라니, 너도 나쁜 유행을 타는거야? 기르고 자르고는 어디까지나 네 맘이지."
그냥, 그때만큼 긴머리는 한참 못봤다 싶어서-하고 덧붙이며 티스푼으로 가라앉은 찻물을 젓습니다.

아든이 빠르게 손을 내젓습니다. 퍽 진지한 눈빛입니다.
"아냐, 그런 거. 나 그런 거 관심없어. 왜, 그런날 있잖아. 오늘은 청소를 해야 돼! 하고 갑자기 마음이 굳어지는 그런 날. 그런 것처럼 갑자기 '머리가 기르고 싶다!'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잖아.

의외라는 듯 갸웃거리지만, 릴리안보다는 아든이 밖에 나가는 빈도수가 높으니 충분히 들을 수 있었을지도요.
"음, 알것도 같아. 어느날 네가 그렇게 결심한다면, 이번에는 갑자기가 아니라 그 은발이 길어지는 걸 찬찬히 볼 수 있겠네."
오늘 줄곧 가라앉아있던 기분이 조금은 괜찮아지는 것 같습니다.
릴리안은 두잔째 차를 비우고, 오늘 처음으로 긴장을 풀며 푹신한 의자에 등을 기댑니다.

찻물을 쭉 들이키고 찻잔을 내려놓은 아든이 릴리안의 얼굴을 살피고 덩달아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입니다.
"내가 말 안 했던가? 우리 출판사에서 일하던 사람 중에서도 그 종교에 빠져서 갑자기 잠적한 사람이 있었다고. 운명이 어쩌고 하면서."

"그래? 못들은 것 같아. 종교니 운명이니 하는 게 그렇게 절대적인걸까... 믿는것만으로 바뀌고 정해지는 세상에 나는 별로 관심이 없는데 말이야."
눈을 기울이고, 무의식일까요. 입술은 미소짓고있지만 내리까는 눈빛에 조금 경멸스런 빛이 어립니다.

릴리안의 안색을 살피던 눈이 슬쩍 창가 족으로 향합니다. 머릿속에 흩어진 말을 정리하듯 잠시 입을 다문 아든이 다시 입을 엽니다.
"가혹한 진실과 바꿀 수 없는 운명. 만약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도피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릴리안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릴리안은 내리깔았던 눈을 들어 아든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마찬가지로 안색을 살피려는 것처럼.
"...전제조건이 필요하겠는데."
빈 찻잔에 남은 잔향에 신경을 기울이면서, 별로 오래 고민할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도피한다면, 그건 성공적인 도피야?"

목소리가 다소 가라앉습니다.
"또 영양가 없이 진지한 공상을 해본거니?"
미소짓는 릴리안의 시선은 조금 멀고 무성의합니다.

아까까지와 달라진 릴리안의 미소와 태도에도 아든은 태연한 얼굴입니다. 한 두 해 친구 먹은 짬밥이 아니라 이거죠. 그런 반응쯤은 예상했는지도 모릅니다.
"새 글감이 떠올라서. 원래 글을 구상할 때는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는 게 좋잖아? 너는 항상 좋은 조언을 해줬으니까, 이번에도 네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어."

"글쎄, 여러가지로 도피해본 경험자로써 말하자면. 해피엔딩은 대게 오지 않을것 같네. 어느쪽을 선택하든, 늦느냐 빠르냐의 차이일거라는 생각이 들어."
무엇이 늦는지 빠른지는 굳이 말하지 않은 채, 릴리안은 비로소 조금 피곤한 표정입니다.
아직 식곤증에 빠져있을 때는 아니지만요.

빈 찻잔을 정리하던 아든이 잠시 멈춥니다. 릴리안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 묘한 웃음을 짓습니다.
"나는 말야. 그런 순간이 온다면, 네가 삼키기엔 조금 쓴 그것들은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어."
빈 찻잔을 싱크대에 넣은 아든이 물로 가볍게 헹궈서 정리합니다. 대화는 어찌 마무리가 된 것 같네요.

릴리안은 말끄러미 아든의 얼굴을 올려다보다가, 친우가 찻잔을 정리해 돌아서서 다이닝룸으로 간 뒤에야 한박자 늦게 중얼거립니다.
오늘 종일 신경을 곤두세운 탓일까, 아든이 어딘가 다르다는 것은 알겠지만 지금은 그저 뒷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최선입니다.
어쨌거나 오늘은 집에 있으니까요... 이대로 해가 뜰때까지 버티지 않으면.
어느새 시간은 11시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찻잔을 정리하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려 할 무렵, 초인종이 울립니다.

아든이 문가에 서서 '누구세요?' 하고 묻자 문 밖에서 다급하게 흐느끼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는데 마차도, 자동차도 없어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며 운전을 할 수 있는 이가 있냐고 묻네요.

아든은 대충 겉옷을 챙겨 입으며 릴리안에게 먼저 자라고 당부합니다.

"그럼 나도 같이 가."
잠깐 졸았던 듯도 하지만, 초인종 소리가 들린 순간 거짓말처럼 잠기운은 달아난 상태입니다.

아든은 냉큼 밖으로 나갑니다. 차를 가져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하면서요.

릴리안은 뒤늦게 약이라면 저도 조제할 수 있다는 말을 떠올렸지만, 입밖으로 내뱉기도 전에 아든은 밖에 있습니다.
"얼른 타세요." 아이를 안은 여자가 자동차 문을 열기 불편해 보여 아든은 운전석 밖으로 나와 문을 열어주기 위해 다가갑니다.
기구하다면 기구할 수 있겠네요. 아주 잠시 차로에 서 있던 그가 어딘가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한다는 게요.
바퀴가 길바닥에 부딪혀 끼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결말을 예감하진 않았나요? 어쩌면 뜬금없이 밤중에 초인종이 울린 그 때부터요.

일순 이대로 뒤돌아 침실로 들어가버리고싶은 충동에 휩싸였다가, 마음이 익숙할만큼 차갑게 가라앉고... 다리는 뒤로도 앞으로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이의 눈을 가린 여자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고, 차에서 운전자가 허겁지겁 내립니다. 차체에 가려져 바닥에 흥건한 핏자국밖에 보이지 않는다는게 다행일까요?

릴리안은 심장소리를 남의 것처럼 들으면서 천천히 문을 밀고 밖으로 나옵니다.
"괜찮아요? 아니, 차에 가려져서 미처 못 보고..." 안절부절 못하는 운전자는 지금이라도 병원에 데려가 볼까 하는 대화를 여자와 나누고 있습니다.
병원에 데려갈 환자가 둘이 되었네요. 릴리안의 예감이 맞다면 아마 곧 하나가 되겠지만요.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저희 집에 들러주시겠어요? 다행히도 제가 조제사 일을 하고있어서요."
"운전자 분도 겉으론 괜찮아보이지만 사람을...치었으니까 어떻게 내상을 입었을지 모르고."
"미력한 실력이지만 저라도 괜찮다면 살펴드릴게요."
상냥하게 말을 건네는 릴리안의 시선을 줄곧 여자와 아이, 운전자 사이로 떨어져 아든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여자가 먼저 집 안으로 들어오고, 운전자가 길바닥에 쓰러진 아든을 부축하듯 일으켜 집 안으로 겨우 데리고 들어옵니다.

릴리안은 운전자에게서 아든을 넘겨받아 힘겹게 부축합니다. 다이닝룸에 앉혀둔 세 사람은 어차피 이 시간에 도움을 청할 곳도 없겠죠.
"저, 저는 다친 곳이 없거든요." 운전자가 아든을 건네주고 얌전히 자리에 앉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기계는 안에있는 사람을 보호해주기엔 아직 미심쩍은 구석이 많지않나요?"
릴리안은 완벽한 영업용 미소를 지어보이고, 힘겹게 아든을 부축해 방쪽으로 걸어갑니다.
"우선 한시가 급한 건 제 플렛메이트 쪽이라...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너무 걱정말고 기다려주세요."
-분명 두분 모두에게 맞는 약을 조제해드릴 수 있을거예요.
문이 닫힐때까지 미소짓고나서, 릴리안은 방문에 방 주인을 기대놓습니다.

"후우......"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피냄새를 맡아서일까 심각하게 피곤한 기분입니다.
"그러게 내가 같이 간대도."
대답다운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옆에 서서 중얼거리는 동안에도 비강에서 감각이 사라질 것 같습니다.

"...고생, 했네... 이렇게 힘이 좋은 줄, 몰랐어..."
금방이라도 앞으로 고꾸라질 것처럼, 문에 기댄 몸에는 힘이 없어 보입니다.

찡그리듯 웃으며 아든을 내려다보다가, 릴리안은 두통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이마를, 눈가를 힘껏 누릅니다.
그리고 손을 다 치우지 않고, 희미한 가스등 불빛 새로 아든을 내려다봅니다.'
"조금만 기다려줘."
"그럼 다 괜찮을거야."
미소는 어느새 평소의 부드러운 그대로 돌아와있습니다.

안간힘을 쓰며 고개를 든 아든의 눈이 시리게 빛난 듯한 기분이 듭니다. 아든이 손을 뻗어 릴리안의 손끝을 겨우 쥡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이게 고작이니까요.

정말로 허무맹랑한 농담이라도 들은 것 같은 얼굴입니다.
손을 쥐어오는 차가움에 흠칫 놀랐다가, 바라보기 편하도록 키를 맞춰 앉습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너 여전히 나를 모르는구나."
"지금은 무척 아프겠지만, 지금의 너는 구해줄 수 없지만, 그런 게 아니야."
이내 겨우 쥔 손끝을 감싸듯 마주잡아줍니다.


힘없이 웃은 아든이 몸을 앞으로 숙여 그의 어깨에 머리를 박듯 툭, 기댑니다. 기대려고 한 건지, 쓰러지려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12번째, 절망의 끝, 에서... 널..."
미약해진 숨소리 끝으로 겨우 문장이 맺어집니다. 널 기다리고 있을 거야. 푹 숙여진 고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래."
12번째.
그렇죠. 유감스럽게도 이 밤은 또 오고 말았지만,
그러므로 12번째 오늘을 또 다시 맞이해야만 해요.
아든의 머리를 문이 여닫히지 않는 쪽으로 기대어두고, 릴리안은 피묻은 반장갑을 벗어둔 채 밖으로 나갑니다.

(리노님 저녁은..ㅠ.ㅠ
(어케하고계신가요 더 빨리 물어보고싶었는데 타이밍적으로 그게 엄...
(이랬는데 여기선 루프 못하면 어쩌지 덜덜덜)
릴리안은 다행히, 무고한 11명의 목숨을 대가로 루프를 성공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행위에도 많이 익숙해지고 말았겠지요.
(다행..... 모순....휴우....)
지금 당신은 어떤가요? 괴로운가요? 혼란스러운가요? 번번이. 변함없이 결만 다른 죽음을 맞이하는 밤이 무기력하게 느껴지나요?
괜찮습니다. 당신이 바라든, 바라지 않든, 선택의 시간은 찾아올 겁니다.
(고생하셨어요..!)
(10분이나 지나다니!!)
당신은 눈을 뜹니다. 익숙한 천장, 익숙하기 그지없는 당신의 방입니다.
머리맡의 창문으로는 따스한 햇볕이 들어오고, 책상에는 마중을 나와달라 하는 아든의 편지가 놓여 있을 테고... 당신이 생각한 그대로입니다.
릴리안, 지능 다이스 롤.
기준치: | 60/30/12 |
굴림: | 23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오늘은 12번째의 루프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아든은 '12번째 절망의 끝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든이 루프를 눈치챘다는 뜻일까요?
언제부터 알았죠? 어떻게 알았을까요? 어째서 알았는데도 살려고 노력하지 않았죠? 수많은 의문이 당신의 머릿속을 헤집습니다.

오늘은 어디에서도 식사할 기분은 아닙니다.
릴리안이 평소에 제일 즐겨 입었던 겉옷을 입고 집을 나오며 습관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순간, 주머니 안에 무언가 들어 있는 게 느껴집니다. 종이 같네요.

릴리안은 손에 잡힌 것을 꺼내봅니다.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한 장의 쪽지입니다.

"기록들의 요람이라..."
릴리안, 지능 다이스 롤.

기준치: | 60/30/12 |
굴림: | 81 |
판정결과: | 실패 |
(......)
행운 판정에 성공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기준치: | 40/20/8 |
굴림: | 1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기록들의 요람.' 릴리안은 잠시 생각하다시내에서 제일 많은 기록이 보관되어 있는 도서관을 떠올립니다.
지도에는 도서관이 없지만, 시내에는 도서관이 있습니다.

릴리안이 도서관으로 향하던 중, 이상한 광경을 목격합니다.
정체 모를 사람이 길거리 한복판에서 칼을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종말! 종말이 올 것이다! 은빛 괴물께서 12번째 시계를 불태울 때에 종말이 올 거라 말씀하신다! 아하하하!"
비명과도 비슷한 목소리는 끔찍하기 그지없습니다. 온몸을 비틀어 칼을 휘두르는 몸동작조차 기묘하고, 불길하고, 모독적입니다.
도대체 무엇일까요. 저자는 어디에서 무엇을 보았길래 저런 광기에 휩싸이게 된 것일까요?
어째서인지, 그 광경을 목격한 릴리안의 기분은 복잡해집니다.
릴리안, 이성 다이스 롤.

기준치: | 40/20/8 |
굴림: | 2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사람을 몇 명을 죽였는데 고작 저런 칼부림으로 기분이 나빠질까요. 칼을 쓰는 것이라면 릴리안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성 감소 없습니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섭니다. 안은, 난장판이군요. 소동이라도 벌어졋던 건지, 수많은 서적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습니다.

책을 훑어볼 목적은 아니었지만, 이래서는 쪽지의 주인을 찾기도 쉽지 않아보이네요.
도서관 안을 좀 더 살펴보나요?
릴리안, 관찰 다이스 롤.

기준치: | 65/32/13 |
굴림: | 69 |
판정결과: | 실패 |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안으로 들어선 릴리안은 책들 사이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알싸한 고통을 참고 겨우 일어섭니다. 체력 -1.
일어선 릴리안의 앞에는 기이한 빛으로 빛나는 흰색과 검은색의 책이 한 권씩 놓여 있습니다.

릴리안은 분명히 빛나고 있는 것 같은 책 두권을 자세히 내려다봅니다
책 근처에는 쪽지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별도의 관찰 판정 없이 볼 수 있습니다.

문득 마주앉아있던 아든의 말을 떠올립니다.
정말로 네가 루프를 알고있다면,
이건 무언가의 힌트인걸까?
릴리안은, 어느 쪽 책을 펼쳐 보나요?

아든의 말은 힌트였을까요? 릴리안은 흰색 책을 펼쳤습니다.
아든이 쓴 일기인듯 하네요. 중간중간 훼손된 부분은 읽을 수 없었습니다.
(잠시 정독을.....덜덜덜)
(아니 저 너무 슬퍼요 벌써.... 아든 무서웠구나.......)
(제 이성치 체크해야될거같은......?????)

그러니까 몇번이나, 너는 알고있었구나.
마지막 메세지를 보건대, 마나 내가 한 일도 알고있을거고.
한참만에 덮은 책을 코트 안주머니에 집어넣고, 일어선 릴리안은...
도서관을 나와 시계탑을 향해 곧바로 걷습니다...!
릴리안은 중앙 광장으로 향합니다.
오늘따라 우뚝 솟아있는 시계탑의 존재가 무겁게 느껴집니다.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시계탑의 앞에 도착하면, 그곳에는 어쩐지 조금 다친듯한 아든이 서 있습니다.


열걸음 정도를 남겨두고, 릴리안은 아든과 마주섭니다.

"별 거 아냐."

릴리안은 선뜻 웃으며 수긍합니다.
그리고 평소 그대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묻습니다.
"어디까지 알아?"
"전부 봤어?"
"아니, 전부는 못봤으려나."

아든은 시계탑을 가리킵니다. 시계탑을 지키고 있던 직원들은 온데간데 없군요.

주머니 한켠에서는 묵직한 겉표지가 손등에 닿습니다.
말없이 얼마쯤 계단을 올랐을까, 두 사람은 시계탑의 최상층에 도착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칠흑 같은 밤하늘과 그것보다 더 어두운 연기에 먹혀가는 마을, 살아있는 것 마냥 스멀스멀 기어오는 흰색의 거미줄들, 모든 숫자가 붉게 일렁이는 시계.
뺨을 에일듯한 차가운 바람 소리 사이로 무언가의 물레 소리도 들려옵니다. 모든 것이 정상이 아니지만, 그렇기에 더 현실성 있게 느껴집니다.
그 광경에 잠시 시선을 빼앗기고 있노라면, 아든이 느리게 입을 엽니다.

아든은 습관처럼 입술의 흉터를 만지작거립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요.
"네가 내 죽음을 지켜보고, 나를 살리려 한 것들... 그 이후부터는 전부 기억하고 있어."

릴리안은 거미줄이 닿지 않은 벽에 기대어서서 여전히 양손을 주머니에 둔 채입니다.
표정에서는 미소가 사라져있지만, 그렇다고 표정을 읽기는 애매한 뭐라고도 할 수 없는 얼굴입니다.
"우선, 네가 집밖을 일부러 나갔다는 것, 그리고 나한테 그런 힌트들을 남겼다는걸로 생각했을 때. 굳이 살고싶어 하지 않는다는 건 잘 알았어."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지만 역시나 담담합니다.

조금 감정이 북받쳐 올랐는지 숨을 삼키며 말끝을 흐린 아든이 여전히 정면을 응시한 채로 말을 잇습니다.
"너와 함께 하는 내일을, 너보다 더 간절히 바란 게 나야."
그렇지만, 죽는 것이 나의 운명이었을 뿐이지. 바람 소리에 묻힐 뻔한 목소리가 귀에 감깁니다.

"내가 너라면."
그리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가, 기대있던 등을 젖혀 바로 섭니다.
"아니지, 너와 나는 다르니까 말을 바꿀까."
"내가 네 입장이라면, 전부 깨달았다면. 정말로 살고싶었다면 나는 내발로 걸어나가지는 않았을거야."
한발짝, 한발짝씩 아든에게 가까워지며 말을 잇습니다.

아든의 앞까지 다가가는 건 매우 금방입니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렇게 하는 방법 말고 너를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나는 몰라."
만약 알았다면, 아니, 결국 어떤식으로든 너의 의사보다는 내 의지를 우선했겠지만....
뒷말은 웃음으로 눌러 삼키고, 릴리안은 아든을 똑바로 바라봅니다.

"내가..."
"내가 이렇게 하는것도 너는 바라지 않는 것 같고."
응시하는 은회안은 주변이 어두워서인지 평소보다 한층 낮은 색으로 보입니다.

아든은 릴리안의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슬쩍 돌립니다. 쌀쌀한 바람 때문인지, 눈가가 조금 붉은 듯합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려. 릴리안, 나도 처음엔 살고자 노력했어. 하지만 나의 운명은 언제나 죽음을 가리켰지."
"그리고, 네가 루프를 위해 무고한 이의 목숨을 대가로 한다는 걸 알았어. 나 때문에 네가 필요없는 업보를 쌓는 것을 보는 게 괴로웠어. 이젠 루프를 막으려 했지."
"하지만, 내가 너에게 루프에 대해 말하려 하면... 그건 아마 금기였던 것 같아. 나는 더 빨리 죽음을 맞이해야 했어."





릴리안은 이제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놀리는 듯한 표정으로, 어떻게 보면 떠보는 듯한 표정으로 아든을 내려다보며 입매를 올려 웃습니다.
"그래서, 네가 최종적으로 나한테 전달하고 싶은 게 뭔데?"
아든의 말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듯이, 거만한 표정과는 다르게 단단히 팔짱을 낀 채입니다.

아든은 느리게 눈을 깜빡이면서 천천히 숨을 내뱉습니다. 이 순간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고, 생각하면서요.


"네 행동을 부정하거나, 매도할 생각은 없어. 너의 선택의 선악을 논할 권리는 내게 없으니까."
아든이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한숨을 내쉽니다. 눈을 마주치며 할 수 없는 이야기였어요. 모두가 칭찬하고, 아든도 줄곧 좋아한 얼굴이었는데.

그런 말을 덧붙이지 않고 릴리안은 아든이 말을 잇도록 내버러둡니다.
다만 눈길이 닿지 않는 그 얼굴은 다소 굳어있습니다.

얼굴을 가리듯 손바닥을 덮은 아든이 조금 고개를 숙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은, 그러지 말자. 우리, 이 운명을 반복하지 말자. 영원히 시간을 되돌리기만 할 수는 없잖아. 너는 내 죽음을 봐야 하고, 나는 나 때문에 사람을 죽일 결심을 하는 너를 봐야 하고."

릴리안은 손바닥에 가려진 아든의 얼굴을 잠자코 들여다봅니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담담하게 한가지만을 질문합니다.
"그럼, 어떻게 끝내줄까?"

"네가 말한 사이비 종교, 그건 이계의 신을 부르려 하는 신도들의 모임이야. 이계의 신을 불러서, 새로운 미래를 그리려고 하는 거지."
"네가 반복한 열두번의 루프는, 이계의 신을 위한 제물을 바치는 과정이었고."

"아아, 보기좋게 꼭두각시가 되었었다는거구나."
그것참, 네가 보기에 퍽 불쌍해보였을거야.



"또 하나는,"
아든이 발 밑을 가리킵니다. 시계탑의 시계를 움직이게 하는 중심 태엽이 발 밑에 있습니다.
"이 시계를 멈추면 루프는 끝나고, 우리는... 정해진 운명을 마주하게 돼."
"나는 죽고, 너는 내일을 맞이하는 거야."

그러나 입은 굳게 다문채입니다.

아든은 겨우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얼굴로 깊게 한숨을 쉬고 손을 뻗어 릴리안의 어깨를 토닥입니다. 햇빛을 등진 얼굴도 참 멋지구나, 그런 시답잖은 감상을 떠올렸는지도 모릅니다.

"내 행동결정권도, 내가 한 일의 선악을 논할 권리도 너한테는 없다고 그랬지."
잠시 사이를 두고, 릴리안은 지척까지 가까워졌던 거리에서 한발짝 물러납니다.
"그럼 말해봐."
"나는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세번을 포함해서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을 여럿 죽였어."
"네가 도와주려고 했던 그 어린아이도, 너를 들이받은 사람도 관계없이 전부. 그냥 필요했으니까."

그러고나서야 릴리안은 미소짓습니다.
"대답해봐 아든. 이런 나는 싫어?"

아든이 쓴웃음을 머금은 채로 고개를 젓습니다.
"너를 싫어한 적 없어. 너는... 내게 소중한, 친구잖아. 나는 너의 친구이고."
"내가 너를 용서한다던가, 그런 거창한 이야기를 할 입장은 아니야."

"잘 알겠어."
아든의 오른손을 잡아당겨 그대로 슬쩍, 머리를 숙입니다.
손등에 가볍게 입맞추고 나서
"그럼 내가 해야될 일을 가르쳐줄래?"

"내가 시키는 대로 한 적 별로 없으면서, 이럴 때 내 의견을 묻는 거야?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 돼. 나는 이미 정해진 운명에 반쯤 매인 사람이고, 너는 아니잖아."
"다만, 릴리안, 내가 했던 이야기 기억하지. 언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 온다면..."
아든이 팔을 뻗어 릴리안을 한 번 가볍게 끌어안았다가 놓아줍니다. 제법 후련한 얼굴입니다.
"가혹한 진실과 바꿀 수 없는 운명. 삼키기엔 쓴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고."

네가 원하는 것은 네 발 아래에 있었지.
(이쯤에 와서 덜덜덜)
별도의 판정은 필요 없습니다. 릴리안에겐 단검이 있었죠.

"안녕, 아든 스카일러."
일직선으로 단검을 초침에 내리꽂습니다.

마지막에 얼핏 엿보인 얼굴은 눈물을 조금 참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당신은 루프를 끝내고 내일로 넘어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신이 원한 미래였나요? 아든이 원하는 미래도 이것이었을까요?
글쎄요. 정답은 모릅니다. 그저, 예정된 종말을 받아들이자고, 당신의 친구가 말했으니까요. 당신은 친구의 의사를 존중한 것입니다.
오래 미뤄왔던 종말의 시간이 온 것입니다. 콰직,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태엽이 깨집니다.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소리, 차가운 여명을 부르는 소리가 두 사람을 갈라놓는 듯합니다.
시계의 숫자 부분을 감싸고 일렁이던 붉은 빛이 서서히 사그라듭니다.. 시간을 빨리 감기하듯, 달이 점점 내려가고, 저멀리 새벽이 밝아옵니다. 기상천외한 일이네요.
해가 다시 뜨면, 이번에야말로 아든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걸까요? 그것을 생각하는 당신은 조금, 슬펐을까요?
릴리안의 시야가 다시 뿌옇게 흐려집니다. 마지막에 뺨에 잠시 온기가 닿은 것 같다고 느낄 때, 몽롱한 의식 속에 내려앉는 목소리가 남습니다.
"난, 절대 죽고 싶었던 건 아냐. 릴리안. 고마웠어."
당신의 의식은 그대로 푸른 새벽과 함께 흐려집니다.
다시 눈을 뜨면, 익숙한 당신의 방입니다.

아침은 지나치게 고요하고, 숨소리라곤 자신의 것밖에 들리지 않아서.
오늘은 좀처럼 빛 속을 돌아다닐 마음이 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입니다.
릴리안이 가만히 누워 있자니, 밖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설령 밖에서 거미떼나 칼을 든 미친사람이 들이닥친대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당탕, 하는 발소리는 조금 더 가까워져 이윽고 릴리안의 방문이 벌컥 열립니다.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는 당신에게 매우 익숙한 사람의 목소리입니다.
(????????????? 아니 저 매리베드엔딩 난줄......????)
(아니????????)
(?!!!!!!!!!!)
머리맡까지 다가온 인기척에 이어, 이불 너머로 릴리안의 어깨를 잡아 흔드는 손길이 느껴집니다.


천천히, 믿을 수 없는 심정으로 몸을 바로누였다가,
떨리는 눈동자로 침대맡을 올려다보고......
"아,"
분명 막 눈을 떠서 그렇겠죠. 목소리가 꽤 잠겨있는 것 같습니다.
"아든."

"나, 열이 있는 것 같아."
유례없이 넋이 나간듯한 얼굴로 간신히 중얼거린 릴리안의 손은 이제 이불보를 뜯을 것처럼 움쳐쥐고있습니다.
(끊어져서 흠칫했어요.....
(이것은 트루엔딩 비지엠일까...8ㅁ8)

떨리는 손이 릴리안의 이마를 짚습니다. 이마에 올라온 손은 분명 온기가 있는 사람의 손입니다.
"13일이야, 릴리안."
날짜를 고하는 목소리가 떨리고 있습니다.



"어때, 내가 아프거나, 이게 꿈인 것 같지는 않니?"
손가락에서 손등으로, 팔목을 어루만지듯 확인하며 올라갔다가, 허공에서 멎은 손은 흉터진 아든의 입가를 지나 뺨에 닿습니다.
"내가 지금 열이 펄펄 끓어서 네 잔산을 보고있는거라면, 언제나처럼 내게 진실을 고해줘."

"이게 꿈인지 아닌지, 내가 제일 믿기지 않지만... 이건 현실인 것 같아. 릴리안."

뺨에 떨어지는 눈물도, 분명 따듯합니다.
"그렇구나."
릴리안은 풀어진 눈꺼풀을 내리감고, 드물 정도로 평온한 미소를 그립니다.
"그렇구나."
뺨에 닿아있던 손을 내리고, 아무것에도 닿아있지 않아도 불안해하지 않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넵니다.


"좋은 아침이야. 얼른 일어나."
예상했던 미래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 그는 당신의 앞에 서 있고, 당신을 향해 웃고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이 광경을 보며 무엇을 느꼈을까요? 당신이 무엇을 느꼈든 간에, 중요한 것은...
이 미래는 당신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End 3. 정의의 빛은 사라지지 않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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